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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n 24. 2024

GV 빌런 고태경을 읽고 나서

씬마다 명장면이 아닌데도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



서평인 척하는 에세이 남기기 전

가볍게 써 두는 <GV 빌런 고태경> 줄거리


 어렸을 때 재밌게 본 영화 <초록 사과>가 화근이 되어, 얼마 전 <원 찬스>라는 영화에 참패라는 결과를 붙인 영화감독 조혜나는 이후 영화인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네임드 빌런 고태경에게 호되게 당하기까지 하는데. 안 그래도 근근이 사는 게 서글퍼 죽겠건만 이놈의 GV 빌런은 왜 조혜나의 영화에 무시무시한 악평과 질문을 던진 걸까.


결국, 근근이 사는 삶에 몰릴 대로 몰린 조혜나는 GV 빌런 고태경을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어떻게든 영화라는 바닥에 발 대고 있으려 하지만. GV 빌런답게 고태경이라는 사람은 참 쉽지 않다.


과연 조혜나는

이 빌런과 다큐멘터리를 무사히 제작할 수 있을까?





(1).

 

우선 소설 잘 봤습니다. 그런데….

 

난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다. 빌런의 잣대를 열등감으로 나눈다면 당연지사 빌런으로 배정받을 테다. 그런 인간이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 무작정 신청했던 도서 관련 이벤트가 있었으니. 바로바로 GV 빌런 고태경의 연극 무료 관람 이벤트였다. 당시 나는 도서관에서 GV 빌런 고태경을 읽는 중이었기에 이보다 더 운명처럼 만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댓글을 남겼었다.

 

그러나 당시 내 인스타 팔로워는 단 세 명.

 

도무지 홍보되지 않을 계정에 연극 티켓을 무료로 친히 뿌려 줄, 또는 멍청히 뿌려 줄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내겐 연락이 오지 않았고, 열등감으로 더 단단하게 둔갑한 나머지 GV 빌런 고태경을 도서관에 두고 나오길 잘했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도 도서관만 가면 GV 빌런 고태경이 신경 쓰였다. 어느 날엔 예약 대기가 만석이고, 또 어느 날엔 빌려 가라는 듯 신간 도서 서가를 지키는 저놈의 책. 얼마나 잘났길래 팔로워 3명짜리 계정은 무료로 연극도 볼 수 없는가! 했고, 친히 돈 내고 연극부터 볼까, 했으나 같이 보러 가자는 제안을 족족 거절당해, 짜증이 극에 달한 날, GV 빌런 고태경을 냅다 빌렸다. (덧붙이자면, 아무리 구린 책이어도 팔로워 세 명에게 무료 티켓을 줄 리 없다는 걸 잘 안다. 알지만! 알아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아.

짜증 났다.

 

읽을수록 이거 너무 내 얘기잖아. 남의 얘기로 이렇게 소설 써도 돼? 푹푹 찌는 더위를 탓할지 아니면 예술이 뭐라고 맨날 붙들고 사는 나를 탓할지 고민하며 잘못 없는 GV 빌런 고태경만 노려봤다.

 

물론, 나는 영화감독이 아니다. 영화인도 아니다. 그저 한때 영화학도를 꿈꿨을 뿐이다. 영화 연출 전공으로 서울예술대학교에 원서 내밀었다가, 탈락의 고배 한번 진하고 지독하게 마셨었다. 서울예대. 대단한 학교면 뭐 해? 날 못 알아보는데. 서울예대 영화과에 망조가 들었어. 그렇게 별안간 업신여기며 영화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으려 했고, 영화인과는 다소 먼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내 첫 사회생활은 어떤 영화감독 밑에서 기어다니는 일이었다. 정확히 어떻게 기어다녔고, 뭔 업무였는지는 비밀이다. 다만 이 사실만은 확실히 언급할 수 있다. 첫 사회생활 끝에 내가 얻은 것은 헤비 스모커라는 멋진 훈장이었다.

 

헤비 스모커가 되면서 나는 영화라면 아주 그냥 학을 뗐다. 내가 싫어하는 인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인간은 영화 만든다고 설치는 인간이고, 두 번째 인간은 영화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인간이다. 그 영화감독 덕분에 나에게는 철칙도 생겼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이 갈라지고 외계인이 쏟아져 나와, SF 영화 찍는 영화인에게 빌붙어 살아야 하는 날이 와도! 영화하는 인간들이랑은 친구도, 연인도 되지 않겠다! 그 철칙은 지금도 굳건히 지키고 있고, 헤비 스모커라는 훈장 반납하는 날에 철칙도 함께 반납하겠다는 다짐 역시 여전하다.

 

나는 영화에 인생 건 인간들이 싫다. (만일 영화에 인생 건 분들이 내 글을 읽고 있다면, 이것 참 영광이지만, 제 글을 보고 분노하시려거든 그 영화감독이나 탓하시길…!)

 

아.

근데 왜 내 이야기지?

 

나는 영화가 정말 싫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영화관에 갔고, 왓챠피디아에 이런저런 영화 후기를 남겨, 팔로워도 조금씩 모으는 인간이었으나. 첫 사회생활 이후로 영화 자체가 싫어졌다. 이젠 한 달에 한 번 영화관에 가도 너무 많이 보러 가 준 것 같고, 넷플릭스로는 예능과 드라마만 보며, 누가 뭔 영화를 봤는지 물으면 봤다고 거짓말도 한다. 보기 싫어서. 죽어도 보기 싫고, 영화라는 게 숨만 쉬어도 꼴 보기 싫어서.

 

그런 주제에 이상형은 아주 오래전부터 ‘영화 업계에 종사하진 않으나 가끔 둘이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그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나 시퀀스를 읊을 줄 아는 사람’이다.


이렇듯 극과 극에 다리 쭉 찢은 채 사느라 내 얘기 같았나. 아니면 내가 진짜 구린 인생을 살고 있어서 그런가.

 



정말로 나는 예술로 밥 벌어 먹고살기 싫었다.

 

내 첫 번째 장래 희망은 백화점 사장님이었고, 마지막 장래 희망은 뭐 대충 돈 되는 직업이었다. 근데 예술은 돈이 안 된다. 이 사실쯤은 GV 빌런 고태경의 주인공인 조혜나도 알고, 나도 알고, 세상 사람들 다 안다. 근데도 나는 어째서인지 예술로 분류되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뭐, 대단한 직업은 아니지만. 나에게 예술은 대단한데, 내 직업은 안 대단해서 어중간하고 구리게 살고 있지만. 근데 나라에서 구분하는 내 직업은 얼떨결에 예술인이다. 왜지. 예술은 돈이 안 되는데. 난 돈이 좋다. 아주 왕창 끌어안고 사는 게 꿈이다. 벽지를 돈으로 바르고 싶다. 근데 왜 내 직업은 예술인 중 하나인가.

 

게다가 돈이면 환장을 하는 주제에

지금도 나는 돈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 이 서평 말이다.

이거 쓴다고 누가 돈을 주길 하나. 서평 써서 돈 버는 사람을 본 적 있길 하나. (어딘가엔 있으시겠죠. 근데 제 주변엔 저만 서평을 쓰고, 아무튼 저는 모르는 세상이니 저에겐 돈 안 되는 일입니다!)

근데도 쓰고 앉았다. 미쳤지. 미쳤어.

 

그러고 보니 처음 인터넷에 서평을 남기기로 결심했을 때 누군가에게 말했다.


“어차피 내가 쓴 글들은 돈이 안 돼.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었어. 무려 서평 블로그야. 너도 알다시피 난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잖아. 인터넷엔 그런 사람들이 많대. 그래서 나도 그냥 막 내 생각을 끄적이고 올릴까 하고 있어. 그러다 누가 봐 주면 땡큐고, 안 봐 주면……. 나 뭐, 강의라도 들을까 봐. 블로그 방문자 수 늘리는 방법 같은 거 있잖아.”

누군가는 네가 드디어 미쳤다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러다 GV 빌런 고태경을 다 읽고, 흠. 아닌가. 다 읽어갈 무렵 제철 행복이라는 책의 서평을 썼고, 친구에게 그 서평 주소를 보내며 깨달았다.

 

아.

미친!

 

난 사실 친구에게 내 글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거였다! 내 글 피드백 받는 게 싫어서, 시나리오 피드백 모임에서 도망쳐 나온 주제에 내 글을 주변 사람들이 봐 줄 때마다 그저 좋았다. 내 시간 들이고, 내 돈 들여(보통은 도서관에서 빌리지만, 예약 기다리기 싫을 땐 그냥 무작정 지르다 보니 한 달에 십만 원 정도는 책 사는 데에 쓴다) 보여 주고 싶은 거다. 내 세상을. 남들 보기엔 구린 세상이겠고, 내가 느끼기에도 구린 세상이지만. 그래도 나, 구리게라도 살아는 있음을 막 드러내고 싶은 거였다.


돈은 안 줘도 됐다.


그저 내가 뭘 읽었을 때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돈은 내 직업으로 벌면 그만이니, 내 돈과 내 시간으로 칠해진 생각을 마구마구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평을 썼고, 서평 쓰는 방법을 공부하기도 했고(뭐, 서평 쓰는 방법은 딱 한 장 읽었다. 언젠가는 다 읽고 나도 서평다운 서평을 쓰겠지… 지금은 이게 서평이야, 에세이야? 소리를 듣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나 서평 쓴다!’ 자랑도 일삼았다.

 

조혜나가 돈 안 되는 영화인으로 살아가고, GV 빌런 고태경을 주인공 삼아 돈 냄새 안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하는 것처럼. 나도 돈 안 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아예 돈 한 푼 안 되는 ‘서평인 척하는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

 

근데 이놈의 조혜나가 미쳤나. 그런 나를 북돋아 준다. 참 나. 그러면 내가 뭐, 앞으로도 쭉 “우린 사실 평생 작은 독방 신세인 거야. 왜냐면 우리는 그럼에도 예술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잖아. 외롭고 고된 사람들이란 거지.”라고 말하는 친구 말에 끄덕이며 돈도 안 되는 업계에 머무를 줄 알고?

 

젠장.


그렇다. GV 빌런 고태경을 읽는 동안 그 빌어먹을 영화감독과 일했던 일 년을 잘근잘근 곱씹으면서도 여전히 그 주변 필드에서 일하는 나를. 도무지 돌파구가 안 보여서 때려치우고 싶다 하는 주제에 때려치울 시도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나를. 내가 또 달래주고 있었다.

 

야! 더 해 보자!


이 미치고 구린 세상에 폼 안 나게 사는 게 하루 이틀이냐. 이 업계에서 일한 지도 벌써 몇 년째, 여전히 신입이긴 해. 다들 ‘넌 왜 이렇게 하는 것마다 안 될까?’라고도 하지. 그래도 난 더 해 보고 싶잖아? 돈도 안 되지만, 돈도 안 되는 게 때로는 돈보다 날 더 기쁘게 해 주잖아. 짜증 나지만 그렇게 됐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알지.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주제에 그놈의 열등감이 날 좀먹을 때마다 내 꿈만은 좀먹지 못하게 꿈 하나 부둥켜안고 이십 대 다 쓰기도 했고. 넌 오십 대에도 이 필드에 있으려 할 거야. 사주 상으로도 그렇대. 뭐, 사주 얘기까지 꺼내와서 미안하다만. 얘기 나온 김에 사주 상 결혼은 물 건너갔고, 지금 하는 일만 가득하다던데. 게다가 사주 봐주시는 분이 그랬잖아?

 

“너라는 인간은 똥고집도 이런 똥고집이 없어서 내가 관두라 해도 그 일 할 거 아니야? 그럼 해. 뭘 망설이는 척하고 있어.”

 

그래. 조혜나.


네가 나 달래준 거다. 난 정말이지, 웬만하면 낙담하려 했어. 근데 네가 날 달랬어. 그래서 나 말이야. ‘넌 왜 이렇게 하는 것마다 안 될까?’라는 소리에 굴하지 않고, 안 되는데도 안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 거야. 넌 그런 나 책임져. 어떻게 책임지느냐면 너 계속 그러고 살아.


세상은 계속 우리가 틀렸다고 할걸. 정신 차리라고도 할 수 있어. 우린 NG 덩어리야. 근데도 어쩔 거야. 틀려먹었어도 정신 못 차리도록 좋은데, 어쩔 거냐고.


조혜나. 비록 나는 GV 빌런 고태경 연극 무료 관람 이벤트에서도 미끄러졌지만, 내 인생만은 무기력 또는 포기로 미끄러지지 않게 모쪼록 애쓰며 살 테니, 너도 나 달래줬다는 책임감과 자긍심으로 계속 그러고 살아. 안 그러기만 해. 연대 책임 안 지기만 해! 인생 빌런이 되어, 널 찾아갈 거야. 각오해도 좋아.

 




(2).

 

무작정 오늘 해야 할 일을 챙겨서, 카페에 왔다.


문득 키보드를 챙기지 않은 것이 아쉬워서 최대한 힘껏 노트북을 두들기지만, 그럴수록 두고 온 키보드 생각만 난다. 그러다 승호 생각도 잠깐 했다. GV 빌런 고태경에서 만났던 승호. 걔 성이 뭐였더라. 까먹었다. 워낙 조혜나가 성 떼고 다정히 불러 주었던 탓이다. 사람 이름 잘 까먹는 내 탓이 아니다. 아무튼 승호는 무슨 생각으로 키보드를 두들길까. 뭔 생각을 하겠어. 그저 두들기는 거지. 그저 세상에 대고 막 두들기는 걸까. 일단 나는 그런 편인데.

 



몇 달 전에 컴퓨터를 처분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기계식 키보드를 사려면 그럴싸한 핑계가 필요했다. 나라는 인간은 그럴싸한 핑계 없이는 물건 하나 사지 않으면서 물욕은 넘친다. 모순덩어리도 이런 모순덩어리가 없다.


제일 친한 친구와 둘이 외박할 때부터 기계식 키보드 없이 못 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우리는 나란히 높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각자 일하는 중이었다. 난 달랑 오래된 노트북으로만 일하고, 걔는 커스텀까지 예쁘게 마친 기계식 키보드에 무려 신형 그램으로 작업했는데, 그 순간부터 나는 기계식 키보드를 사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이 됐다. 하여간 나는 언젠가 샘 때문에 탈이 나 죽을 인간이다.


문제는 무턱대고 기계식 키보드를 구매하기에는 나라는 인간은 의미 부여 달인이라는 점이었다. 실은 카페나 회의실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쓰고 싶은 거면서 평소에도 기계식 키보드로 일하는 버릇이 들었다는 핑계와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음마다 열정이 붙었다는 의미 부여를 들이밀면, 커스텀 키캡 잔뜩 살 핑계까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여러 핑계를 방호벽으로 세운 다음 승호처럼 나도 돈 한 푼 없으면서 이름 있는 브랜드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산 다음 키보드가 도착하기도 전에 커스텀 키캡들을 구매했다. 그중 두 개는 중국에서 건너왔고, 남은 하나는 한국에서 샀다. 중국에서 산 키캡 두 개는 평소 응원하는 사람과 닮은 동물 키캡과 내가 좋아하는 동물 키캡, 남은 하나는 워낙 빵을 좋아해서 식빵 키캡을 샀다. 그러고는 식빵 키캡을 ESC 키에 꽂았다. ESC를 누를 때마다 빵 먹을 때처럼 행복해지려고. NG. ESC. 뭐 이렇게 세상엔 나를 멈추거나 무너져 내리게 하는 것이 많을까 싶어서 식빵으로나마 행복을 챙겨 왔다.

 

그런데 정작 기계식 키보드를 다 꾸미고 나서부터는 그 키보드가 너무 귀해져서 어디 들고 나가지를 못한다. 이쯤에서 오래된 노트북은 투덜대고 싶겠지. 기계식 키보드 사려고 200만 원 주고 산 컴퓨터 본체도, 32인치 모니터도 처분해 놓고서는 왜 또 나만 부려 먹어?

 

그런데 어떡해.

아끼는 게 내 버릇인 걸 어떡하냐고.

 

나는 승호가 부러웠다. 키보드를 자랑하는 것까지는 나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키보드를 가방에 넣어, 제일 좋아하는 장소로 가서 글 쓸 자신은 없었다. 정작 내 몸은 하루에 이만 보 걷게 하면서 그 기계식 키보드에는 흠 하나 남는 게 싫었다. 이쯤에서 GV 빌런 고태경을 도로 펼쳤다. 그러고는 승호의 키보드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그런데도 그저 부러웠지, 다음번엔 기계식 키보드도 챙겨 나오겠다는 결심은 아직이었다.

 

난 아직 멀었나 보다.

 선택이 인간을 좌지우지한다던데, 내 선택은 언제나 나보다 내 주변 무언가를 아끼는 데에 휘둘렸다. 그래도 조혜나가 말했다. 선택의 프로.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앞으로도 나는 나보다 내 주변 무언가 또는 내 것이 된 무언가를 나보다 아끼느라 잘못된 선택만 고르겠지만, 적어도 나 역시 조혜나처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진 않겠지. 나도 조혜나도 그리고 세상 모든 인간도 다 사랑하려고 태어난 거니까.

 



언젠가 그 영화감독 밑에서 이 아득바득 갈 때 또는 우느라 정신없었을 때 자신은 돈이 많다며 내게 이 오래된 노트북을 선물해 줬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판에서 기어다니는 나를 조금은 사랑해 줬던 걸까. 워낙 돈이 많아서 적당히 덜어낸 애정을 준 것도 같은데, 내게는 그 적당히 덜어낸 애정이 너무나도 귀했다. 그 당시 그가 적당히 덜어낸 애정은 백이십만칠천 원이었으니까. 그 당시 나에게 월급이란 없었고, 백이십만칠천 원은 전 재산의 절반이었기에 그 사람의 적당히 덜어낸 애정이 참 무겁고 귀했었다.

 

그러느라 이 오래된 노트북이 신형이었던 시절엔 한 글자 쓸 때마다 흠집 나지 않도록 900타였던 속도를 줄이고 줄였었다. 근데 그게 벌써 몇 년 전이 되어, 지금은 기계식 키보드가 없을 때마다 있는 힘껏 노트북을 두들긴다. 새삼 그 오래되고 무거운 애정에 미안하고, 노트북에도 미안해졌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인생을 쭉 살아가다 보니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기고 또 생겨서 노트북은 고물이 되고 말았는데.

 

언젠가는 가장 아꼈던 노트북아. 조금만 더 고생해 주라. 아직 내가 신형 그램을 살 돈이 없어서 그래. 그래도 진짜 조금만 더 고생하면 돼. 집 가자마자 기계식 키보드로 일할게. 그래. 일해야겠다. 있는 힘껏 두들겨서 완성해야 할 건, 끄적이는 글이 아니라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제일 사랑하는 ‘내 일’이다.

 



(3).

 


짧은 서평에도 썼듯 한평생 사랑할 자신이 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다. 사람도, 물건도 일 년 정도 사랑해 주면 나자빠지는 내가 유일하게 평생 사랑하고도 더 사랑할 수 있는 게 이 일이었다. 이 일은 글쓰기로 분류될 때도 있고, 건축으로 분류될 때도 있는데,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언급하기 싫다. 너무 사랑하면 나만 보고 싶은 법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이 일이 밉다.

 

제철 행복 서평에도 썼는데, 자꾸 이 일이 나를 의심하게 한다. 언젠가는 내가 나를 제일 믿어 줬었고, 그 언젠가가 기반이 되어 여기까지 왔는데 요즘 들어서 나는 나를 의심한다. 누가 조금만 틀렸다고 하면 곧바로 수긍하며 온갖 길을 헤맨다. 차라리 이 일을 못했으면 어땠을까. 재능이라곤 쥐뿔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시작조차 안 했을 텐데. 그러나 조혜나가 끝끝내 영화인으로 남아, 영화에 인생 바치듯 나 역시 끝끝내 이 일을 하며, 이 일에 내 인생 다 가져다 바칠 것을 안다. 근데도 밉다.

 

일 년 전쯤이었나. 술자리에서 동료가 말했다.

“너는 정말 잘하는데 왜 기회가 안 올까?”


그렇게 말하는 동료는 나보다 더 아쉽고 속상한 얼굴이었기에 웃음으로 받아칠 수밖에 없었지만, 실은 믿을 수 없어서 울고 싶었다. 내가 정말 잘한다고 말하는 그 동료를 오래오래 질투한 탓이었다.


그 동료의 작업물을 처음 봤을 때 믿기 싫어서 몇 번이고 읽었다. 마음에는 열등감과 애정이 공존했다. ‘나도 저 나이쯤 되면 저 정도는 할 수 있지’하고 으스대는 열등감. 저런 작업물을 쓰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애정. 애정이 열등감을 억누르며 나는 그 동료의 프로젝트에 합류해, 몇 달간 함께 일했다.


그러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그 동료를 칭찬하곤 했었다. 그 사람은 정말 빛나는 사람이야. 그 사람은 정말 잘될 사람이지. 잘하는 사람한테 기회가 와. 넌 옆에서 배우는 거 많겠다? 이외에도 극찬은 쏟아졌지만, 내 기억에도 열등감이 묻었는지 이외의 말은 머리 바깥으로 내쫓았다. 그 탓에 기억이 안 난다.


극찬만 받으며 살았을 동료가 내게 ‘너는 정말 잘하는데 왜 기회가 안 올까?’하고 물었을 때. 난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당신처럼 빛나는 사람은 몰라요. 제가 잘하긴 뭘 잘해요. 잘하는 건 당신이에요. 뭐 이런 인정과 자조를 마구 쏟아내야 했었나. 그때 술에 적당히 취한 나는 웃고 또 웃으며 인정과 자조 모두 웃음 사이에 파묻어 버렸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대답할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그러게요.”

그냥 딱 저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이 일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 첫사랑도, 지금 좋아하는 사람도 명함 못 내밀 정도로 미치게 사랑하는 게 바로 ‘내 일’이기에. 그러게요. 딱 그렇게만 대답했어야 했다. 내가 나를 인정해 줬어야 했다. 난 잘한다고. 자꾸 못하는 것 같고, 기회는 맨날 나를 비켜 가더라도 나는 잘한다고. 기왕 사랑할 거라면 나라도 나를 믿고 달래줬어야 했는데. 그래야만 내 사랑이 더 단단해졌을 텐데.

 

그러나 이 이상 후회해 봤자다.


앞으로도 나는 후회할 거고, 열등감에 짓눌려 마구 포효하고 도망치는 삶을 살 것이며, 때때로 사랑을 사랑스럽게 하지 못해, 내 일과 나를 몰아세우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기어이 또 내 일을 사랑하고 말겠지. 그냥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나를 좀 믿어 주고, 내 일을 좀 멀쩡히 사랑해 주고 싶어졌다. 그러기엔 한없이 부정적이고 나약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어지게 만든 조혜나와 고태경을 탓하며 지금부터 천천히 내 일을 미워하는 마음을 달래보려 한다.

 

고태경이 말했지.

‘내가 진심으로 바랐던 것들은 다 잘 안됐어. 지금까지는 말이야.’

 

저 말 살짝 인용해서 써 둬야지.


나는 빛나는 사람들이 부럽고, 인정받는 사람들만 보면 배알 꼴려 미치겠어. 지금까지는 말이야. 근데 나는 전혀 빛나지 않아도 내 일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별수 없이 내 일을 더 사랑하는 방향으로 갈래. 앞으로는 말이야.

 

아! 내가 한때 좋아했던 드라마 제목도 인용할까.

아이엠낫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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