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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의 생각 Oct 17. 2024

8 - 할루시네이션

동면이인을 찾아서



딱히 변한 것도 없었다. 나는 평소처럼 출근해 도서관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들을 특징짓고, 그 특징 뒤에 있을 은밀한 내막을 속으로 들춰내며 유희를 즐겼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게 몇 가지 상징만으로 쉽게 환원되는, 따분한 방식으로 존재했다. 세상 자체가 그런 모양이겠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 더 편리한 방식으로 환원되었다. ‘나이’, ‘성별’, ‘외모’, ‘자산’, ‘성격 유형’, ‘취미’ 등등 두 을 다 쓰지 못하고 대강의 캐리커쳐가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데나 와서, 그럴듯하게 포장된 책들이나 구경하는 사람들의 경우 더욱 뻔했다. 그냥 좀 있어 보이고 싶은 거다-싼값에 찍어낸 좋은 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다-. 유명하지 못한 자들의 대 표준화 시대가 당황스러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존재감을 느끼기 힘든 거겠지.


따분했다. 근래에 가장 흥미로운 대상은 역시 내 도플갱어인 ‘허자현’이었다. 길호와 정희가 ‘도플갱어’의 존재를 찾고 있는 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그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들이 이 탐색을 중단해 버렸기 때문에 비웃고 있었다. 저리도 쉽게 환원되는 ‘상징’의 세계로 또다시 기어들어 가다니 말이다.


‘돈’과 ‘꿈’의 세계는 상징의 세계다. ‘돈’도, ‘꿈’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구체적 인생을 축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허상일 뿐이다. 이런 상징들은 전부 이 세상의 복잡성도, 인생의 구체성도 다 날림 처리해 버리는 필터들이다. 어쩌면 나는-내 마음은- 이 필터들이 내 해석되지 못한 ‘나머지 부분’을 거세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뜰채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담지 않는 길이야말로, 아무것도 희석하지 않는 길이다. 전체를 취하려면, 그 어떤 부분도 취하지 않으면 된다. 모든 것을 얻으려거든 그 무엇도 구하지 말라.


나를 오해하는 이들은, 내가 뭔가를 이해하는 것을 즐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였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좋았다. 내가 즐기는 것은 ‘이해되지 않음’ 그 자체였다. 애초에 이해라는 것 자체가 환원이지 않은가. 나는 환원이 싫다. 물론 내가 조금 전에 사람들을 보며 했던 ‘판단-관음-’ 역시 환원이지만, 환원될 수밖에 없는 삶을 택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소거법. 나는 환원되지 않는 인생을 찾기 위해 환원하는 것이다.


소희. 나는 그녀가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생각했다. 소희는 달랐다. 아니, 달라 보였던 것이겠지. 그녀는 표지 너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신비한 눈’의 소유자 같았다. 그녀의 눈은 내 ‘은닉’의 존재 방식을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앞면을 제시하면, 뒷면까지 읽어 버리는 마녀. 잠시 흥미로웠던 동안, 그녀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보통의 사람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녀도 결국 자신이 아닌 무언가 되어보려 안간힘을 쓰며, 나에게도 그렇게 될 생각은 없냐는 듯, 은근한 암시로 나를 꾀어내는 발칙한 여우에 불과했으니….


아무튼 나는 이 여우의 꾐에 빠져들지 않았다. 당최 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언가 되어보려 안달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이미 총체적인 무엇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치에 밝은 현자들은 이 세상을 철학의 공간, 즉, 그 어떤 정답도 없는 세계로 바꾸어 두었다-그런 측면에서 길호는 나나 정희를 알기 전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둔하게도 이 사람들은 착각 속에서라도 어떻게든 ‘있어 보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미 버젓이 ‘있으면서’ 말이다. 그리도 자기 실체를 벗고 허상 속에나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로 환원되고 싶다는 말인가.


소희에게는-그리고 정호와 길호에게도- 미안하지만, 나는 내가 이해되지 않아서 좋다. 이해되지 않는 동안 나는 실체로서 존재한다. 나는 너희처럼 애써 열화된 신비 속에 흡수되고 싶지는 않다.


그놈. 허자현. 이놈은 특이했다. 역시 이놈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있다기엔 너무나도 동일한 얼굴, 없다기엔 그 서사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었다. 반면 사고와 행동만큼은 신화 속에서나 살아 숨 쉴 것처럼 명확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존재의 ‘있음’을 이 세상은 용납하지 않는다. 결함이 없는 또 다른 나. 어쩌면 이놈은 겉보기에는 완벽한 것 같아도, SNS 안에서만 통하는 ‘신비로운 상징’ 속에 갇혀, 현실과 괴리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어떤 짐승들이 그를 이 상징 속에 가두어 두었는가! 아마 자현의 세상과 자현 본인이겠지.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상징을 해체할 것이다. 나는 이 신비를 무력화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그가 실존 인물이라고 해도-허자현은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대로라면 그는 사람들의 ‘이해와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 터였다. 그때야말로 그가 진정한 ‘허상’ 즉, 할루시네이션이 되어버리고 마는 때일 것이다. 소희의 주장과 반대로, 오히려 나처럼 되어야 하는 것은, 허자현이었다.


“A.X.A, 저녁 일곱 시면, 버지니아 주는 몇 시야?”


나는 결심했다.


“진기명기 님, 버지니아 주와 대한민국의 시차는 11시간이에요. 한국 시간을 기준으로 저녁 일곱 시일 때, 버지니아 주는 아침 6시가 되겠습니다.”


허자현을 구원하기로.


“저녁 일곱 시 되면, CharleyMike한테 메시지를 보내. 면담 신청한다고.”


길호와 정희는 부분으로 축소되는 길을 택했지만.


“네, 오후 일곱 시에 CharleyMike 님에게 면담을 요청해 볼게요. 그런데 너무 이른 시각은 아닐까요?”


‘또 다른 나’ 너만큼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자기 일인데, 그 정도는 어련히 알아서 하는 거지, 뭐.”


…….


직원들이 전부 퇴근한 뒤, 나는 사서-봇 한 대를 하린의 자리에 앉혀 두고, A.X.A의 메시지 수신음을 기다렸다. 아, 이토록 기대되는 만남이 얼마 만이던가. 이번에는 A.X.A가 적중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소희와의 연결을 주선한 것도, 길호와 정희와의 연결을 주선한 것도 전부 A.X.A였다.


‘지금은 주당 얼마쯤 하려나.’


뭐, 정말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돈 욕심은 없었으니 말이다. 단지, A.X.A가 조금 기특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드디어 이 기계가 내가 원하는 것을 파악했구나’


사서-봇을 끌어들인 것은, ‘면담’을 위해서였다. 자현이 미국에서 벌이는 사업의 일부였다던, 휴머노이드를 매개로 한 원격 대화 서비스 말이다.


나는 얼마 전, 자현과 음성 통화를 시도했다. 그도 흔쾌히 받아주었지만, 어째서인지 ‘다음에는 영상통화를 해보자’는 제안까지는 수락해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슬슬 성가셨을 것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고객’으로 접근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이 ‘면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소희와의 결별로 인한 상처를 연기해야 했다-.


팅.


“진기명기 님, CharleyMike 님에게서 답신이 도착했어요.”




사진: Unsplash의 Lyman Hansel Gerona



“Give this address to your robot. And proceed with the protocol I’d told you.”


“링크는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메시지를 남긴 뒤, 약 1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나는 A.X.A의 채팅을 열어 주소를 확인한 뒤, 하린의 자리에 앉아 있는 휴머노이드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러자 로봇은 화면을 보기 위해 잠시 구부렸던 자세를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어, 진기성 선생님, CharleyMike 님과 연결된 휴머노이드가 선생님의 자세와 음성을 재현해 보여주는 데 동의하십니까?”


아무래도 처음 사용해 보는 기능이다 보니,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니까, 동의하면, 반대편에 있는 로봇이 내 자세를 따라 한다는 거지?”


로봇이 대답했다.


“네, 그리고 저는 이후로 CharleyMike라는 사용자의 행동을 재현하게 됩니다.”


내가 동의하자, 사서-봇은 다시 자세를 고쳤다.


로봇을 통해 등장한 자현의 자세는 말 그대로 숙련된 상담사의 것이었다. 깍지 낀 두 손으로는 머리를, 바닥에 튼튼하게 고정된 두 다리로는 양 팔꿈치를 지지한 채, 경청하겠다는 의지를 또렷이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허자현 씨 당신이라는 건가?”


자현이 대답했다.


“그렇지.”


그때 나는 로봇의 검고 매끄러운 안면부 액정에 사람의 얼굴이 비치는 듯하여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거, 내 얼굴인가?”


그러자 로봇은 마치 정말 웃기다는 듯이 몸을 흔들고 손사래 치며 말했다.


“하하하, 안타깝게도 아직 A.X.A의 AI-로봇에는 그 정도로 뛰어난 동시 송출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아. 혹시 그쪽 로봇은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나?”


나는 자현 앞에 앉아 있을 또 다른 로봇이 따라 할 수 있도록,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 반대편에서 로봇이 내 행동을 재현하고 있는 걸까.


“아, 그런 것은 아니지.”


로봇 너머의 자현이 말했다.


“그래, 우리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예약된 상담은 아니라서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 더 여유 있는 대화를 나누려면, 다음에는 예약하는 편이 서로 나을 것 같아.”


“역시 그런가, 이거 참 미안해서 어쩐다. 다음엔 꼭 시간을 정해서 대화를 청하도록 하지.”


“그래, 듣자 하니, 실연의 아픔이 크다고 했나.”


물론 이 대화를 통해 내가 달성하고자 한 목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현의 생각 속에 그가 좇는 가치관과 이상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유랄 것은 딱히 없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저마다 '되고 싶은 나'를 가슴에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상징에게 야금야금 삶을 빼앗기게 된다.


나는 자현이 주변 사람들의 삶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자현이 그런 상징으로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 반납하고 있을 구체적 삶의 토탈리티totality를 되돌려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는 소희와 헤어진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자현의 내밀한 속내에 관한 이야기로 바통을 넘길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상징주의적 환원장치를 해체하기 위한 질문을 심어야 했다.


어쩌면 이것이 이제까지 즐겨 온 두 가지 유희가-관음과 사색이- 낳은 새로운 세 번째 유희의 탄생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뭐, 아무래도 3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짧다고 볼만한 시간은 아니지. 트렌드에 비한다면 말이야.”


“그렇구만. 나름 진지한 관계였나 보군.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진지한 관계라…. 아마 그보다는 유머가 부족한 관계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먼저 원인을 제공한 쪽은 나였어.”


“저런, 상심할 것을 알았으면서, 왜 그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얘기해 줘.”


“사실 우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진지함이 부족했어. 사실 내가 좀 그래. 충분히 진지하지도 않지만, 광대처럼 뻔뻔하거나 경쾌하게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성격은 아니지.”


“흠…. 그것 참 실망이로군.”


자현은 역시 이런 대화에 능숙한 것 같았다. 질문의 발전은 그 자세나 동작만큼 자연스러웠고, 그 발전하는 질문을 통해 연쇄적 사고chain of thought를 생성하며 마음 깊숙이 접근하려는 듯했다. 아무래도 나 역시 내 목표와 전략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내가 자현에게 당하고 말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서비스를 애용하는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다는 건가.’


나는 그간 소희와 있었던 일들을-이별 직전에 있었던 수치스러운 범죄를 제외하고서- 나름 솔직하고 진중한 태도로 개괄해 주었다. 그리고 소희와 내 사이에 남아있던 몇 가지 미해결 난제들을 자현에게도 공유했다.


1. 소희를 소개해 준 A.X.A의 의도와, 그 의도의 성패 여부.


2. 소희가 그린 무화과 남자그림에 적혀 있는 문구의 의미.


3. 소희가 그림을 그릴 때,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내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아주 잠깐이지만, 사서-봇은 기이할 정도로-미동조차 없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아마 괜찮은 답변을 들려주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이 정도로 정지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리 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두 기계 인간의 ‘자유도Degree Of Freedom 문제이겠지.


잠깐의 대기 후 그는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혹시 기성, 나를 알게 된 뒤, 나와 비슷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어?”


놀라웠다. 이 질문은 종국에 내가 자현에게 심어주려 했던 질문이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지?”


“그녀가 AI로 그림을 뽑아내지 않는 이유는, 그림의 과정 자체가 즐거울 만큼, 직접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그녀 안에 있기 때문일 테지.”


“그래서?”


“나는 그녀가 다툼 이후에 남긴 그림 속 ‘무화과’가 일종의 ‘알레고리’라고 생각해.”


“은유?”


“그래. 알레고리.”


“무화과가 인간 진기성에 대한 알레고리라면, 두 사물 간의 공통점은 뭐지?”


“fig은 한국어로 무화과지.”


“그렇지.”


“무화과는 꽃이 없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일 테지만, 사실 무화과는 꽃이 없는 식물이 아니야.”


“그런가? 내가 식물에는 조예가 없어서 말이야.”


“무화과 꽃은 무화과 열매 안에 함몰되어 있어. 그녀의 말대로지.”


처음 알았다. 이 녀석은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어떤 꽃은 안에서 핀다?”


“그래. 무화과는 기성 이전에 소희 자신에 대한 은유일 수 있어. 외부 세계가 변하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은 변함없이 자신 안에 있다는 거지.”


“듣고 있어.”


“그런 무화과를 기성에게도 빗대어 적용한다는 것은, 소중한 가치가 외부 세계가 아닌, 기성, 네 ‘안에서부터 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투영이 일 수 있지. 소희는 자신뿐 아니라, 너도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품고 있었던 게 아닐까? 물론 단지, 내 해석이지만….”


“그런데 그게 내가 너와 비슷하게 되는 거랑은 무슨 상관이지?”


로봇은 마치 ‘이걸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까’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소희를 기성에게 소개해 준 건, A.X.A였지.”


“그렇지.”


“나를 발견한 뒤, ‘도플갱어 조사클럽’이었나? 그 모임을 알게 된 것도 A.X.A의 소개 아니었나?”


[ 동면이인 조사계획 ]. A.X.A의 소개였지, 확실히.”


“A.X.A의 프로파일러 기능은 상상 이상으로 훌륭해. 처음 계정을 형성하는 자기소개 단계 이후로도, 사용자의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상호작용들을 토대로 해당 인물의 마인드셋을 상당 수준 재구성할 수 있어.”


“계속해 봐.”


“A.X.A가 SNS를 통해 누군가를 소개할 때는, 정확히 사용자의 가치와 흥미를 충족하는 경우야.”


“내가 이 기능을 활용해 대화 서비스를 시작한 뒤로 수개월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A.X.A가 재현한 허자현과 실제 허자현의 대화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더군.”


“지금 나랑 대화하고 있는 허자현도, 실제 허자현이 아닐 수도 있겠네.”


“하하하, 그건 아니야, 친구. 당신이 나에게 매우 큰 흥미를 갖는 것처럼, 나 역시 내 도플갱어인 당신에게 큰 흥미를 갖고 있어. 당신과 대화할 때는, 기회가 있다면 직접 대화를 선호하는 편이야.”


그렇다면, 어째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에는 그렇게 소극적인 것일까.


“그래서 예약 없이도 대화 요청에 응해준 건가?”


“사실이야.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기성과 소희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의지와 타협, 그리고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했을 테지만, A.X.A가 그 관계의 성패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겠지.”


“묘하군.”


묘하다고 느낀 부분은, 기시감이었다. 나는 분명 같은 의견을 어디선가 들었다.


“다만, A.X.A가 그녀와 기성을 연결해 주었다는 건, 두 사람의 흥미가 서로 부합하는 지점이 있었다는 것 아니겠어?”


A.X.A.


A.X.A였다. 분명 A.X.A도 자현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자현의 말이 소희와 내가 A.X.A를 사이에 두고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A.X.A야, 너는 왜 나랑 이 오빠를 매칭시켜 준 거야? 이 오빠가 궁금해 죽을 것 같은가 봐.”


“… 저는 데이터 기반의 학습으로 태어난 인공지능으로서, 제가 소히공듀 님과 진기명기 님의 관계를 지속하는 일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되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 진기명기 님과 소히공듀 님의 애정 관계는 전적으로 두 분의 의지와 이해, 그리고 양보와 배려에 달린 것으로서…….”


“혹시 더 들을 거야?”


“계속 들어보자.”


나는 소희를 떠올리다, 그만 기억 속 그녀에게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뭐, 나야 잘 모르지만, 소희는 그 ‘무화과’를 통해 그 최초의 흥미 말고도, 너에 대한 소망을 시사했다고 보는데…. 나는 이런 소망 자체가 일종의 ‘사랑’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군.”


“이 시점에 그게 과연 중요할지 모르겠네.”


소희도 종종 이렇게 말했었지.


“이미 나는 그녀를 떠나보냈어. 그래서 요점이 뭐야?”


“기성은 최초에 소희 대해 어떤 흥미를 가졌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것은 그가 고쳐야 할 습관인 것 같았다. 질문은 사람의 특권이니 말이다.


‘아차, 자현은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부터 자현과의 대화에서 미묘한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을 기대했던 것 같은데….”


“그렇지?”


“그렇지?”


나는 자현의 말을 복창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나도 그렇거든,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나와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한지를 면밀히 따져보는 편이거든.”


“그래서 나한테도 그런 질문을 했다는 건가?”


“사실이야.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A.X.A가 연결해 주는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을 알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측면에서 나랑 다르더라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겉돌자 슬슬 나도 작업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 자현의 마음속에 그를 ‘허상’에서 해방하기 위한 한 알의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야, SNS에 유포되는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이미지니까. 구체적인 인간의 ‘나머지 부분들’은 환원되기 마련이지.”


“정확해.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런 나머지 부분들을 알게 된 이후에 시작되지.”


“그게 어떤 거지?”


“그때부터 ‘거리의 문제’가 시작되는 거야.”


“거리의 문제?”


“그래. 쉽게 말하자면, 더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 비슷해지는 길을 택하겠지. 그렇게 하기 싫다면 지금의 거리를 유지하거나 더 거리를 두게 되는 거야.”


“이 이별에서 주로, 기성, 네 쪽에서 원인을 제공했다고 했는데, 결국 그녀와 비슷해지고 싶지 않아서 거리를 두었다는 말처럼 들리던데….”


“….”


너무나도 정확한 통찰이었다. 마치 소희와 내 관계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 심지어 소희의 마음과 내 마음 사이에서 수시로 왕래하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그렇게 설명을 잘했던가. 아니면, 자현이 그 정도로 인간의 심리와 관계에 도가 튼 것일까.


“반면에 나와는 계속 접촉을 이어가는 걸 보면, 기성, 너는 나와 비슷해지고 싶은 것이 아닌가?”


‘아마, 이것이 네 결론일 테지.’


‘길고 긴 우회를 통해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구나.’


그렇다면, 이제 나도 그를 위한 ‘한 방’을 선물해 줄 차례였다.


“천만에.”


“….”


로봇은 다시 한번 멈칫했다.


“그렇다면, 기성, 너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단지, 도플갱어가 신기할 뿐인 건가? 그렇다면, 조금 실망인데….”


그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현 역시 진기성처럼 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을 터였으니 말이다.


“물론 도플갱어의 정체를 밝히는 게 중요한 동기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어.”


“그게 뭔데?”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만약 내가 자현의 마음에 불온한 씨앗을 심는 데 성공한다면, 가장 적절한 시점은 바로 지금일 터였다.


“나는 네가….”


하지만 나는 헷갈렸다. 내가 자현에게 바라는 게 정확히 무엇일까? 소희에게는? 길호와 정희에게는?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바라는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진기성은 그런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그들이-소희, 그리고 길호와 정희가- 생각하는 진기성과 스스로 생각하는 진기성 사이에서 현기증을 느껴야 했을까.


혹,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했단 말인가? 대체 무엇을? 그리고 나는 왜 자현이 나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을까? 어째서 나는 자현을 ‘구원’해야겠다고 생각했는가.


내가 그들을 내심 비난하고 조소해 온 것은,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마음의 좌절이었을까? 내가 그들처럼 될 수 없기에, 그리고 그들도 나처럼 되지 못하기에, 그들이 생각하는 진기성은 사실 할루시네이션에 불과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자아상 역시 할루시네이션에 불과하다며, 스스로 암시하고 먹을 수 없는 신포도를 평가절하했던 것일까? 할루시네이션에 빠진 것은 정작 나 자신이었는가. 혹시 나는 자현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할루시네이션.”


나는 로봇을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네가 할루시네이션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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