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국내 도보여행을 가는 이유

by 괜찮은사람

차를 타고 오랜 시간 이동하는 것을 싫어한다. 운전면허에 연수까지 요란히 마쳤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운전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反) 운전파인 편. 그렇다고 조수석이나 뒷자리에 얻어 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운전할 때만 나타나는 '운전인성'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있는데 그 리듬에 휩쓸리는 것도 싫고 '얻어 탄다'는 기분도 싫다. 그래서 기차표가 없더라도 일정을 바꿔서라도 기차여행을 선호한다. 예매는 하지만 중간에 여차하면 내려버릴 수도 있는 '정차'라는 옵션이 있어서 갇힌 기분이 덜하다. 정속 주행하기에 급발진, 급정거 등이 없다.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제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데다가 양 옆으로 큰 창이 시원해서 시간도 잘 가는 것 같다.


'차'라는 이동수단은 분명 편리하다. 그렇지만 그 편리의 이면에는 운전자의 노고가 있다. 여행에 노동이라는 요소가 들어가는 것 자체가 여행의 본질을 흐리는 것 같다. 생각보다 주차 공간이 잘 구비된 곳이 드물다. 그 순간부터 차가 짐짝처럼 느껴진다. 내 행동에 제약을 만들고 때로는 나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바람에 비싼 주차비를 내야한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머무는 여행 스타일과는 상극이다. 그냥 걷다가 눈에 띄는 곳에 앉아도 보고 머물러도 보는 청개구리 같은 여행자에게 도보 여행이 최고다.


어려서부터 원치 않는 단체활동(ex. 수학여행 등)에 속한 기억 때문인지. 여행 갈 때는 혼자가 가장 편하다. 1과 1이 아님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생각보다 여행을 가면 변수 투성이다. 가고 싶었던 식당은 너무 붐비거나 갑작스러운 휴무로 닫혀있거나. 너무나 가고 싶던 장소인데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아 가는 것 자체가 무리가 되고 고통이 된다. 그런 변수들이 2 제곱이 되고 3 제곱이 되는 순간 여행은 고행이 된다. 특히 국내여행의 좋은 점은 '다음번에 또 오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이다. 유럽여행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들에게 이끌려서 '이번에 안 오면 언제 와'하면서 무리해서 강행하던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편리한지(!)


팔다리를 사방으로 뻗어도 침대 바깥으로 삐져나가지 않는 더블침대를 독차지하고 조식시간을 놓쳐도 손해 봤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쾌감. 누군가에게 재촉당하지 않아도 되는 게으른 여행자의 행복.

그냥 버스를 타고 아무 동네나 가서 식료품점을 기웃대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 막상 여행을 끝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순간은 그런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의 반짝임이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 명소, 맛집을 다녀오는 것과도 비할 수 없는 우연한 행복들. 보너스처럼 얻어내는 플랜비가 가져다주는 행복함.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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