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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31. 2024

7.  인종차별이었을까, 브뤼헤

네벨영노스덴에핀-60대 부부 여행기


*2024.05.19.(일)


 다음날 브뤼헤에 다녀오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숙소 앞에 있는 브뤼셀공원은 14세기에 왕족들이 사냥을 즐겼던 곳으로 브뤼셀왕궁과 나란히 연해 있었다. 어제저녁에 지날 때 보니 공원 한쪽에 오픈바가 있어서 술을 마시며 즐기는 사람들로 클럽을 방불케 했는데 그 요란했던 흔적이 공원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브뤼셀공원

  브뤼셀을 가리켜 아르누보의 수도라고 한다. 아르누보 워킹맵도 있다고 들었는데 중앙역이 바로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다.


브뤼셀 중앙역

  중앙역에서 왕복 티켓을 끊어 브뤼헤 행 기차에 막 올라서는데 바로 앞서 올라가던 남성이 갑자기 기차 문을 여닫는 레버를 닫는 방향으로 돌리는 게 보였다. 자칫 육중한 문에 끼이면 큰일 난다 싶어 본능적으로 난간을 잡고 빠르게 기차 계단을 오르는데 그 남성이 몸을 휙 돌리더니 느닷없이 내 왼쪽 어깨를 세게 밀었다. 순간 몸이 뒤로 휘청하는 것을 난간을 쥐고 가까스로 버텼다. 너무 놀라서 남성을 쳐다봤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객차 안으로 사라졌다. 남성의 몸에서는 술냄새와 지린내가 났다.                



  객차 안에 있던 사람들 몇몇도 이 상황을 봤는지 다들 놀란 표정들이었다. 난간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플랫폼 돌바닥으로 그대로 떨어졌을 테고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벨기에가 유독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 테러인가 싶었다. 바로 뒤에 남편이 있었는데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을 쓸 새도 없었다. 남편에게 상황설명을 하니 조금 전 그 남성이 플랫폼에 서 있던 백인 여성들에게도 다가가 종이 같은 것을 찢어 뿌리는 바람에 여성들이 놀라 몸을 피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렇다면 최근 심심찮게 일어나는 묻지 마 범죄인가. 그 남성은 나를 밀치고 객차를 통과해 출발 직전에 기차에서 내렸다. 시선은 차창밖을 보고 있어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4주 가까이 남아 있는 여정을 잘 끝낼 수 있을지 걱정이 몰려왔다.      

     


  1시간 후에 브뤼헤역에 내렸다. 브뤼헤는 역사지구 전체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물의 도시라고 가이드북은 적고 있다. 기차에서 역사지구로 가는 길은 나무들이 많아 공기 속에서 깊은 숲 향기가 났다. 길 한쪽으로는 개울이 따라 흐르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아름다운 운하가 나오고 이어 오랜 세월을 지나온 중세시대 건물들이 보였다.          



  브뤼헤에도 암스테르담에 있는 베긴 수도원과 같은 베긴회 소속이었던 수도원이 다. 17세기에 세워진 이곳 수도원은 소외당한 독신 여성들과 미망인들의 생활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한다. 12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베긴회의 의미와 활동을 찾아 읽다 보면 뭉클한 감동이 전해진다. 수 세기의 세월이 지나며 지금은 그 역할이 희미해지고 소속도 바뀌었지만 여성으로서 깊은 연대가 느껴졌다. 때마침 수도복을 입은 수녀님 한 분이 내 앞을 지나 수도원 뜰로 바삐 걸어가셨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베긴 수도원을 나서자 수도원 앞을 흐르는 운하가 주변 건물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깊고 고즈넉한 풍경이 몹시 아름다웠다.               



  역사지구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일요일을 맞아 벼룩시장이 한창이었다. 운하를 오가는 보트를 타려는 사람들의 줄도 길게 이어졌다. 벨기에는 감자튀김도 유명하다더니 사람들은 감자튀김을 사서 길 곳곳에 서서 먹었다. 프렌치프라이의 시작이 프랑스가 아니라 벨기에였다고 읽었던 기억이 났다. 우리도 감자튀김을 사서 먹어봤는데 그냥 익숙한 감자튀김 맛이었다.      



  종루와 성모교회를 지나 마르크트 광장에 도착하니 광장 한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길드하우스들이 보였다. 넓은 광장은 오토바이 라이더들의 모임이 있는지 절반 가까이 오토바이들이 주차되어 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광장을 빠져나와 성혈예배당을 찾았다.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플랑드르 백작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예수의 성혈이 모셔져 있는 예배당이었는데 성혈을 보려는 줄이 길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잠시 망설여졌지만 줄 끝에 가서 섰다. 그리고 1시간을 기다려 성혈을 볼 수 있었다.       


마르크트 광장의 길드하우스

  

  브뤼헤 기차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장실 사용도 할 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인근에 있는 와플집에서 와플을 먹었는데 살짝 쫄깃하고 겉바속촉함이 일품이었다.  맛에 반해 이날 이후 매일 한 개씩 먹었던 벨기에 와플.           


 

  브뤼셀로 돌아와 벨기에 왕립미술관을 찾았다. 입구에 한글로 크게 벨기에 왕립미술관이 표기되어 있어 환대받는 기분이 들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여느 미술관과는 다르게 왕궁에 들어와 있는 듯한데 미술관이기 이전에 샤를 궁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관으로 설계된 건물들보다 관람하기에 훨씬 쾌적했다.   


벨기에 왕립미술관

  네덜란드에 이어 플랑드르 미술의 본고장에 와 있다는 기대와 설렘을 갖고 작품들과 만났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과 한스 멤링, 보쉬, 베이던 그리고 수많은 루벤스의 작품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십 대의 시간을 아련히 추억하게 해주는 피터르 브뤼헐 부자작품들도 많이 컬렉션 되어 있었다. 인물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그린 작품보다 실제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들이 괴리감 덜어 낸 친밀함을 줄 뿐더러 집중과 공감을 극대화시키는 힘이 느껴졌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한스 멤링의 <성모와 아기>
피터르 브뤼헐 2 <베들레헴에서의 호구조사>
피터르 브뤼헐 <새 덫이 있는 겨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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