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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06. 2024

1. 시작부터 산전수전 공중전

'쫄지않고 뚜벅뚜벅'-60대 부부의 세계 여행기


  오전 9시 30분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내렸다. 헬싱키에서 환승을 위해 머문 2시간 40분까지 더하면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약 20시간 만이다. 핸드폰 유심부터 교체하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을 향해 걸었다. 35시간 가까이 깨어있는 중이라 조금 멍한 상태였지만 여행이 주는 시너지로 에너지는 충분했다. 공항에서 기차로 20여 분이면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할 테고 예약해 둔 반 고흐 뮤지엄 입장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니 시간은 넉넉했다. 아니 그래야 맞았다.


  여행할 8개국 중 7개국이 유로존에 속해 있어 환전이 간단하겠다 싶었는데 웬걸 자국 통화를 쓰는 나라가 4개국, 유로까지 더하면 총 5종류의 통화가 필요했다. 해외여행 시 늘 사용하는 카드와 비상용 카드 하나까지 2개면 충분했으나 출발 5일 전에 자국 통화를 쓰는 북유럽 국가들의 환전이 불가하다는 은행 쪽 답변을 들었다. 부랴부랴 필요한 카드 하나를 추가로 발급받았다. 현금이 필요한 경우를 빼면 모든 여행지에서 새로 발급받은 카드 하나면 가능할 터였다.




  티켓 머신에서 새 카드를 이용해 기차 티켓을 구매하려는데 핀 코드 오류가 났다. 잘 못 눌렀나 싶어 같은 번호로 두 번째 시도를 했는데 또 오류. 남편이 티켓 머신 화면을 보더니 핀 코드가 6자리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핀 코드 6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분명 4자리로 설정했는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예측 가능한 숫자 6개를 눌러 세 번째 시도를 했는데 또 오류.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지. 다시 하려니 핀 코드 3번 오류로 카드 사용이 정지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헐, 환전 지갑용 카드라서 환전한 여행경비를 모두 넣어놓았는 데 사용정지라고?


  가져간 두 번째, 세 번째 카드도 핀 코드 오류. 3번까지 시도했다가는 처참하게 사용정지가 될 것이 뻔했다. 남편도 시도해 봤으나 역시 핀 코드 오류.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여행 첫날인데 당장 쓸 수 있는 것은 달랑 현금 200유로뿐.

    

  티켓을 살 수 있는 현금이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티켓 오피스를 찾았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카드 결제를 요청해 봤는데 여기서는 결제가 되네. 이건 또 뭐지.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차를 타기 위해 역무원이 알려 준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기차가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카드 문제로 지체된 시간을 생각하며 서둘러 기차에 올랐다. 앞으로 일어날 상황은 까마득히 모른 채.




  공항을 오가는 기차치고는 좀 낡고 여행 가방 놓는 도 없는 게 이상했으나 20여분 후면 중앙역에 도착할 테니 가는 동안 카드부터 살려야 했다. 확인해 보니 어플에서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면 된다고 검색된다. 재설정을 위한 본인 인증은 한국 전화번호로 받아야 하니 현지 유심을 빼고 다시 한국 유심으로 교체하려는데 남편이 중앙역 가는 기차 맞냐고, 20분 정도 왔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영 아니라는 거였다. 카드 해결을 위해 폰에 코를 박고 있다가 그제야 구글맵을 확인해 보니 기차는 중앙역과는 다른 방향으로 한참을 벗어난 상태였다. 그간 여러 나라를 여행했어도 이런 들은 처음이라 연속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건너편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으니 중앙역 가는 기차가 아니란다. 확인해 주겠다며 폰을 보더니 다음 정거장에 내려 갈아타라고 알려준다. 환승을 위해 다음 정거장에 내려보니 한 눈에도 도시는커녕 시원한 자연이 시야에 들어왔다. 환승 플랫폼이 달라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내려 환승 기차에 막 탔는데 아차! 티켓 체크인을 안 했네. 체크인을 안 하고 탑승했다 걸리면 티켓 가격의 수십 배를 물어야 다. 체크인 머신을 물어보니 기차에는 없고 체크인을 하고 탑승해야 한다는 대답. 아이고. 출발 전이라 부랴부랴 다시 하차.


  체크인을 위해 개찰구로 내려가니 바깥쪽에서 티켓을 넣어야 하는데 나갈 방법이 없었다. 마침 직원이 지나가길래 티켓을 보여주고 방법을 물었더 여기 중앙역까지는 거리가 더 멀어서 티켓 가격이 달라 체크인이 불가하다고 했다. 티켓을 다시 구입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나갈 수 있도록 개찰구를 열어줬다.




  여전히 티켓머신은 카드정지라는 메시지가 떴다. 입구에 앉아 있는 직원에게 티켓오피스를 물으니 여긴 작은 역이라 없고 티켓머신에서만 살 수 있다고 했다.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티켓머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전으로는 살 수 있네. 그런데 동전은 어디서 구함? 역 안을 둘러보니 빵집과 작은 편의점이 있길래 빵집에 들어가서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물었으나 카드결제만 가능해서 동전이 없다고 했다. 편의점으로 뛰어가 물어보니 선뜻 동전을 교환해 줬다. 얼마나 고맙던지. 드디어 티켓을 사서 체크인을 하고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나를 걱정했을 남편 얼굴을 보니 조금 과장해서 부둥켜안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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