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난 너희들한테는 안 팔래!

배려는, 어떤 사람에게는 낭비다

by luna Han 윤영

지난 4월, 나는 식당 매각을 결심했다.

스페인 부동산 사이트 idealista에 매물 광고를 올리자 첫 구매 희망자가 나타났다.

나는 스페인어가 서툴렀고, 그래서 남편 번호를 연락처로 남겼다.

그들과 식당을 보기로 약속했고,

직원들에게는 아직 매각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식당 문 열기 전 시간으로 일정을 잡았다.

<무례가 뭔지 모르나>

직원들에게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식당 매각을 준비하고 있었고,

계약이 확정되면 남은 한 달 동안은

직원들에게 충분한 안내와 함께

퇴직금과 이직을 준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웨이터 G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사장님, 저기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해요. 여기 식당 팔아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나는 급히 뛰어나가 밖을 확인했다.


중국인 세 명이 서 있었다.

아버지와 삼촌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 둘, 그리고 젊은 여자 하나.

그나마 스페인어로 대화가 되는 건 여자였다.


나는 말했다.

“지금 영업 중이고, 약속은 내일입니다.

직원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얘기도 없이 와서 직원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곤란합니다.

남편과 정한 시간에 맞춰 다시 와주세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구두 약속, 그리고 불쑥 등장>

다음 날, 남편과 함께 식당을 둘러본 그들은 마음에 든다며

라이선스를 확인하고 5월 1일에 계약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중국으로 돌아가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이 팀에게 넘기자”고 구두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주방 수리를 한다며 치수를 재고, 식당 안쪽까지 둘러봤다.

나는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계약도 안 했고, 직원들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게 별 문제가 아닌 듯했다.

<계속되는 연기, 그리고 변명>

다음 주, 라이선스를 확인한 뒤

그들은 “다음 주에 계약하자”고 했다.

나는 기다려보겠다고 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점점 커졌다.


2주가 흘렀고, 계약 당일 아침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돈이 없다.”

<traspaso, 권리금이란 무엇인가>

스페인의 매장 계약은 한국과 방식이 다르다.

한국의 보증금과는 구조가 조금 다르다.

스페인에서는 월세 2~4개월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fianza(피안사)**라는 이름으로 맡기고,

이는 계약 종료 시 돌려받는 보증금 개념이다.


하지만 식당은 다르다.

업종별 허가제로 운영되고,

주방 설비와 환풍 시스템, 화장실 크기등 모두 규정이 있다.

기존 시설과 라이선스를 함께 넘기는 방식이 traspaso다.

우리나라 권리금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롭다.


traspaso란 결국

내가 매일매일 쏟아온 시간과 노동, 감정과 구조를 넘기는 일이다.

<또 다른 조건, 또 다른 실망>

5월, 또 다른 중국인 팀이 연락해왔다.

한국식 바비큐 식당을 하고 싶다고 했다.

조건도 괜찮았고, 환풍 설비에 필요한 별도 라이선스까지 요청했다.


남편은 라이선스 담당자와 미팅 일정을 직접 잡았다.

그들과 함께 만나 계약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던 우리에게 도착한 건 딱 한 줄이었다.


“동업자가 동업을 안 하겠대요.”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끝났다.

<하루 체험이라는 핑계>

6월 초, 또 다른 팀이 식당을 보러 왔다.

중국인 여성과 스페인 남편 부부였다.

남편과 함께 식당을 둘러보고, 한참을 이야기한 끝에 나를 불렀다.

한국식당을 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계약 전에 하루 식당에서

우리 시스템을 직접 체험하고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좋다고 했고, 나는 하루 동안

식당 운영 방식과 앞으로 내가 하려던 계획까지 알려줬다.


그런데 그들은 말했다.

“그대로 할 거예요. 메뉴도, 식당 이름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이 서늘해졌다.

<두 번째 무단 방문>

다음 날 아침,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그 여자분이 또 식당 안에 들어와 계세요.”


나는 단호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은 절대 안 돼.”

전날 하루 종일 식당에 있던 그녀 때문에

직원들은 이미 매각 계획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들에게 설명하며 안심시킨 참이었다.


그런데 또?


남편은 “오늘 저녁 그녀의 남편이 와서 계약할 거야. 하루만 더 보게 하자”고 말했다.

그날 밤, 그녀와 남편, 그리고 친구 한 명이 식사를 하러 왔다.

계약을 핑계로 밥값도 내지 않았다.

나는 그들 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들은 늦게까지 머물렀고,

그녀의 남편 생일이 며칠 뒤라며,

포르투갈에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다음 주 수요일에 계약하자며 나섰다.

<그냥, 난 너희들한테는 안 팔래>

수요일 저녁 8시, 우리는 변호사와 함께 식당에서 기다렸다.

그들은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꺼져 있었다.


9시가 다 되어 식당 문이 열렸고, 그들이 들어왔다.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2시간 넘게 남편과 변호사와 이야기했다.


중간에 그녀는 직원들에게 다가가

“이 식당을 내가 사면, 너 계속 일할 거야?”라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들은, 절대 아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나는 그 테이블에 앉았다.

왜 계약이 안 되는지 묻자,

그녀는 매출 자료를 요구했고,

“직원들이 그만두면, 우리는 어떻게 시작하죠?”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을 탁 쳤다.

그냥, 난 너희들한테는 안 팔래.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식당을 자기 것처럼 다루고,

약속은 지키지 않으며,

직원들에게까지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그들에게

더는 이 공간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그들에게 조목조목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했고,

그들이 어떤 선을 넘었는지 하나하나 짚어 보내고 나니,

겨우 숨이 가라앉았다.


세 번 모두, 나는 같은 방식으로 실망했고,

이제는 솔직히 무섭기까지 했다.


이게 어떤 사람들의 방식이었을 뿐,

그들이 속한 나라 전체로 확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에겐, 반복이 경계로 남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 연재 안내

이 에세이는 실명으로 연재되는 회복의 기록입니다.

Luna Han 윤영의 연재 일정

《이혼해도 괜찮아》 :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말 한마디 못한 채 끝난 결혼,

이제는 나를 위해 입을 여는 이야기.

《루나의 세비야》 : 매주 화요일, 토요일, 일요일

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된 도시,

세비야에서의 일상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진실, 유죄》 : 매주 목요일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죄가 되는 시대.

그럼에도, 말해야만 회복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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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