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삼백 킬로미터에서 만난 인연

마음은 더 가까이

by luna Han 윤영

주말이면 예약 노트북은 금세 빽빽해진다.

종이를 덧대가며 메모해야 할 만큼, 정신없이 바쁘다.

하지만 6월과 7월은 그보다 조금 숨이 트이는 시기다.


오늘은 오랜만에 예약 하나 없는 토요일이었다.

조용히 흘러갈 줄 알았던 하루는, 오히려 예약 없는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오더가 지나갈 때마다 주방에서 나와 홀을 살핀다.

그때였다. 한국에서 오신 듯한 부부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셨다.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입맛에 맞으신가요?”


보통은 현지 음식을 드시다가 한국의 매운맛이 그리워 들르시는 분들이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족한 건 없는지 여쭤보니, 정말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나는 마음을 담아 그렇게 인사를 드렸다.


저녁에는 스페인 현지 손님 여덟 분의 예약이 잡혀 있었다.

예약 시간에 맞춰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여덟이 아니라 스물한 명이었다.

미리 전화로 재확인까지 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급히 테이블을 재배치하고 주방으로 돌아와 전쟁 같은 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여름 주방의 열기 속에서 빠르게 오더를 맞추고,

스텝들과 호흡을 맞추며 몰아치는 주문을 감당해야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나는 잠시 숨을 돌리려 홀로 나왔다.

그 순간, 점심에 뵈었던 그 한인 부부가 아직도 자리에 앉아 계신 걸 보았다.

멀리서도 반가운 눈빛이 오갔다.

나는 자연스레 다가가 다시 인사를 드렸다.


부인께서 웃으며 내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두 분 다 참 따뜻하고 유쾌하셨다.

부드러운 말투의 아내분은 웃을 때마다 눈가가 먼저 움직였고,

남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다정하게 받아주셨다.

내 한국말을 시원하게 들어주시고, 음식 맛도 진심으로 평가해주셨다.


“한 달 여행 중 가 본 한식당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손님 많은 걸 보니 저희도 괜히 기분이 좋아요.”


나는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진심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해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분은 동시에 손사래를 치셨다.


“점심때도 그렇고, 저녁때도 그렇고

우리가 벌써 한국에 와 있는 줄 알았어요.

다음에 또 올 건데, 이 식당 계속 있어야 해요!”


그 순간, 나보다 몇 살 많은 아내분이 내 손을 토닥토닥 다독여주셨다.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서로의 눈에 맺힌 울컥한 마음을 조용히 알아차렸다.

그 뭉큼한 감정은, 말보다 먼저 눈빛이 전해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다시 세비야에 오실 일 있으시면, 꼭 연락 주세요.

제가 식당을 그만두더라도, 우리 집에서 꼭 한 끼 정성껏 대접할게요.”


한국에서 살았다면, 아마 이분들을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 삼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이렇게 따뜻한 인연을 만난다.


우리는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다시 만나도 반가운, 좋은 친구가 되기로 했다.

여행의 마지막까지 무탈하게,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채우시길.


멀고 낯선 도시에서 만난 인연은

그렇게, 마음속에 조용히 남는다.


그리고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 연재 안내

이 에세이는 실명으로 연재되는 회복의 기록입니다.

Luna Han 윤영의 연재 일정

《이혼해도 괜찮아》 :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말 한마디 못한 채 끝난 결혼,

이제는 나를 위해 입을 여는 이야기.

《루나의 세비야》 : 매주 화요일, 토요일, 일요일

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된 도시,

세비야에서의 일상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진실, 유죄》 : 매주 목요일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죄가 되는 시대.

그럼에도, 말해야만 회복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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