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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동산이 Nov 07. 2024

2장 4편 부여夫餘 (1) #2

부여가 일어나기까지 (2/4)

발發은 본래 도하와 영지가 있던 요서 땅의 무리로 그들이 스스로 쓰던 이름은 불弗이었습니다. 그 뒤, 단-군이 다스리던 조선을 따랐는데 이 때에 그들을 이르던 이름이 발이었고, 뒤에 물가에 머물러 점차 다스림을 벗어나기 시작하여서는 이윽고 머무는 땅을 본래의 무리 이름인 불弗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예 사람들을 통해 아사달에 들어온 사람들로 말미암아 아사달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바깥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깥으로 겨간 무리들 가운데에, 앞서 단-군을 따라 아사달을 떠나 않지만 그렇다고 기-자 그 뒤 조선을 다스리던 조선-후들 깊이 따르지도 않던 조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선 사람들이 조선-후를 깊게 따르지도 않으면서 아사달에 머르기로 하였던 것은 우두머리 달는 데 따른 불편함보다 본래 있던  머무르는 익숙함을 요하게 여 때입니다. 리하였기에 다시 떠나서 이른 곳 또한 다른 무리보다 익숙한, 단-군이 다스리는  - 발 있는 이었습니다.


앞서  단-군을 따라 아사달을 떠났고 단-군 또한 그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다만, 발은 단-군과 더불어 조선을 일으켰던 무리는 아니었고 그 뒤로도 본래의 무리 이름을 지키다가 결국 머무는 땅, 무리를 래대로 이름하였으니, 비록 단-군을 우두머리로 받들었지만 조선 사람들과 달리 같은 무리가 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조선을 따르기는 해도 여전히 다른 무리였습니다.


때문에 단-군은 발의 땅 새로 어와 머물던 조선 사람들, 비록 그들 오랫동안 조선-후와 단-군 사이에서 어느 쪽도 분명따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받아들여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 때를 대비하고자 하였니다. 하여 조선 사람들 받아들여져 발의 땅 가운데 서쪽 땅, 발의 땅 동북쪽에서부터 서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  자리잡았습니다.




그 뒤 아사달의 조선 사람들이 연에 밀려 남쪽으로 움직이고 마침내는 패-수를 건너 남쪽으로 가게 될 때까지, 앞서 발의 땅 가까이에 이르렀 머무르던 조선 사람들은 자리잡았고 그리하여 차츰 무리를 이루습니다. 그 뒤 위만이 준을 패배시키고 조선을 다스리면서 발과 단-군의 관계에도 점차 영향을 주는데, 그보다 앞서 또다른 무리인 동호東胡가 가까운 땅에 들어왔습니다.


이 때의 상황에 대하여, 사기 흉노열전 흉노의 동쪽 땅은 상곡-군에서 동쪽으로 가서 예, 맥, 조선과 맞닿았다[1장 4편 C-2-(2):㉕-㉗]고 적었습니다.  연에게 패배하여 아사달을 떠났던 조선 사람들이 처음 이르렀던 땅의 동쪽, 예 사람들, 맥 사람들, 조선 사람들이 구려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던 땅 상곡-군에서 요동-군에 이르던 흉노의 동쪽 땅 동쪽에 있었습니다.


1장 4편 C-2-(2) 사기 흉노열전: ① 10년 남짓을 지내며 ② 몽염이 ③ 죽었고 ④ 여러 후들[侯]은 ⑤ 진秦에 등돌렸다. ⑥ 중(-원)[中]의 국들[國]이 ⑦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⑧ 여러 사람들[諸], ⑨ 진秦이 죄지은 사람들을 옮겼던 바 ⑩ 변방을 지키는 이들[戍邊者] ⑪ 모두 ⑫ 돌아갔다. ... ● 이윽고 ⑬ (흉노의 선우) 모돈冒頓이 ⑭ 군사들이 ⑮ 이르러 치도록 하니 ● (군사들이) ⑯ 동호東胡를 크게 깨트리고 왕王을 없앴다[滅]. ... ● (모돈은) ⑰ 진秦이 몽오로 하여금 흉노에게서 빼앗도록 하였던 곳이었던 곳들을 모두 되돌리니 ⑱ (흉노의) 땅이라는 곳은 ⑲ 한漢과 더불어 ⑳ 옛 하남의 새들을 관關으로 하여 ㉑ 조나朝那, 부시膚施에 이르렀다. ● 이윽고 ㉒ 연燕, 대代를 침범하였다. ... ㉓ (흉노의) 여러 왼쪽 땅[方]의 왕들[王], 장수들[將]은 ㉔ 동쪽 땅에 머물렀는데, ● (그 동쪽 땅은) ㉕ 곧바로 상곡(-군)[上谷]에서 가는 곳이었으며 ㉖ 동쪽으로 가서 ㉗ 예穢, 맥貉, 조선朝鮮과 맞닿았다. ... ㉘ 이 때 ㉙ 한漢이 ㉚ 처음 ㉛ 중(-원)[中]의 국들[國]을 바로잡았다. ①十餘年②而蒙恬③死④諸侯⑤畔秦⑥中國⑦擾亂⑧諸⑨秦所徙⑩適戍邊者⑪皆⑫復去...●及⑬冒頓⑭以兵⑮至擊●⑯大破滅東胡王...●⑰悉復收秦所使蒙恬所奪匈奴⑱地者⑲與漢⑳關故河南塞㉑至朝那膚施●遂㉒侵燕代...㉓諸左方王將㉔居東方●㉕直上谷以往者㉖東㉗接穢貉朝鮮...㉘是時㉙漢㉚初㉛定中國


이 땅은 앞서   쪽에 요동-군 두던 곳이니, 연은 또한 요동-군의 동쪽, 이 땅과의 사이에 장들, 새들을 만들었니다. 그러한 장들, 새들이 자리한 곳을 이으면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선을 반시계방향으로 약간 돌려 기울여 놓은 선이 되기 때문에 새들의 바깥은 동쪽이라고도, 북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예 사람들, 맥 사람들, 조선 사람들이 머물습니다.


그런데 삼국지 위서 오환전 주석이 인용한 - 또다른 - 위서는 오환이 동호였다[A:-②]고 적고 한漢 초에 흉노가 처음 동호를 그 국을 없애니 남은 무리들이 오환-산을 지[A:-⑧] 적었습니다. 삼국지 위서 선비전 주석이 인용한 위서는 선비가 동호의 남은 무리였고 선비-산을 지[B:-]고 적고 또한 요동-군의 새 바깥에 숨어들는데[B:⑤] 오환과는 서로 맞닿아 있었[B:-⑪]고 적었습니다.


A 삼국지 위서 오환전 주석 인용 위서: <① 오환烏丸은 ② 동호東胡였다. ... ③ 한漢 초에 ④ 흉노匈奴 모돈冒頓이 ⑤ 그(= 동호의) 국國을 없애니 ⑥ (동호의) 남은 무리들이 ⑦ 오환-산[烏丸-山]을 지키니 ● 이어 ⑧ (오환을) 호號로 삼도록 하였다.> <魏書曰①烏丸者②東胡也...③漢初④匈奴冒頓⑤滅其國⑥餘類⑦保烏丸山●因⑧以爲號焉>
B 삼국지 위서 선비전 주석 인용 위서: <① 선비鮮卑가 ● 또한 (오환과 같이) ② 동호東胡의 나머지였는데(= 남은 무리들이었는데) ● 따로 ③ 선비-산[鮮卑-山]을 지키니 ● 이어 ④ (선비를) 호라고 하였다. ... ● (선비는) 멀리 ⑤ 요동(-군)[遼東]의 새塞 밖에 숨어들어[竄] ⑥ 나머지 국들과 다투어 견주지 않았기에 ⑦ 이름이 한에는 오고감이 없었지만 ⑧ 스스로 ⑨ 오환과는 더불어 ⑩ 서로 ⑪ 맞닿아 있었다.> <(魏書曰)①鮮卑●亦②東胡之餘也●別③保鮮卑山●因④號焉...●遠⑤竄遼東塞外⑥不與餘國爭衡⑦未有名通於漢⑧而自⑨與烏丸⑩相⑪接>


선비 사람들이 숨어든 곳은 요동-군의 새 바깥, 그 가운데에서도 북쪽에 자리하여 흉노의 동쪽 땅과 맞닿았다고 하였던 땅 곧 예 사람들, 맥 사람들, 조선 사람들이 머물고 있던 땅이었습니다. 선비 사람들이 맞닿아 있다고 하였던 오환 사람들 이곳과 그 북쪽 땅에 들어와 물렀는데, 뒤에 한이 흉노를 깨트린 뒤에도 그리하였습니다.




부여에 대해 처음 적은 기록은 당시 오환 대해 적으며 부여 또한 적고 있기에, 오환이 머무르던 요동-군의 새 바깥의 땅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하게 펴둘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뒤로 돌려 부여가 일어나고서 한참 뒤인 MC-77/10[+3)로 가서, 그 때의 일을 적은 자료들을 통해 그 때까지 오환이 여전히 요동-군의 새 바깥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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