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와 하-백[河-伯] (1/4)
이제 해모수의 이야기를 통해 금와의 이야기로 가보지요. 해모수의 이야기에는 보다 뒤의 일들로 이어지는 장소와 사람들이 담겨 있는데, 그러한 요소들은 부여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합니다. 때문에, 이번 주제에 대힌 글들에서는 앞서, 환-인과 환-웅에 대해 그리고 흘승-골-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간단히 살폈던 해모수의 일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며 사이사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까지 모두 채워가도록 하겠습니다.
해모수의 이야기를 적은 자료는 동명왕편 주석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입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삼국사기가 지어지기에 앞서 지어진 옛 삼국사를 인용하였는데, 먼저 본기라는 이름의 자료를 인용하여 해모수가 나타나기에 앞서 있었던 일들 그리고 해모수의 일들을 간단히 적은 뒤에 이어 해모수의 일들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적은 일들과 거의 같은 것들입니다.
먼저 동명왕편 주석이 인용한 본기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모두, 부여-왕 해부루가 나이가 많았는데 아이가 없었다[A-1:②-④ = B-1-(1):①-③]고 적은 구절로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어 두 자료들은, 해부루가 자리이을 아이를 구하고자 산, 강에 제사지내다가 곤-연이라는 연못 가에 있던 돌 아래에서 아이를 찾아 금와라고 이름하고 거두어 돌보았고 아이가 자라서 왕태자가 되었다[2장 4편 #17 Q-10:①-㉕ = B-1-(2):①-㉑]고 적었습니다.
A-1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① 이 때[是](= 고구려가 세워졌을 때)보다 앞서 ② 부여-왕[扶餘-王] 해부루解夫婁는 ③ 나이가 많았는데 ④ 아이가 없었다. ①先是②扶餘王解夫婁③老④無子
B-1-(1) 동명왕편 주석 인용 본기: <① 부여-왕[夫余-王] 해부루解夫婁는 ② 나이가 많았는데 ③ 아이가 없었다.> <本記云①夫余王解夫婁②老③無子>
2장 4편 #17 Q-10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부루가) ① 산山, 강[川]에 제사지내고 ② 자리이을 아이[嗣]을 구하였다. ③ 그(= 부루가) 타던 바였던 말이 ④ 곤-연[鯤-淵]에 이르러 ⑤ 큰 돌을 보았는데, ● (말과 돌이) ⑥ 서로 ⑦ 마주하여 눈물을 흘렸다. ⑧ 왕王이(= 부루가) ⑨ 이 일[之]을 이상하게 여기고[怪] ⑩ 다른 사람[人]에게 시키니 ● (그 사람이) ⑪ 그 돌을 돌렸는데, ● (그 돌에) ⑫ 나이어린 아이[小兒]가 있었고 ● (아이는) ⑬ 금색 개구리[蛙] 모양이었다. ⑭ 왕이 ⑮ 기뻐하고 ● 말하기를 "⑯ 이 아이[此]는 ● 이어 ⑰ 천天이 ⑱ 나에게 주는 ⑲ 자리이을 아이[令胤]다."라고 하였다. ● (왕이) 이어 ⑳ 거두어 그 아이[之]를 돌보았다[養]. ㉑ 이름하여 ● (말하기를) ㉒ 금와金蛙라고 하였다. ● 이윽고 ㉓ 그 아이[其](= 금와)가 ㉔ 자랐고, ㉕ 서서 (왕)태자太子가 되었다. ①祭山川②求嗣③其所御馬④至鯤淵⑤見大石●⑥相⑦對流淚⑧王⑨怪之⑩使人●⑪轉其石●⑫有小兒●⑬金色蛙形⑭王⑮喜●曰⑯此●乃⑰天⑱賚我⑲令胤乎●乃⑳收而養之㉑名●曰㉒金蛙●及㉓其㉔長㉕立爲太子
B-1-(2) 동명왕편 주석 인용 본기: <(부루가) ① 산山, 강[川]에 제사지내고 ② 자리이을 아이[嗣]을 구하였다. ● 그(= 부루가) ③ 타던 바였던 말이 ④ 곤-연[鯤-淵]에 이르러 ⑤ 큰 돌을 보았는데, ● (돌이) ⑥ 눈물을 흘렸다. ⑦ 왕王이(= 부루가) ⑧ 이 일[之]을 이상하게 여기고[怪] ⑨ 다른 사람[人]에게 시키니 ● (그 사람이) ⑩ 그 돌을 돌렸는데, ● (그 돌에) ⑪ 나이어린 아이[小兒]가 있었고 ● (아이는) ⑫ 금색 개구리[蛙] 모양이었다. ⑬ 왕이 ● 말하기를 "⑭ 이 아이[此]는 ● 이어 ⑮ 천天이 ⑯ 나에게 주는 ⑰ 자리이을 아이[令胤]다."라고 하였다. ● (왕이) 이어 ⑱ 거두어 그 아이[之]를 돌보았다[養]. ⑲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⑳ 금와金蛙라고 하였다. ● (금와가) ㉑ 서서 (왕)태자太子가 되었다.> <(本記云)①祭山川②求嗣●③所御馬④至鯤淵⑤見大石●⑥流淚⑦王⑧怪之⑨使人●⑩轉其石●⑪有小兒●⑫金色蛙形⑬王●曰⑭此⑮天⑯錫我⑰令胤乎●乃⑱收養之⑲名●曰⑳金蛙●㉑立爲太子>
그런데 이 구절들 가운데에는 묘한 것이 있으니, 부루가 천天 또는 천-제[天-帝]가 뒤를 이을 아이 금와를 주었다[2장 4편 #17 Q-10:⑯-⑲ = B-1-(2):⑭-⑰]고 말하였다고 적은 구절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 또는 천-제는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환桓 곧 뒤의 환-나에 머물러 그런 호를 쓰며 부루 대신 그가 거느린 옛 조선 사람들 곧 부여 사람들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려 하던 다른 우두머리, 해모수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부루는 어째서 자리이을 아이를, 그 자리를 이미 차지하려 하고 있던 사람이 주었다고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이어지는 구절들이 바로 적고 있습니다.
앞서의 두 자료들은 모두 앞의 내용에 이어, 부루의 상相인 아란불에게 천-제가 이곳 - 부여의 도읍 - 에 천-제의 아들과 손자가 국을 세울 것이라고 하니 아란불이 그런 일을 부루에게 말하고 동쪽 바다 물가의 가섭-원이라는 땅이 5가지 곡물들에 맞기에 - 곡물들을 키울 수 있으니 - 왕이 도읍할 수 있다고 하고서 권하였다[A-2-(1):①-㉑ = 2장 4편 #17 X-1:①-⑲]고 적었습니다. 이어 그리하여 왕이 옮겨가서 가섭-원에 도읍하고서 국의 호를 동-부여라고 하였다[A-2-(1):㉒-㉔ = 2장 4편 #17 X-1:⑳-㉒]고 적었습니다.
A-2-(1)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① 뒤에 ② 그(= 부여-)상相 아란불阿蘭弗이 ● 말하기를 "③ 어느 날[日者] ④ 천天이(= 천-제가) ⑤ 나에게 내려와 ● 말하기를 '(내가) ⑥ 장차 ⑦ 나의 아들, 손자에게 시키면 ● (나의 아들, 손자가) ⑧ 국國을 이곳[此]에 세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⑨ 너[汝]는(= 왕은) ⑩ 마땅히[其] ⑪ 이곳[之]을 떠나야 한다. ⑫ 동쪽 바다의 물가에 ⑬ 땅이 있고 ⑭ (땅의) 호를 ● 말하기를 ⑮ 가섭-원[迦葉-原]이라고 하는데, ⑯ (가섭-원의) 흙은 ⑰ 기름지고[膏腴] ⑱ 5(가지) 곡물들[穀]에 마땅하니 ● (가섭-원에) ⑲ 도읍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⑳ 아란불이 ● 이윽고 ㉑ 왕에게 권하니 ● (왕이) ㉒ 옮겨 여기[彼]에(= 가섭-원에) 도읍하고 ㉓ 국國의 호를 ● (말하기를) ㉔ 동-부여라고 하였다. ㉕ 그(= 부여-왕의) 옛 도읍[都]에 ㉖ 사람이 있었는데 ● (그 사람은) ㉗ 온 곳[所從來]을 알리지 않고 ㉘ 스스로 ㉙ 일컬어[稱] ● (말하기를) ㉚ 천-제[天-帝]의 아들[子] 해모수解慕漱라고 하였다. ①後②其相阿蘭弗●曰③日者④天⑤降我●曰⑥將⑦使吾子孫●⑧立國於此⑨汝⑩其⑪避之⑫東海之濱⑬有地⑭號●曰⑮迦葉原⑯土壤⑰膏腴⑱宜五穀●⑲可都也⑳阿蘭弗●遂㉑勸王●㉒移都於彼㉓國號●㉔東扶餘㉕其舊都㉖有人●㉗不知所從來㉘自㉙稱●㉚天帝子解慕漱
2장 4편 #17 X-1 동명왕편 주석 인용 본기: <① 그[其](= 부여-)상相 아란불阿蘭弗이 ● 말하기를 "② 어느 날[日者] ③ 천天이(= 천-제가) ④ 나에게 내려와 ● 말하기를 '(내가) ⑤ 장차 ⑥ 나의 아들, 손자에게 시키면 ● (나의 아들, 손자가) ⑦ 국國을 이곳[此]에 세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⑧ 너[汝]는(= 왕은) ⑨ 마땅히[其] ⑩ 이곳[之]을 떠나야 한다. ⑪ 동쪽 바다의 물가에 ⑫ 땅이 있고 ⑬ (땅의) 호를 ● (말하기를) ⑭ 가섭-원[迦葉-原]이라고 하는데, ⑮ (가섭-원의) 흙은 ⑯ 5(가지) 곡물들에 마땅하니 ● (가섭-원에) ⑰ 도읍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⑱ 아란불이 ⑲ 왕에게 권하니 ● (왕이) ⑳ 옮겨 (가섭원에) 도읍하고 ㉑ 호를 ● (말하기를) ㉒ 동-부여라고 하였다. ㉓ 옛 도읍에는 ㉔ 해모수가 ㉕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고 ㉖ 와서 도읍하였다. <本紀云①其相阿蘭弗●曰②日者③天④降我●曰⑤將⑥使吾子孫●⑦立國於此⑧汝⑨其⑩避之⑪東海之濱⑫有地⑬號●⑭迦葉原⑮土⑯宜五穀●⑰可都也⑱阿蘭弗⑲勸王⑳移都㉑號●㉒東夫余㉓於舊都㉔解慕漱㉕爲天帝子㉖來都>
곧 부루가 뒤에 동쪽으로 옮겨가서는 그리 옮겨온 것이 천-제가 아란불을 통해 이야기한 말을 따른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갑자기 천-제가 한 말을 따른 이유가 적혀있지 않습니다만, 도읍을 옮기는 큰 일은 아무 이유를 말하지 않고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부루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말해주어야 했고, 그리하여 앞서 자리이을 아이 금와를 천-제가 주었다고 하고 때문에 그의 말을 따른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부루는 천-제에게 지금의 도읍을 넘겨주고 동쪽 바다로 떠나야 하는 이유를 부여 사람들에게 알렸고 - 아마도 동의를 얻어 - 그리로 옮겨 새로 도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가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보다 앞서 진-번-군을 없애며 그 땅을 아우르도록 하였던 현토-군, 그 뒤에 다시 그 땅으로 옮겨왔던 현토-군이 한漢의 범명우가 요동-군에 있던 오환을 패배시키고 그 땅에 세웠던 성으로 이 즈음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곧 현토-군이 처음 두어진 땅 - 한漢을 따른 북쪽 예 사람들이 있었던 땅을, 보다 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예 사람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이 동쪽 변방 사람들[夷]이라고 적은 사람들 - 과 맥貊 사람들이 침범하여 현토-군은 흘승-골-성 가까이 옮겨와 있었습니다. 그리하였던 현토-군이 마침내 우두머리가 나누어져 불안정해진 부여를 통해 이득을 얻어내는 대신 요동-군 가까이 있던 오환의 땅에 세운 성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흘승-골-성을 통하는 길을 통해 더는 예의 물건들을 오고가게 하며 이로움을 얻을 수 없게 된 부여는, 한漢이 옛 낙랑-군과 임둔-군의 동쪽 땅에 도위를 두고 그곳을 통해 예 사람들과 오고가려 하는 시기 즈음, 예 사람들의 땅에 옮겨가 자리잡으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옮겨갈 적절한 이유를 사람들에게 댈 수 없던 차에 마침 얻은 아이를 통해 떠올린 명분, 천-제가 아이를 주었기에 흘승-골-성을 넘긴다는 명분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여 옮겨간 것입니다.
그렇게 흘승-골-성의 사람들이 옮겨간 뒤에 천-제 곧 환-나[桓-那]에서 다스리던 우두머리는 바라던 대로 흘승-골-성을 얻었지만, 실제 이로움은 거의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로움도 거의 없어진 길을 지키며 줄어든 힘을 되돌려야 했고, 그 일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앞서 부루에게 이야기하였던 대로 아들 해모수를 흘승-골-성으로 보냈습니다. 그 시기는 같은 세대에 해당하는 해모수와 금와의 주활동시기가 시작되던 MC-58 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흘승-골-성에 가게 된 해모수가 해야 하는 일은 그 동남쪽, 부여가 맡아 다스리는 예 - 뒤의 옥저 - 에 이르는 길, 현토-군이 옮겨가며 버려진 길을 다시 열어, 부여가 얻어내던 한과 예 사이의 이로움을 그들 또한 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부여가 차지한 길, 땅을 통하는 뭍길[陸路] 대신 물줄기[河]를 통하는 물길[水路]을 열 수 있기를 바랐고 때문에 물줄기와 물가를 다스리는 우두머리 하-백[河-伯]을 만나기를 바랬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