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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4편 부여夫餘 (2) #3

해모수와 하-백[河-伯] (2/4)

by 잡동산이 Feb 26. 2025

그렇게 하-백과의 만남을 바라던 해모수가 그러기 위해 한 일은 먼저 흘승-골-성에 가서 사람들이 그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앞서 살핀 이야기에 바로 이어지, 앞서 살핀 이야기를 적은 두 자료들 가운데 동명왕편 주석 적 반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적 있지 않 이야기입니다. 것을 이어 살펴보지요.




동명왕편 주석은 신작 03년 - MC-58 - 천-제가 보낸 태자가 부여-왕의 옛 도읍 - 흘승-골-성 - 에서 노닐었다[2장 4편 #8 R-2:-④]고 적었습니다. 이어 태자의 호가 해모수라고 하고는 천에서 - 천-제가 있는 곳에서 - 5마리 용 같은 말들이 이르는 수레를 탔으며 또한 그를 따르는 100명 남짓한 사람들은 하얀색 학 같은 것들을 탔다[2장 4편 #8 R-2:-⑫]고 적었습니다.


2장 4편 #8 R-2 동명왕편 주석: <① 한漢 신작 03년 임술-년[壬戌-歲] ② 천-제[天-帝]가 ③ 태자太子를 보내니 ● (태자가) ④ 내려가 부여-왕[扶余-王]의 옛[古] 도읍[都]에서 노닐었다. ● (태자는) ⑤ 호를 ● (말하기를) ⑥ 해모수解慕漱라고 하였는데 ⑦ 천天으로부터 내려오며 ⑧ 5(마리) 용 같은 말들[龍]이 끄는 수레[車]를 탔고 ● (해모수를) ⑨ 따르는 이들이 ⑩ 100명[人] 남짓이었는데 ⑪ 모두 ⑫ 하얀색[白]의 곡 같은 것[鵠](= 학 같은 것)을 탔다. ⑬ 색색의 구름[雲]이 ⑭ 위[上]에 떠오르고 ⑮ 소리가 ⑯ 구름[雲] 가운데에서 움직였다(= 흘러나왔다). ● (해모수가) ⑰ 웅심-산[熊心-山]에서 멈추어 ⑱ 10일 남짓을 지냈다. ⑲ 처음 ⑳ 내려와서는 ㉑ 머리에 ㉒ 까마귀 깃털[烏羽]로 만들어진 관冠을 쓰고 ㉓ 허리에 ㉔ 용 같은[龍] 빛[光]을 내는 검劍을 둘렀다. ㉕ 아침에 ● 곧 (해모수가)  ㉖ (그곳의) 일들을 들어주면 ㉗ 저녁에 ● 곧 (그 일들이) ㉘ 천天에 오르니, ㉙ 세상[世]에서 ㉚ 그[之](= 해모수를) 일러 ● (말하기를) ㉛ 천-왕[天-王-郞]이라고 하였다.> <①漢神雀三年壬戌歲②天帝③遣太子●④降遊扶余王古都⑤號●⑥解慕漱●⑦從天而下⑧乘五龍車●⑨從者⑩百餘人⑪皆⑫騎白鵠⑬彩雲⑭浮於上⑮音樂⑯動雲中⑰止熊心山⑱經十餘日⑲始⑳下㉑首㉒戴烏羽之冠㉓腰㉔帶龍光之劒㉕朝●則㉖聽事㉗暮●卽㉘升天㉙世㉚謂之●天王郞>


여러 색의 구름[雲]이 위에 떠오르고 그러한 구름들 가운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2장 4편 #8 R-2:-]고 적었습니다. 이 표현 묘한 데가 있니, 해모수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환桓에 머물러 천-제라는 호를 썼던 인因 아들 곧 해모수와 마찬가지로 천-왕이라는 호를 쓰던 웅雄이 거느리고 단[檀/壇]에 내려온 사람들을 이르던 표현에 구름[雲]을 포함하는 운-사[雲-師][1장 2편 #2 A-(2):⑦]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1장 2편 #2 A-(2) 삼국유사 기이편 인용 옛 기록: (단의 사람들이) ① 그것[之](=웅이 내려온 일)을 ● 일러 "② (나무 아래에) 신 같은 사람[神]이 ③ 머무른다[市(= 兮 + 止)]."라고 하였다. ④ 이 때[是] ● (사람들이) ⑤ (웅을) 일러 ⑥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하였다. ● (웅이) ⑦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將] ⑧ 곡물들[穀], 목숨들[命], 병드는 것[病], 형을 내리는 것[刑], 착한 일들[善], 좋은 일들[惡]에 우두머리 노릇하였다[主]. ● 무릇 ⑨ 사람들 사이[間]의 360(가지) 남짓 일들[事]에 우두머리 노릇하고, ⑩ 세상[世]에 있으면서 ⑪ (세상을) 다스려 바꾸었다. ⑫ 1(마리) 곰 같은 사람[熊], 1(마리) 범 같은 사람[虎]이 (바뀌는 세상에) 있었다. ● (곰 같은 사람, 범 같은 사람은) ⑬ 굴[穴]을 같이 하고[同] ⑭ 머물렀는데[居], ⑮ 언제나 ⑯ (단의 나무 아래의) 신 같은 사람[神] 웅雄에게 빌어[祈] ● 바라기를[願], ⑰ (웅이) (자신들을) 바꾸어 사람 같이(=사람 같은 생김새로) 만들었으면, 하였다. ⑱ (이) 때 ⑲ (단의 나무 아래의) 신 같은 사람이(=웅이) ⑳ 신령스러운[靈] 쑥들[艾] 1심지[炷], 마늘들[蒜] 20개[枚]를 (곰 같은 사람, 범 같은 사람에게) 남겼으며 ● 말하기를 "㉑ 너희 무리[爾軰]가(=곰 같은 사람, 범 같은 사람이) ㉒ 그것[之](=쑥들, 마늘들)을 먹고 ㉓ 해[日]의 빛[光]을 보지 않으며 ㉔ 100날[百日]을 지내면 ㉕ 곧 사람 같은 생김새[形]를 얻으리라."라고 하였다. ㉖ 곰 같은 사람, 범 같은 사람이 ㉗ 얻어 그것(=쑥들, 마늘들)을 먹고 ㉘ 삼가며[忌](=해의 빛을 보지 않으며) ㉙ 3(번) 7날[七日]을 지냈다. ㉚ 곰 같은 사람은 (삼갈 수 있어) (사람) 여자 같은[女] 몸[身]을(=생김새를) 얻었다. ㉛ 범 같은 사람은 삼갈 수 없어 ㉜ 사람 같은 몸을 얻을 수 없었다. (古記云)●謂①之②神③市④是●⑤謂⑥桓雄天王也●⑦將風伯雨師雲師⑧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⑨主人間三百六十餘事⑩在世⑪理化⑫有一熊一虎●⑬同穴⑭而居⑮常⑯祈于神雄●願⑰化爲人⑱時⑲神⑳遺靈艾一炷蒜二十枚●曰㉑爾軰㉒食之㉓不見日光㉔百日㉕便得人形㉖熊虎㉗得而食之㉘忌㉙三七日㉚熊得女身㉛虎不能忌㉜而不得人身


사기 오제본기 황제黃帝의 일들을 적고서, 이어 제나 있는 곳 없이 머무르는 곳에서 거느리던 군대의 군사들이 영의 위가 되도록 하고 그들의 벼슬[官] 이름을 구름의 이름들[命 = 名]을 가지고서 운-사라고 하였다[C:-㉒]고 적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보면 앞서의 구절들은, 이러한 군사들이 각각의 벼슬 이름인 구름 모양을 서로 다른 색으로 그린 깃발 위로 들어보이 소리내면서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C 사기 오제본기: (그가) ① 동쪽으로 가서 ② 바다[海]에 이르러 ③ 환-산[丸-山] 그리고 대-종[岱-宗]에 올랐으며, ④ 서쪽으로 가서 ⑤ 공동空桐에 이르러 ⑥ 계雞, 두頭에 올랐으며, ⑦ 남쪽으로 가서 ⑧ 강江에 이르러 웅熊, 상湘에 올랐으며, ⑩ 북쪽으로 가서 ⑪ 훈육葷粥을 쫓아 ⑫ 부-산[釜-山]에 믿을 물건[符]을 더하였다. ⑬ 탁록涿鹿의 언덕[阿]에 읍을 이루었지만[邑] ⑭ 옮겨 가고 옮겨 오며, ⑮ 언제나 있는 곳[常]이 없이 ⑯ 머무르는 곳[處]은 ⑰ 군대[師]의 군사들[兵]이(= 군사들을 가지고) ⑱ 영-위[營-衛]가 되도록(= 영-위라고 하도록) 하고, ⑲ (군사들의) 관官(= 벼슬) 이름[名]은 ⑳ 모두 ㉑ 구름[雲]의 명命(= 이름[名])이(= 이름을 가지고) ㉒ 운-사[雲-師]가 되도록(= 운-사라고 하도록) 하였다. ①東②至于海③登丸山及岱宗④西⑤至于空桐⑥登雞頭⑦南⑧至于江⑨登熊湘⑩北⑪逐葷粥⑫合符釜山⑬而邑于涿鹿之阿⑭遷徙往來⑮無常⑯處⑰以師兵⑱爲營衛⑲官名⑳皆㉑以雲命㉒爲雲師


이러한 움직임은 그 뒤로도 이어졌으며 웅雄이 군사들을 데리고 단에 내려와 그곳 사람들을 다스렸듯이, 동명왕편 주석은 해모수가 웅심-산에 이르러 10일 남짓을 머물러 그곳 사람들의 일을 듣고 천에 올렸다[2장 4편 #8 R-2:-] - 이루어주었다 - 고 적었습니다. 여기 보이는 산 이름 웅심-산에 단[檀/壇]에서 웅雄이 만났던 곰 같은 여자[熊女]라는 단어 가운데의 글자 웅熊이 보이는 바, 웅심-산은 태백-산 꼭대기 단의 가까이 그러나 보다 북쪽에 자리잡은 장소였습니다.


해모수는 이곳으로 와서 옛 천-왕인 웅의 일을 떠올리는 일들을 몸소 함으로써, 사람들의 머리에 자리잡고 있던 웅의 이야기자신의 이야기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흘승-골-성에 남겨진 해부루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가 대신하도록 하고, 리하여 흘승-골-성과 그 남쪽 사람들이 해부루 대신 자신을 따르도록 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서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사람들이 해모수를 일러 말하기를 천-왕에 어린 남자를 가까이 여겨 붙이는 글자 낭郎을 보태어서 천-왕-랑이라고 불렀다[2장 4편 #8 R-2:-]고 적었습니다. 해모수가 목적하였던 바, 사람들은 옛 웅雄의 호를 해모수에게 쓰게 되었으며, 또한 그 끝에 보탠 글자가 보여주듯 그를 가까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일을 삼국유사 기이편이 인용한 옛 기록은 거의 비슷하지만 , 신작 03년 04월 08일 천-제 흘승-골-성에 내려왔다[2장 4편 #8 Y-1:-④]고 적습니다. 동명왕편 주석과 달리 내려온 사람을 천-제의 태자가 아니라 천-제라고 적고 있는데, 보다 뒤에 람들이 그를  - 천-왕 - 이라고 하였다[2장 4편 #8 Y-1:-]고 적은 것을 보면 서 주어를 천-제라고 적은 구절들은 천-제의 아들[子], 마지막 아들이라는 마지막 글자를 빠트리고 천-제라고 잘못 적은 것입니다.


2장 4편 #8 Y-1 삼국유사 기이편 인용 옛 기록: ① 전한서前漢書의 선-제 신작 03년인 ② 임술(-년) 04월 08일 ③ 천-제[天-帝]가 ④ 흘승-골-성[訖升-骨-城]에 내려왔다. ⑤ 5(마리) 용 같은 말들[龍]이 끄는 수레[車]를 탔고, ⑥ 서서 ⑦ 도읍하니 ● (사람들이 그를) ⑧ 일컬어 ● (말하기를) ⑨ (천-)왕이라고 하였다. ⑩ 국의 호를 ● (말하기를) ⑪ 북-부여라고 하였으며 ⑫ 스스로 ⑬ 일컬어 ⑭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⑮ 해모수라고 하였다. (古記云)①前漢書宣帝神爵三年②壬戌四月八日③天帝④降于訖升骨城⑤乘五龍車⑥立⑦都⑧稱●⑨王⑩國號●⑪北扶餘⑫自⑬稱⑭名●⑮解慕漱


그리고서 이어 옛 기록은 - 보다 앞에 적고 있는 일 곧 그가 흘승-골-성에 도읍한 일[2장 4편 #8 Y-1:-⑦]에 이어지는 - 국의 호를 말하기를 북-부여[北-扶餘]라고 하였다[2장 4편 #8 Y-1:-]고 적었습니다. 런데, -부여라는  호는, 시기에 따라 그리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에 따라 2가지 대상들 가운데 하나를 가리킵니다.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이 기회에 정리두고서 다시 해모수의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지요.


해모수읍한 흘승-골-성 북-부여라고 한 것은, 이 때 그가 거느린 사람들이 해부루 대신 새로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그의 아버지를 따른 부여 사람들이었, 그가 머물던 흘승-골-성이 당시 이미 스스로를 달리 동-부여라고 이른 바 있는 부여 서북쪽에 있 곳이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광개토-왕 훈적- 추모-왕(= 동명) 북-부여(= 북-부여에 도읍하였던) 천-제 아들에게서 나왔다[D-1:①] 것니다.


D-1 광개토-왕 훈적-비: (추모-왕은) ① 북-부여[北-夫餘]의(= 북-부여에 도읍하였던) 천-제[天-帝]의 아들[子]에게서 나왔다. ①出自北夫餘天帝之子


그런데 홀승-골-성과 관련된 북-부여라는 호의 사용은 반대로 영향을 주어, 흘승-골-성에 먼저 도읍하였던 해부루 또한 북-부여-왕이라고 적 기록들이 또한 나타나게 되습니다. 삼국유사 기이편이 인용한 국사 고려본기가 해부루의 호로 적은 북-부여-왕[E-1:②] 입니다.


E-1 삼국유사 기이편 인용 국사 고려본기: ① 이 일에 앞서 ② 북-부여-왕[北-扶餘-王] 해부루解夫婁가 ● 마침내 ③ (옛) 땅[地]을 벗어났다. ①先是②北扶餘王解夫婁●旣③避地


그런데, 보다 부여가 다시 북쪽으로 옮겨고 그에서 나온 동명이 남쪽으로 달아나서는 다시 흘승-골-성에 도읍 때 가까이  졸본서는, 흘승-골-성이 아니라 들보다 북쪽에 자리하 부여를 북-부여라고 였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뒤에 세운 백제에  일들을 적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몽(= 동명)이 북-부여로부터 달아났다[F-1-(1):①-]고 적 또한 그 아들 유리에 대해, 주몽(=동명)이 북-부여에 있으 낳았던 아들[F-2:①-③]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F-1-(1) 삼국사기 백제본기: (주몽이) ① 북-부여[北-扶餘]로부터 ② 달아났다. ①自北扶餘②逃
F-2 삼국사기 백제본기: 이윽고 ① 주몽이 ● (앞서) ② 북-부여[北-扶餘]에 있으며 ③ 아들을 낳았던 바 ● (그 아들이) ④ 왔다. 及①朱蒙●②在北扶餘③所生子●④來


다만, 삼국사기 백제본기 주석이 인용한 어떤 기록이 동명보다 앞서 소서노와 혼인하였던 우태를  해부루의 남다를 것 없는 손자라고 하며, 해부루의 호를 북-부여-왕[G-1:①]이라고 적은 것은 당시 북-부여-왕이라고 졸본이 이르던 금와의 호를 또한 그 아버지인 해부루의 호로 여  적은 것입니다. 해부루가 흘승-골-성에 도읍하였던 일로 고구려가 적은 해부루의 호, 북-부여-왕과 결과 같지만 다른 이유로 적힌 것입니다.


G-1 삼국사기 백제본기 주석 인용 어떤 기록: <● (우태優台는) ① 북-부여-왕[北-夫餘-王] 해부루解扶婁의 남다를 것 없는[庶] 손자[孫]였다.> <(一云)●①北扶餘王解扶婁庶孫>




돌아가서, 해모수는  일을 따라 승-골-성의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하였일이 끝난 뒤에 하-백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그 일은 그가 만난 어 사람을 통해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빠르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백의 딸 유화柳花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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