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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4편 부여夫餘 (2) #4

해모수와 하-백[河-伯] (3/4)

by 잡동산이 Feb 27. 2025

하-백을 만나고자 하는 해모수의 이야기는 다시 웅심-산에서 시작됩니다.  이야기는 해모수가 하-백을 만나는 상황이 이루어지기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




해모수가 웅심-산에 이르던 일들을 적은 동명왕편 주석 다음,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청-하[靑-河]를 지금의 압록-강[鴨綠-江]이다[B-2:-]라고 적, 또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의 딸들을 유화, 훤화, 위화라고 한다[B-3:①-]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의 딸들이 하-백의 딸들 곧 유화, 훤화, 위화가 청-하로부나와 웅심-연 곧 웅심-산에 있던 못[澤] 위에서 노닐었다[B-4:①-②]고 적었습니다.


B-2 동명왕편 주석: <① 청-하[靑-河]는 ② 지금의 압록-강[鴨綠-江]이다.> (城北有靑河)<①靑河②今鴨綠江也>
B-3 동명왕편 주석: <(하-백[河-伯]의 3명 딸들 가운데) ① 맏이[長]를(= 맏딸을) ● 말하기를 ② 유화柳花라고 하였으며 ③ 다음(= 다음 딸)을 ● 말하기를 ④ 훤화萱花라고 하였으며 ⑤ 막내(= 막내 딸)을 ● 말하기를 ⑥ 위화葦花라고 하였다.> (河伯三女美)<①長●曰②柳花③次●曰④萱花⑤季●曰⑥葦花>
B-4 동명왕편 주석: <● (유화, 훤화, 위화가) ① 청-하로부터 ② 나와[出] 웅심-연[熊心-淵](= 웅심-산의 못) 위[上]에서 노닐었다[遊]> (往遊熊心涘)<●①自靑河②出遊熊心淵上>


앞서 구절들 가운데 처음, 압록-강을 이르는 다른 이름, 앞서 이야기한 마자-수와는 또다른 이름인 청-하에 대해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그 뒤에 이어 하지요.




고구려 시기 압록-강은 앞서 고구려가 일어날 즈음까지의 일들을 적은 한서 지리지에서 그리고 고구려가 없어질 즈음까지의 일들을 적은 당의 통전을 통해 살핀 바와 같이 현재의 장자-강에 해당합니다. 그 물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르게 되는 곳이 현재의 웅어수-산 기슭인데, 이 산이 앞서 그 꼭대기 단[檀/壇]이라는 땅에 웅雄이 이르렀던 태백-산입니다.


그런데, 청-하라고 적은 물줄기 이름청靑 또한 고구려가 일어날 즈음까지 패-수라고 하던 현재의 청-천-강[淸-川-江] 곧 살-수[薩-水]의 이름 살薩에 해당하는 청淸으로 달리 적니다. 기서 이 청에 해당다는 점은,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 청-천-현[淸-川-縣]이 본래 살-매-현[薩-買-縣]이었다[H-1:-②]고 적은 것에서 알 수 있으니,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편 주석이 인용한 어떤 기록이 매-홀[買-忽]을 수-성[水-城]이라고 하였다[I:①]라고 적었기에, 살-매 가운데 수水에 해당하는 매買를 제외한 살 청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H-1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 (신라 상-주[尙-州] 삼년-군[三年-郡] 청-천-현[淸-川-縣]은) ① 본래 ② 살-매-현[薩-買-縣]이었다. ①本②薩買縣
I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편 주석 인용 어떤 기록: <① (매-홀-현[買-忽]을) 수-성(-현)[水-城]이라고 하였다.> (買忽)<一云①水城>


어째서 패-수라는 물줄기 이름이 청[靑/淸]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일까요? 현재의 청-천-강보다 남쪽 현재의 대동-강이 본래 열-수[列-水]지만,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뒤에 온조와 비류가 고구려 떠나 남쪽으로 가는 길에서 - 패-수와 열-수가 아니라 - 패-수와 대-수를 건넜다[G-2:①]고 적니다. 곧 -수를 건넌 뒤에 대-수에 앞서 건너야 했던 대-수 북쪽의 -수  일이 일어난 MC-18보다 앞선 어느 시기 -수로 이르게 되었, 대신 패-수를 청[靑/淸]이라는 이름의 물줄기로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G-2 삼국사기 백제본기 주석 인용 어떤 기록: <● (비류, 온조가) ① 패(-수)[浿], 대(-수)[帶] 2(개) 물줄기들[水]을 건넜다.> <(一云)●①渡浿帶二水>


되었던 과정과 시기는 한서 지리지가 적은 낙랑-군 패-수라는 현 이름[2장 4편 #23:⑧]후한서 지리지가 적은 낙랑-군의 현들 이름[2장 4편 #26 AT:-] 가운데  을 통해  수 있지만, 것들은 고구려 초기의 일들을 살피며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다만, 이 때 낙랑-군이 잠시 북쪽 땅을 다스리지 못하여 패-수의 이름 남쪽으로 옮 뒤, 요동-군이 다시 그 땅을 다스리기에 앞서 옛 패-수 북쪽에 자리하였던 압록-강의 다른 이름, 파란 물색을 이르는 청[靑/淸]이 새로 패-수 북쪽 물줄기의 이름이 되었다는 점만 알면 충분합니다.


2장 4편 #23 AP 한서 지리지:  ① 낙랑-군[樂浪-郡]은 ... ② 호戶는 62,812이고 ③ 구口는 46,748이고, ④ 운-장[雲-鄣]이 있고 ⑤ 현縣은 25다: ⑥ 조선(-현)[朝鮮], ⑦ 염감(-현)[䛁邯], ⑧ 패-수(-현)[浿-水], - ⑨ (패-)수水가 ⑩ 서쪽으로 가서 증지(-현)[增地]에 이르러 ⑪ 바다로 들어간다. - ... ⑫ 함자(-현)[含資], - ⑬ 대-수[帶-水]가 ⑭ 서쪽으로 가서 대방(-현)[帶方]에 이르러 ⑮ 바다로 들어간다. - ⑯ 점제(-현)[黏蟬], ⑰ 수성(-현)[遂成], ⑱ 증지(-현)[增地], ... ⑲ 대방(-현)[帶方], ⑳ 사망(-현)[駟望], ㉑ 해명(-현)[海冥], ... ㉒ 열구(-현)[列口], ㉓ 장잠(-현)[長岑], ㉔ 둔유(-현)[屯有], ㉕ 소명(-현)[昭明], - ㉖ 남-부-도위[南-部-都尉]의 치治가 있다. - ㉗ 누방(-현)[鏤方], ㉘ 제해(-현)[提奚], ㉙ 혼미(-현)[渾彌], ㉚ 탄열(-현)[呑列], - ㉛ 분려-산[分黎-山]이 있다. ● (분려-산은) ㉜ 열-수[列-水]가 나는 곳[所]이다. ● (열-수가) ㉝ 서쪽으로 가서 점제(-현)[黏蟬]에 이르러 ㉞ 바다로 들어간다. ㉟ 움직여 820리를 간다. - ㊱ 동이(-현)[東暆], ㊲ 불이(-현)[不而], - ㊳ 동-부-도위[東-部-都尉]의 치治가 있다. - ㊴ 잠태(-현)[蠶台], ㊵ 화려(-현)[華麗], ㊶ 사두매(-현)[邪頭昧], ㊷ 전막(-현)[前莫], ㊸ 부조(-현)[夫租] ①樂浪郡...②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③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④有雲鄣⑤縣二十五⑥朝鮮⑦䛁邯⑧浿水⑨水⑩西至增地⑪入海...⑫含資⑬帶水⑭西至帶方⑮入海⑯黏蟬⑰遂成⑱增地...⑲帶方⑳駟望㉑海冥...㉒列口㉓長岑㉔屯有㉕昭明㉖南部都尉治㉗鏤方㉘提奚㉙渾彌㉚呑列㉛分黎山●㉜列水所出●㉝西至黏蟬㉞入海㉟行八百二十里㊱東暆㊲不而㊳東部都尉治㊴蠶台㊵華麗㊶邪頭昧㊷前莫㊸夫租
2장 4편 #26 AT 후한서 군국지: ① 낙랑-군[樂浪-郡]은 ... ② 18(개) 성들[城]이고(= 성들을 거느렸고) ③ 호戶가 61,492이고, ④ 구口는 257,050이다: ⑤ 조선(-성)[朝鮮], ⑥ 염감(-성)[䛁邯], ⑦ 패-수(-성)[浿-水], ⑧ 함자(-성)[含資), ⑨ 점제(-성)[占蟬], ⑩ 수성(-성)[遂城], ⑪ 증지(-성)[增地], ⑫ 대방(-성)[帶方], ⑬ 사망(-성)[駟望], ⑭ 해명(-성)[海冥], ⑮ 열구(-성)[列口], ⑯ 장잠(-성)[長岑], ⑰ 둔유(-성)[屯有], ⑱ 소명(-성)[昭明], ⑲ 누방(-성)[鏤方], ⑳ 제해(-성)[提奚], ㉑ 혼미(-성)[渾彌], ㉒ 낙도(-성)[樂都]이었다. ①樂浪郡...②十八城③戶六萬一千四百九十二④口二十五萬七千五十⑤朝鮮⑥䛁邯⑦浿水⑧含資⑨占蟬⑩遂城⑪增地⑫帶方⑬駟望⑭海冥⑮列口⑯長岑⑰屯有⑱昭明⑲鏤方⑳提奚㉑渾彌㉒樂都


이러한 청-하 곧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보다 남쪽에 자리한 태백-산에 이르기에 앞서 이르게 되는 태백-산 조금 북쪽에 웅심-산이 있으니, 때문에 동명왕편 주석이 하-백이 해모수의 일로 유화가 해모수를 멀리하도록 두었던 우발-수태백-산의 남쪽에 있다[B-13-(2):-④]고 적었니다. 이 구절들은 잘 기억하여 뒤에 다시 살피기로 하고, 하-백의 맏딸 유화가 노닐던 웅심-산의 못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지요.


B-13-(2) 동명왕편 주석: <① 우발優渤은 ② 못[澤]의 이름이고 ③ 지금 ④ 태백-산[太伯-山]의 남쪽에 있다.> <①優渤②澤名③今④在太伯山南>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웅심-연에서 노닐던 유화와 다른 자매들의 모습[B-5:-⑥]을 적, 이어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천-왕 곧 해모수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들을 왕비로 삼으면 그들이 자리이을 아이를 가질 수 있다, 고 말하였다[B-6:①-]고 적었습니다. 곧 해모수는 이 때까지 이 여자들이 하-백의 딸임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아름다움을 보고 왕비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B-5 동명왕편 주석: <① (여자들의) 신 같은[神] 몸가짐[姿]이 ② 탐스럽고[艶] 아름다웠고 ③ 뒤섞어 지닌 것들[佩]이 ④ 흔들리면서[鏘] 소리냄에 ⑤ 한고(-대)[漢皐]와(= 한고-대의 여자들, 구슬들과) 더불어 ⑥ 다른 것이 없었다.> <①神姿②艶麗③雜佩④鏘洋⑤與漢皐⑥無異>
B-6 동명왕편 주석: <① (천-)왕이 ② 가까운 사람들에게 일러 ● 말하기를 "(내가) ③ (하-백의 딸들을) 얻어 (왕)비들[妃]로 삼으면 ● (왕비들이) ④ 뒤에 자리이을 아이[後胤]를 가질 수 있겠다."라고 하였다.> <①王②謂左右●曰③得而爲妃●④可有後胤>


이어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그 여자들이 해모수를 보고 물줄기로 들어갔다[B-7:①-]고 적었으니, 물줄기를 믿는 곳으로 여겨 몸을 피하것을 통해 해모수는 그들이 하-백의 딸임을 알았습니다. 이어 가까운 사람들이 해모수에게 궁, 전을 짓고서는 그 집에 들어가기를 기다려 문을 닫아 그들을 막도록 하자, 고 하였다[B-7:-]고 적었는데, 그들을 막는 것이 그저 해모수의 바램이 아니라 하-백을 만나기 위한 일임을 알고 해모수를 따라온 100명 남짓한 사람들의 힘을 도록 한 것입니다.


B-7 동명왕편 주석: <① 그(= 3명) 여자들이 ② (천-)왕을 보았고 ● 곧 ③ 물줄기[水]로 들어갔다. ④ 가까운 사람들이 ● 말하기를 "⑤ 너[大王]는 ⑥ 어째서 ⑦ 궁宮, 전殿을 짓지 않는가? ⑧ 여자들이 집[室]에 들어가기를 기다려 ● 마땅히 ⑨ 문[戶]이(= 문으로) ⑩ 그들을 가로막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⑪ (천-)왕이 ⑫ 그러하다고 여기고 ⑬ 말채찍이 ⑭ 땅에 (궁, 전을) 그려내도록[畫] 하니 ⑮ 구리 같은[銅](= 튼튼한) 집이 ⑯ 조금 뒤에[俄] ⑰ 크고[壯] 아름다움[麗](= 크고 아름다운 궁, 전)을 이루어졌다. ⑱ 집 가운데에 ⑲ 3(개) 자리들[席]을 만들고 ⑳ 술[樽酒]을 두었다. ㉑ 그 여자들이 ● 각각 ㉒ 그(= 3개) 자리들에 앉아 ㉓ 서로 ㉔ 술마시기를 권하여 ● 크게 ㉕ 취하였다. ㉖ 운운云云.> <①其女②見王●卽③入水④左右●曰⑤大王⑥何⑦不作宮殿⑧俟女入室●當⑨戶⑩遮之⑪王⑫以爲然⑬以馬鞭⑭畫地⑮銅室⑯俄⑰成壯麗⑱於室中⑲設三席⑳置樽酒㉑其女●各㉒坐其席㉓相㉔勸飮酒●大㉕醉㉖云云>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해모수가 말채찍으로 땅에 궁, 전을 그렸고 얼마 뒤에 구리 같은 집이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다[B-7:-]고 적었습니다. 해모수를 따라 내려온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가진 것들과 힘을 모아 튼튼해 보이는 을 임시로 만들어냈는데, 앞서 살핀 동명왕편 주석이 적었던 바 해모수가 웅심-산에 이르러 보낸 10일 남짓한 시간 가운데 며칠여기에 쓰였습니다.


그리고서 동명왕편 주석은  가운데 3개 자리를 만들고 술들을 갖추어두니 여자들이 와서 서로 술마시기를 권하였고 그리하여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다[B-7:-]고 적었습니다. 그 뒤, 운운云云[B-7:]이라고 줄여 적은 끝 부분은, 본래 다른 이야기가 있었지만 주석에 옮긴 사람이 생략하고 적지 않은 부분입니다.


이어 다른 동명왕편 주석은 해모수가 여자들이 취하기를 기다 빠르게 나갔고 그렇게 가로막 유화를 멈춰세웠[B-8:-⑤]고 적었습니다.  일들 유화가 바라보던 바에 따라 적은 자료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보다 뒤에 금와를 만난 어떤 여자가 하던 말을 인용하여 간단히, 달리 은 아래 구절들[A-3-(1)]니다.


B-8 동명왕편 주석: <① (천-)왕은 ② 3(명) 여자들이 크게 취하기를 기다려 ● 빠르게 ③ 나가 여자들을 가로막았고 ④ (하-백의) 맏이(= 맏딸) 유화는 ⑤ (천-)왕이 멈추는 바가 되었다.> <①王②俟三女大醉●急③出遮女等④長女柳花⑤爲王所止>
A-3-(1)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여자가) ● 말하기를 "① 나는 ② 하-백[河-伯]의 딸이며 ● (나를) ③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④ 유화柳花라고 한다. ● (내가) ⑤ 여러 아우들과 더불어 ⑥ (청-하를) 나와 노닐었다. ⑦ (이) 때 ⑧ 1(명) 남자가 있어 ● (남자가) 스스로 ⑨ 이야기하여 ● (말하기를) '(나는) ⑩ 천-제의 아들 해모수다.'라고 하고는 ⑪ 웅심-산[熊心-山] 아래에서 나를 꾀니 ● (내가) ⑫ 압록(-강)[鴨淥] 변방[邊]의 집[室] 가운데(에서) ⑬ 그[之]와 통하였다[私].("라고 하였다.) ●曰①我②是河伯之女●③名●④柳花●⑤與諸弟⑥出遊⑦時⑧有一男子●自⑨言●⑩天帝子解慕漱⑪誘我於熊心山下●⑫鴨淥邊室中⑬私之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여자가 스스로를 하-백의 딸 유화라고 하였다[A-3-(1):-④ = B-3:]고 적었습니다. 이어 그녀가 아우들과 함께 나와서 노닐었는데[A-3-(1):⑥ = B-4:②] 해모수가 그들을 만났다[A-3-(1):- = B-6:-]고 적었습니다. 이어 해모수가 그들을 웅심-산 아래에서 꾀었다[A-3-(1):⑪]고 적었으니 곧 웅신-산 아래가 곧 앞서 해모수가 튼튼한 집을 짓고 술을 두었던 곳[B-7:⑪-]입니다.


그리고 이어 유화가 결국 압록-강 물가의 집에서 해모수와 통하였다[A-3-(1):-]고 적었으니, 이 집이 바로 앞서의 해모수가 웅심-산 아래에 지었던 집입니다. 다시 말해, 웅심-산은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압록-강 곁에 있습니다.


이 즈음, 보다 앞서 유화를 두고 달아난 나머지 두 여자들, 하-백의 딸들인 훤화와 위화는 그 아버지 하-백에게 이르렀고 그리하여 유화가 해모수라는 남자와 함께 남겨졌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상황을 알게 된 하-백이 뒤이어 한 일들은 또다른 동명왕편 주석이 적었습니다.




이제 다시 -백이 해모수에게 한 일들을 살피기에 앞서, 하-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하-백이라는 말은 물줄기의 우두머리를 뜻합니다만, 물줄기 자체에는 사람이 살 수 없 따라서 우두머리 노릇을 할 상대있을 수 습니다. 그렇기에 보다 적절히 말하다면, 하-백은 물줄기 맡아 그 곁에 자리잡은 사람들을 다스리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사람이라고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물줄기를 맡아 그 곁에 자리잡은 사람들을 다스리던 이러한 우두머리에 대하여 적은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은 예 사람들이 산들, 물줄기들을 무겁게 여겨 각각에 부들[部](= 맡은 무리들)이 있었[J-1:-④]고 적습니다. 이어  산들, 물줄기들을 나누 - 나누어 맡아 - 헛되이 - 별다른 일 없이 - 다른 사람들이 맡은 물줄기들 건너 다람들이 맡은 산들로 들어갈 수 없[J-1:-⑥]고 적었습니다.


J-1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 ① 그(= 예의) 풍속[俗]은 ② 산들[山], 물줄기들[川]을 무겁게 여기니 ③ 산들, 물줄기들에 ● 각각 ④ 부들[部]이 있어 ● (부들이) ⑤ (산들, 물줄기들을) 나누고 ⑥ 헛되이 서로 건너들어갈 수 없었다. ①其俗②重山川③山川●各④有部●⑤分⑥不得妄相涉入


백-산을 중심으로 하여 그 북쪽의 물줄기인 청-하와 못인 웅심-연, 그리고 그 남쪽의 물줄기인 우발-수의 우두머리였던 하-백은 그곳을 나누어 맡 예부들 사람들에게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부여가 또한 예 사람들에게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런 예 사람들과는 어떤 사이였을까요?


앞서 살핀 바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이 인용한 어떤 기록은 어느 시기에 평양-성이 맥-국 곧 맥의 국이 되었다[2장 4편 AM:-③]고 적었습니다. 이 평양-성은 앞서 왕검이 처음 도읍하였던 곳으로 태백-산의 남쪽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보다 남쪽의 조선-현을 뒤에 바꾸어 이르던 평양-성과는 다른 곳으로, 하-백이 맡아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예 사람들과 아주 가까이 있던 곳입니다.


2장 4편 AM 삼국유사 기이편 인용 어떤 기록: ① 어떤 때[或]에 ② 평양-성[平壤-城]이 ③ 맥-국[貊-國]이 되었다. (或云)①或②平壤城③爲貊國


양 그리고 맥과 가까이 이어지는 예에 대해서는 부여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곳, 북쪽의 예가 있던 곳에 본래 있던 현토-군 살피면서 이미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은 현토-군이 동쪽 변방 사람과 맥이 침범하는 바 되[2장 4편 #19 G-2:⑦-⑧]고 적었고 후한서 동이열전 예편은 그리하여 현토-군이 구려로 옮겨갔다[2장 4편 #19 G-2:-]고 적었는데, 이 때 현토-군을 맥과 함께 침범한 동쪽 변방 사람들 -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던 남쪽의 예 - 가운데 일부가 바로 하-백의 무리였습니다.


2장 4편 #19 G-2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한漢 무-제[武-帝]의 원봉 02년 ① 조선朝鮮을 쳤다. ② (위)만滿의 손자 우거右渠를 죽이고 ③ 그(= 우거가 다스리던) 땅을 나누어 ④ 4(개) 군들[郡]로 하였는데 ⑤ (지금의) 옥저沃沮의(= 옥저에 있던) 성城을 현토-군[玄菟-郡]으로 삼도록 하였다. ⑦ 뒤에 ● (현토-군은) ⑧ (맥貊 아닌) 동쪽 변방 사람들[夷]과 맥貊이 침범하는 바 되었다. 漢武帝元封二年①伐朝鮮②殺滿孫右渠③分其地④爲四郡⑤以沃沮城⑥爲玄菟郡⑦後●⑧爲夷貊所侵
2장 4편 #19 H-1 후한서 동이열전 예편: ① 현토(-군)[玄菟]은 ● 다시 ② 옮겨 구려句驪에 머물렀다. ①玄菟●復②徙居句驪


 때 남쪽의 예는 과 더불어 당시 북쪽의 예 사람들이 따르던 현토-군의 뿐만 아니라, 앞서 삼국유사 기이편이 전한서를 인용하여 적은 곳 , 다시 말해 평-주-도독-부가 있던 평나[2장 4편 #15 AE:-③] 현토-군에서부터 진-번-군에 이르는 길에 있던 평양-성까지의 땅을 차지하였고, 그 뒤 부여가 그들이 앞서 침범하였던 현토-군의 땅 곧 북쪽의 예가 있던 곳을 다스려도 떠나 남쪽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평양-성을 비롯한 태백-산 남쪽 땅과 북쪽 땅에 머무르니, 이곳이 맥-국 그리고 하-백이 다스리던 곳입니다.


2장 4편 #15 AE 삼국유사 기이편 인용 전한서: 소-제[昭-帝]의 시원 05년 기해(-년)[己亥] ① 2(개) (군들) 바깥[外]의 부들[府]을 두었다. ● 이르기를 ② 조선朝鮮의 옛 땅이었던 평나平那 그리고 현토-군[玄菟-郡] 등을(= 등에 대해 두었던 부를) ③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라고 하였으며, ④ 임둔(-군)[臨屯], 낙랑(-군)[樂浪] 등 2(개) 군들[郡]의 땅에는 ⑤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두었다.(前漢書)昭帝始元五年己亥①置二外府●謂朝鮮舊地平那及玄菟郡等③爲平州都督府④臨屯樂浪等兩郡之地⑤置東部都尉府




러한 일들이 있었기에, 해부루의 다음 세대 그리고 해모수의 아버지와 같은 세대였던 하-백은 그들이 앞서 침범하였던 북쪽 예의 땅 - 북명 또는 옥저라고 하던 곳, 뒤에 부조-현을 비롯한 현들이 두어 곳들 - 에 들어와 곳을 차지한 부여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백이 알고 있던 부여의 일들은, 해모수에게 하-백을 만날 상황을 만들어 주었지만 또한 좋게 끝날 수 있던 둘의 관계 틀어버린 상황 또한 만들습니다.


자, 런 결과를 만들어낸 부여의 일들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어지는 글에서 하-백과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또한 다른 자료들을 살펴 이야기하겠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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