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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4편 부여夫餘 (2) #8

유화柳花와 금와金蛙 (3/4)

by 잡동산이 Mar 05. 2025

이제 신작 04년 04월과 01월, 동명왕편 주석이 동명을 낳았다[生]고 적은 시기와 실제 동명이 태어난 시기가 다른 이유를 살피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지요. 일단, 동명이 금와의 손에서 살아남, 이어 동명이 아닌 다른 상대에게 금와의 손이 뻗어 나가던 까지 살펴보지요.




앞서 동명왕편 주석[B-15-(3)]신작 04년 04월에 유화가 주몽 - 동명 - 을 낳았다[生] 적은 뒤 울음소리도 크고 남르고 뛰어났다고 적서는 이어 처음[初][B-15-(4):①]이라는 글자를 먼 그 뒤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初라는 글자는, 어떤 일을 시작하였음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먼저 이야기한 뒤에 이어 그 일이 있기에 앞서 있었던 일들과 그 상황을 이야기할 때에도 자 쓰니다.


B-15-(4) 동명왕편 주석: <① 처음 ● (여자가) ② 가랑이[腋] 왼편에 (주몽을) 낳아서는 ③ 1(개) 알 같은 것[卵]을 낳았는데[生](= 알도록 하였는데) ● (알 같은 것은) ④ 크기가 ⑤ 5되[升] 남짓[許]과 같았다. ⑥ 왕이 ⑦ 그것(= 알 같은 것)을 이상하게 여겨 ● 말하기를 "⑧ 사람이 ⑨ 새의 알 같은 것[鳥卵]을 낳았다니, ⑩ 좋지 않다[不祥]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①初●②生左腋③生一卵●④大⑤如五升許⑥王⑦怪之●曰⑧人生鳥卵⑩可爲不祥>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바, 동명이 실제 태어난 때는 신작 04년 01월 즈음이기에, 신04년 04월에 동명이 태어났다고 하고 사용한 初는 이어 적은 일들이 앞서 있었던 일들임을 알려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처음[初]이어 곧바로, 유화가 - 아이 곧 동명을 - 가랑이[腋] 왼편에 낳았다[生][B-15-(4):]라고 적었으니, 이것이 신작 04년 01월 즈음의 일입니다. 腋은 팔, 다리 사이 살이 접힌 곳, 겨드랑이와 가랑이를 말합니다.


곧바로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유화가 1개 알 같은 것을 낳았다[生][B-15-(4):③]고 적었는데, 이미 앞에 동명을 낳았다[生]고 적었으니, 2번 잇다른 생生이라는 글자들의 뜻을 모두 낳았다고 보면 어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사람은 알도, 알 같은 것도 낳을 수 없으니, 뒤에 쓰 生의 뜻은 '낳았다'는 뜻이 비롯된 본래 뜻, 세상에 모습을 보여 '알도록 하였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앞서 일본서기를 살피며, 생生본래의 뜻을 가지고 '알았다'에 해당한다고 본 것과 같습니다.


곧 이 때 유화는 낳은 아이를 숨기고 알 같은 것을 내어놓았는데, 이 알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미 신라 시조의 일을 살피며 이야기한 바 있으니, 아이를 두어 안전자라도록  일종의 간이 요람 같은 도구입니다. 어째서 이 도구, 유화가 해당하는 예 사람들과, 신라 시조가 태어난 진-한 사람들 모두 같은 시기 썼던 것일까요? 옛 진-국을 이루었던 진辰 사람들이 예濊에 머물렀던 일살펴 이미 이야기하였던 바, 이 때 잠시 함께  두 무리가 같은 도구를 알고 쓰게 된 것입니다.


돌아가서, 러한 구를 알도록 하였던 일에 대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앞서 주몽을 낳았다고 적은 일과 겹치는 것이라 여기고서 간단히, 유화가 알 같은 것을 낳았다[A-8-(3):①]고 적었습니다. 그리고서 동명왕편 주석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크기가 5되 남짓었다[B-15-(4):④-⑤ = A-8-(3):-]고 적었으니, 도구는  태어난 아이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습입니다.


A-8-(3)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 (여자가) ① 1(개) 알 같은 것[卵]을 낳았는데[生](= 내놓았는데) ● (알 같은 것은) ② 크기가 ③ 5되[升] 남짓과 같았다. ●①生一卵●②大③如五升許


어째서 유화는 아이 대신 아이를 두어 키울 수 있는 도구를 금와에게 보여주었을까요? 바로 앞서, 유화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았을 때 금와가 유화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유화가 다른 사람과 통하였다 - 해모수에 대한 볼모로서의 쓸모가 없다 - 고 여기자 죽이려 하였던 금와가 그 쓸모조차 분명하지 않은 아이를 살려두려 할까요? 그런 걱정이 당연히 뒤를 이었기에 유화는 아이를 넣지 않은 도구를 금와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화의 걱정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금와가 유화가 보여준 알 같은 것을 이상하다고 여겼다[B-15-(4):-]고 적고, 이어 사람인 유화가 새의 알 같은 것을 낳은 것은 좋지 못하다고 하였다[B-15-(4):⑧-⑩]고 적었습니다. 그리고서 이어지는 동명왕편 주석은 금와가 그것을 없애려 하였고 적었는데, 그러기 위해 한 일들은 뒤에까지 전하여 다른 자료들 또한 모두 적었을 만큼 사나운 것이었습니다.




먼저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은, 서 다른 유화의 이야기에 대해 그리하였듯이 동명왕편 주석과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적은 이야기를 알 같은 것을 비롯한 사항들에 대한 이야기 없이 간단히, 뒤에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L-(2):- = M-(2):①-②]라고 적었습니다. 그러한 사항들을 부여 사람들이 굳이 전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전한 바를 듣는 사람들이 그러한 부분을 굳이 적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 적지 않았습니다.


L-(2) 논형 길험편: ① 뒤에 ● (여자가) ② 아이를 낳았다. ①後●②産子
M-(2)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주석 인용 위략 인용 옛 기록: <① 뒤에 ● (여자가) ② 아이를 낳았다.> <(魏略曰)(舊志又言)①後●生子>


때문에,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의 이어지는 내용은 알 같은 것이 아닌 아이에 대한 것이 되었고, 그 내용은 실제보다도 더욱 사나운 것이 되었습니다.


논형 길험편은 모두 왕이 - 금와가 - 먼저 아이를 돼지우리에 버렸지만 돼지가 아이를 돌보아 죽지 않도록 하자 다시 말우리에 두고 바라기를 말들이 밟았으면, 하고 바랬지만 말도 아이를 돌보아 죽지 않도록 하였다[L-(3):-⑫]고 적었습니다. 옛 기록은 그 가운데 말이 아이를 밟았으면, 하고 왕이 바랜 부분을 제외하고 돼지우리, 말우리에 아이를 두 돼지, 말이 아이를 돌보아 아이가 죽지 않도록 하였다[M-(3):①-] 적었습니다.


L-(3) 논형 길험편: (왕이) ① (아이를) 돼지우리[溷] 가운데에 버렸다[捐]. ② 돼지[猪]가 ③ 입의 기운[口氣]이 ④ 그것[之](= 아이)에게 넣어지도록[噓] 하여 ● (아이가) ⑤ 죽지 않았다. ● 다시 (왕이) ⑥ 옮겨 (아이를) 말우리[欄] 가운데에 두고 ● 바라기를 ⑦ 말[馬]을 시켜 ● (말들이) ⑧ 밟아 그것[之]을(= 아이를) 죽였으면, 하였다. ⑨ 말[馬]이 ● 다시 ⑩ 입의 기운[口氣]이 ⑪ 그것[之](= 아이)에게 넣어지도록[噓] 하여 ● (아이가) ⑫ 죽지 않았다. ①捐於猪溷中②猪③以口氣④噓之●⑤不死●復⑥徙置馬欄中●欲⑦使馬●⑧藉殺之⑨馬●復⑩以口氣⑪噓之●⑫不死
M-(3)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주석 인용 위략 인용 옛 기록: <① 왕이 ② 그(= 아이를) 돼지우리[溷] 가운데에 버렸다[捐]. ③ 돼지[豬]가 ④ 숨[喙]이 ⑤ 그것[之](= 아이)에게 넣어지도록[噓] 하였고 ● (왕이) ⑥ (아이를) 옮겨 ● (아이가) ⑦ 말우리[馬休]에 이르렀다. ⑧ 말[馬]이 ⑨ 기운[氣]이 ⑩ 그것[之](= 아이)에게 넣어지도록[噓] 하여 ● (아이가) ⑪ 죽지 않았다.> <(魏略曰)(舊志又言)①王②捐之於溷中③豬④以喙⑤噓之●⑥徙●⑦至馬閑⑧馬⑨以氣⑩噓之⑪不死>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이려 한 이 일들은, 동명왕편 주석 또한 적었습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왕이 그것 곧 알 같은 것을 말 기르는 곳에 두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았다[B-15-(5):-④]고 적었는데, 논형 길험편이 왕이 바랬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 일에 해당합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깊은 산에 버리자 짐승들이 지켰다[B-15-(5):-] 적었는데,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이 아이를 돼지우리에 두었지만 돼지가 돌보아 아이가 죽지 않았다고 적은 일에 해당합니다.


B-15-(5) 동명왕편 주석: <● (왕이) ① 사람들에게 시키니 ● (사람들이) ② 그것(= 알 같은 것)을 말 기르는 곳[馬牧]에 두었다. ③ 여러 말들[群馬]이 ④ (그것을) 밟지 않았다. ● (사람들이) ⑤ (그것을) 깊은 산에 버렸다. ⑥ 여러 짐승들[百獸]이 ● 모두 ⑦ (알을) 지켰다.> <●①使人●③置之馬牧③群馬④不踐●⑤棄於深山⑥百獸●皆⑦護>


그리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앞서의 일들을 빠짐없이 적었습니다. 먼저 개들, 돼지들에게 알 같은 것을 주었지만 개들, 돼지들이 그것을 먹지 않았다[A-8-(4):①-]고 적었고, 이어  또한 소들, 말들에게 주었지만 소들, 말들이 그것 벗어났다[A-8-(4):-] - 밟지 않았다 - 고 적었습니다. 또한 뒤에 왕이 그것을 들에 버리 새들이 덮고 날갯짓을 하였다[A-8-(4):-]고 적었습니다.


A-8-(4)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왕이) ① (알 같은 것을) 개들[犬], 돼지들[豕]에게 주었다. ● 모두 ② (그것을) 먹지 않았다. ● (왕이) 또한 ③ (알 같은 것을) 길 가운데에 버렸다. ④ 소들[牛], 말들[馬]이 ⑤ 그것에서 벗어났다. ⑥ 뒤에 ● (왕이) ⑦ 그것을 들[野]에 버렸다. ⑧ 새들[鳥]이 ⑨ 덮고 그것에 날갯짓하였다. ①與犬豕●皆②不食●又③棄之路中④牛馬⑤避之⑥後●⑦棄之野⑧鳥⑨覆翼之


견주어보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적은 개, 돼지, 소, 말 그리고 새와의 일들 가운데,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은 돼지와 말의 일들을 적었습니다. 또한 동명왕편 주석은 말의 일 만을 적고 나머지 일은 깊은 산의 짐승들의 일들로 한꺼번에 적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기르는 것이든 들에서 사는 것이든, 짐승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했고 그래서 아이가 살았다는 표현은 그저 사람이 보고 그리 적은 것일 뿐입니다. 곧 실제 일어났던 일은 짐승들을 기르는 사람들이 뜻하여 기르는 짐승들이 아이를 해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앞서 보인 여러 짐승들 곧 개, 돼지, 소, 말 그리고 새고 적은 구절에 그러한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은 그 국에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왕들이 있어 기르는 6가지 짐승들의 이름 관官을 이름하였으니 그 이름들을 마-가, 우-가, 저-가, 구-가의 대사인 대사자, 대사자라고 하였다[N-2:-⑥] 적었는데, 여기서 관의 이름에 해당하는 짐승들뒤에서부터 바로 앞서 적은 개, 돼지, 소, 말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N-2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① (부여의) 국國에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君] 왕들[王]이 있었다. ● (왕들은) 모두 ③ 6(가지) 기르는 짐승들[畜]의 이름이 ④ 관官을 이름하도록(= 이름하여 말하도록) 하니, ● (벼슬의 이름들 가운데) ⑤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豬-加], 구-가[狗-加]의 대사大使인 ⑥ 대사자들[大使者](= 마-가의 대사자, 우-가의 대사자, 저-가의 대사자, 구가의 대사자), 사자들[使者]이(= 마-가의 사자, 우-가의 사자, 저-가의 사자, 구가의 사자가) 있었다. ①國②有君王●皆③以六畜④名官●有⑤馬加牛加豬加狗加大使⑥大使者使者


렇기에, 이 짐승들이 아이를 해치지 못하도록 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그런 짐승들을 기르던 사람들의 작은 우두머리들, 부여-왕 금와 따르던 구-가, 저-가, 우-가, 마-가라는 4개 무리의 대사들[大使]이었습니다. 금와는 그들에게 기르는 짐승들을 부려 아이를 죽이도록 하였지만, 그들은 따르던 사람들을 통해 기르는 짐승들이 아이를 죽이지 않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부여 사람들은, 그들이 새로 다스리는 예 사람들과는 달리, 해모수의 아버지와 한 무리였다가 갈라진 사이였습니다. 그는 해부루를 따르다가 해부루에 이어 부여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였기에, 자신의 자리를 그에게 빼앗길 수 있었던 금와와 달리 금와 아래의 작은 우두머리들에게는 본래 따랐을지도 모를 그의 피붙이굳이  까닭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유화가 몰래 금와가 죽이도록 한 아이의 아버지가 해모수라는 점, 다시 말해 아이가 해모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점을 알리자, 금와의 말을 들어주는 척 하며, 아이를 해치지는 않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아이를 해칠 가능성은 있었기에 유화는 아이 대신 앞서의 알 같은 것 - 아이를 넣어두었다고 하면서 실은 비워두었던 임시 요람 - 을 금와에게 보였, 때문에 아이는 혹시 모를 위험까지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짐승들 가운데 새들, 그리고 아이를 감싼 새들은 그러한 알 같은 것에 대해 앞서 살피며 이야기한 진辰 사람들과 예 사람들에 대한 또다른 연결고리, 당시 부여가 거느리던 예 사람 가운데 남아 우두머리 노릇을 하약간의 진辰 사람들에 대한 연결고리기도 한데, 1장 3편 마지막 글들에서 이미 자세히 살폈기에 다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아이를 죽이려는 금와를 주변의 사람들이 돕지 않자, 금와가 알 같은 것을 쪼개려 하였지만 알 같은 것은 깨어지지 않았다[A-8-(5):-]고 적었습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구름으로 그늘진 날이었음에도 알 같은 것 위에 햇빛이 드리웠다[B-15-(6):-]고 당시의 상황을 이어 적었습니다.


A-8-(5)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① 왕이 ● 바라기를 ② 그것을 쪼개었으면, 하였으나 ● (그것은) ③ 깨어지지 않았다. ● 이윽고 (그것이) ④ 그 어머니에게 돌아가니 ⑤ 그 어머니가 ⑥ 다른 물건이 ⑦ 그것을 싸도록 하니 ● (그것이) ⑧ 따뜻한 곳에 놓였다. ⑨ 1(명) 남자아이가 있어 ● (아이가) ⑩ (알의) 껍질[殼]을 깨트리고 ⑪ 나왔다. ● (남자아이는) ⑫ 뼈[骨]의 드러남[表]이 ⑬ 뛰어났다[英奇]. ①王●欲②剖之●③不能破●遂④還其母⑤其母⑥以物⑦裹之●⑧置於暖處●⑨有一男兒●⑩破殼⑪而出●⑫骨表⑬英奇
B-15-(6) 동명왕편 주석: <① 구름[雲]이 그늘지도록 하는[陰] 날[日]인데도 ② 알 같은 것 위에 ● 언제나 ③ 햇빛[日光]이 있었다. ④ 왕이 ⑤ 알 같은 것[卵]을 가지고 ⑥ (알 같은 것을) 낳은 여자[母]에게 보내니 ● (여자가) ⑦ 그것(= 알 같은 것)을 돌보았다[養]. ⑧ 알 같은 것이 ● 마침내 이어 ⑨ 열리니 ● (여자가) ⑩ 1(명) 남자(아이)[男]를 얻었다.> <①雲陰之日②卵上●恒③有日光④王⑤取卵⑥送母⑦養之⑧卵●終乃⑨開●⑩得一男>


이어진 상황을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은 모두 왕이 천(-제)의 아들인지 의심하였다[L-(4):-② = M-(4):①-②]고 적었습니다. 곧 금와는 알 같은 것의 위로 비치는 햇빛을 보고 해모수를 떠올렸고 그리하여 마침내 아이를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였기에 그 뒤 이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동명왕편 주석은 유화가 금와에게서 알 같은 것을 돌려받아서는 다시 돌보았다[A-8-(5):-⑧ = B-15-(6):-], 같은 상황을 조금씩 달리 적을 수 있었습니다.


L-(4) 논형 길험편: ① 왕이 ● 의심하기를 ② 천(-제)[天]의 아이[子]인가, 하였으며 ③ 그[其](= 아이의) 어머니[母]에게 시키니 ● (아이의 어머니는) ④ 거두어[收] (아이를) 가졌고 ⑤ (아이의 어머니를) 따르는 사람[奴]이 ⑥ 그[之](= 아이를) 길렀는데[畜], ⑦ (아이를)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⑧ 동명東明(= 해[日])이라고 하였다. ①王●疑②以爲天子③令其母●④收取⑤奴⑥畜之⑦名●⑧東明
M-(4)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 주석 인용 위략 인용 옛 기록: <① 왕이 ● 의심하여 ② 천(-제)[天]의 아이[子]인가, 하였으며 ● 이어 ③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시키니 ● (아이의 어머니가) ④ 거두어[收] 그(= 아이)를 기르며[畜] ⑤ (아이를)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⑥ 동명東明이라고 하였다.> <①王●疑②以爲天子也●乃③令其母●④收畜之⑤名●曰⑥東明>


그렇게 - 신작 04년 04월 - 돌려받은 요람에 아이를 되돌려 기르던 유화는 3달이 지나서 - 신작 04년 04월이 되어서야 - 금와가 더이상 아랫사람들과 맞서면서까지 아이를 죽이려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아이를 내어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아이가 알 같은 것을 깨고 나왔다[A-8-(5):-]고 적었으며, 또한 동명왕편 주석은 알 같은 것이 열리고 유화가 아이를 얻었다[B-15-(6):-]고 적었습니다.


그 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적은 아이의 모습[A-8-(5):⑫-⑬]은 동명왕편 주석이 신작 04년 04월에 아이를 낳았다고 한 앞서의 구절들이 적은 모습[B-15-(3):-⑥] 그대로이니, 태어나 3달이 지나서야 아이를 바깥에 내어보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논형 길험편과 옛 기록은 모두 아이를 이름하여 동명이라고 하였다[L-(4):⑦- = M-(4): ⑤-⑥]고 적었으니, 유화의 꿈 그리고 금와가 알 같은 것을 깨고자 하였을 때에 보였던 해[日]에 대한 묘사를 가지고 지은 이름입니다.




그리하여 동명은 어머니가 가질 때부터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 여러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금와는 유화를 그리고 다시 동명을 죽이려고 하는 뜻을 잠시 접었지만, 그를 따르는 부여 사람들의 작은 우두머리들 가운데 해모수와 그 아버지를 화나게 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동명을 죽이려 하는 가운데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해모수가 하-백을 통해 건너편의 부여에 이르는 길을 얻어내어 영향을 주고자 하였이, 해모수가 있던 길 반대편 곧 홀승-골-성에 금와 또한 영향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금와가 움직여서는 이루어낸 일, 그것을 다음 글에서 이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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