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문의 편지를 받은 그는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곤 나에게 사과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일단 악수를 하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를 용서하지 못했다.
사실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지금으로선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 참 안타깝다.
어떤 지점에서 마음이 움직여 그는 사과하게 되었을까.
알고 봤더니 그는 매해 연례행사처럼 한 명의 학생을 그런 식으로 말 그대로 조져왔었고 그해에는 내가 낙점된 것이었다.
그가 그런 미치광이인 줄 알았으면 절대 그런 도발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어쨌든 그가 조진 학생들 중에 사과를 한 학생도 내가 유일했다고 하니 그 시절의 내 글쓰기 실력도 꽤 괜찮았었나 보다.
그의 사과가 더 도화선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깟 알량한 사과 한마디로 내 인격을 말살한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았다.
'니가 그때는 맞을 짓을 했던 거야, 공부도 못하는 게 어디 말이야. 영어 선생님을 꼬나봤으니 개맞듯 처맞아도 당연했던 거야. 나는 사과했어'라는 마음의 평화를 그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복수하겠어.
이 세상에 그렇게 무시받아도 될 인간은 없는 거야.
보란 듯이 공부 잘해서 너의 비열한 미소 앞에 콧방귀 뀌며 너를 무시해 주겠어.
솔직히 정말 힘들었다.
중학교 3년간 그리 똥꼬 발랄하게 놀았던 내가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고 공부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 2시에 몸을 뉘었는데 희한하게도 눈을 깜자마자 새벽 6시라며 기상 알람이 울렸다.
눈을 떠서 몸을 일으키는 게 정말 고역스러웠다.
욕을 하며 일어났다.
"이 더러운 세상!! 이 죽일 놈의 세상!!"
"1등만 기억하는 이 썩어빠진 세상"
등굣길에는 영어단어를 외우며 길을 걸었다.
대로를 따라 걸으면 학교가 훨씬 가까웠지만 행여나 친구들이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내 모습을 보게 될까 부끄러워 뒷골목으로 걸어 다녔다.
무조건 예습을 하였다.
수업시간에는 절대 졸지 않고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수업시간에 송곳 같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쉬는 시간 종이 땡치면 책상 위로 바로 쿠션을 올리고 10분간 잤다.
집에 가면 그날 배운 과목은 그날 꼭 복습하였다.
그러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이전에 정말 실력 없고 못 가르치는 (어쩜 그리도 하나도 이해가 안 되고 잠만 오게 가르치는지) 선생님들이라 생각했는데, 어쩜 그렇게 잘 가르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이 진짜였다.
점수가 계속 오르고 등수도 계속 올랐다.
영어시험 점수를 본 그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봤다.
"이야~정핸쑤기 웬일이고? 누구 거 빼낐나?"
매번 시험마다 점수가 잘 나오고 성적이 올라가자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내가 아들(애들) 여러 명 조지 봤는데, 니 같은 아는(애는) 난생처음이네. 니 참 대단 하다마~"
그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도 1학년 아이 하나를 개 잡듯 잡았다.
그다음 해에도 1학년 아이를 때리다가 아이가 잘못 맞았는지 많이 다치게 되었다.
결국 그는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가 학교에서 쫓겨나가던 날 나는 그를 좇아갔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