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문학도였다.
글 쓰는 걸 좋아했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여차저차하여 판사가 되었다.
2005년,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예비판사로 임관한 이래로 지금까지 그 무거운 직을 해나가고 있다.
예비판사 2년, 배석판사 2년, 그리고 단독판사.
18개월 터울로 아들 둘을 낳았다.
그리고 밀양에서 3년.
부산으로 돌아와 늦둥이 셋째 아들을 또 낳았다.
판사의 시간 동안 함부로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
강제적으로 세상과 단절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참았다. 아니 버텨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다.
일의 더미에 파묻혀, 세 아들 육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13년을 보냈다.
그러다 가사전문법관으로 선정되어 부산가정법원에서 7년을 보내게 되었다.
가정법원에서 보냈던 그 시절, 수많은 이의 굽이굽이 인생사를 함께 했다. 모든 이들의 삶은 역사였다.
깨어져 가는 가정들, 회복될 수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고 싶었고, 헤어져야 한다면 잘 헤어지게 마무리 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책임한 어른들의 싸움에 아무런 대비 없이 내팽개쳐진 아이들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호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임계점에 다다랐다. 뭐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일기를 쓰게 되었고 그것들을 모아 마침내 책까지 내게 되었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므로...
그런데 곧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가서인지(실상이 그런지와는 별개로) 그냥 용기가 났다.
그저 이야기하고 싶었다.
뭔가 특별할 것 같은 사람도, 시간도, 사건도 전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뭐 그런, 그저 함께 살아가는 삶.
그러니 너무 애쓰지도 말고 너무 비장해지지도 말며 그저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만 더 다정해지는 삶.
그런 삶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이제 브런치에도 도전한다.
그런데 얼마나 자주 글을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사실 머릿속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한데 매일매일 눈앞에 쏟아져 들어오는 일 때문에 글을 쓰려고 마음먹기 조차 쉽지 않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서야 이제 첫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써보고 싶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끝났지만, 브런치에 온 판사는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