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칼을 든 이유 3
내가 아이들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늘 그랬다.
아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가장 큰 피해자였다.
이혼법정에서 만나온 그와 그녀들의 마음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어린 슬픔이 짙푸르게 존재하고 있는 경우가 참 많았다.
어쩌다 어른이 되어 어쩌다 결혼을 하고 어쩌다 부모가 되었지만, 그 슬픔은 유전자처럼 다시 자신의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 제대로 된 보살핌을 단 한 번이라도 받았더라면,
다른 그 무엇도 필요 없고 너 하나로 족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들었더라면,
그녀는 평생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그렇게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애쓰는 인생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엄마는 칼을 든 남편 앞에서 피의 관계를 종지부 찍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녀의 엄마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딸에게 일평생 헤어날 수 없는 슬픔을 유전시켰다.
그녀의 아버지도 어쩌면 그녀보다 더한 서사를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딸에게 동일한 아픔을 유전시킴으로써 그 서사를 위로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 역시도 그렇다.
모두가 고개를 내저으며 함께 슬퍼할 만한 고통과 아픔을 상속받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자녀들에게 동일한 고통을 유전시킴으로써 온전한 위로를 받을 수는 없게 되었다.
나는 적어도 내 법정을 밟는 이들에게만큼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고 싶다.
내 법정을 밟는 그들의 아이들에게만이라도 말이다.
조정조치결과보고서를 검토해 보니, 그녀는 엄마의 자격까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아왔고 사랑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엄마를 무서워한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이 엄마를 무서워하니 면접교섭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한 결과이다.
엄마가 칼로 자기 배를 찔러 피가 낭자하며 쓰러지는 그 현장을 목격했는데 아이들에게 생기는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아이들은 마치 엄마가 자기를 칼로 찌른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혼소송 중의 자녀들은 부모가 부부싸움을 하며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고 마치 부모가 자신에게 한 것으로 여기고 공포에 휩싸이는데 이 사건에서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이 사건의 아이들이 그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뒤 평생의 상처로 남을 아픔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도 엄마뿐이다. 다른 그 어떤 것들도 이 아이들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단지 숨겨질 뿐.
그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 이후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또다시 그 끈질긴 슬픔의 유전자는 발현되어 그 아이의 아이들에게 유전될 것이다.
여기서 끊어내야한다.
그리고 이 불쌍한 엄마에게도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번 정도는 다시 줘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조건적으로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자녀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자녀들 역시, 극한의 공포의 대상이 아닌, 우주와도 같았던 따뜻한 엄마를 기억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아이들도 남편도 힘들어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한 시간 면접교섭센터에서 상담사의 모니터링 아래서 조심스럽게 면접교섭을 시작했다.
1회 면접교섭날 아이들은 아빠의 손을 잡고 쭈볏쭈볏 면접교섭실로 들어왔고 엄마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근 1년 만에 만나는 엄마였다.
엄마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아이 이름 하나하나 부르며 미안하다고 울부짖었다. 엄마가 손을 벌리자 아이들은 엄마에게 달려들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채 1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바깥에서 모니터링하던 아빠도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은 엄마가 너무너무너무 무서웠지만 엄마가 정말 많이 보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엄마와 아이들은 10회기 면접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가족상담을 받았고, 엄마는 아이들에게 그날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파서 정말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고백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등을 다독여주었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아이들은 엄마를 잃지 않았고, 엄마는 세상 누구로부터 받아본지 못한 온전한 사람을 아이들로부터 받아 누렸다.
부부는 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자식의 인생을 부모와 다른 어른들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함부로 다른 부모를 그 아이들의 인생에서 배제시켜서는 안 된다(물론 아이를 학대하거나 아이에게 범죄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는 예외이다. 모든 경우에 일반화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전제한다).
그것은 그 아이들의 몫이다.
이혼소송 중 단 한 번도 제 목소리를 내어보지도 못하고, 한쪽 부모를 잃어버린 채 자라나
평생 어린 슬픔을 갖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 비극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늘 아이들에게 미안한 이혼판사의 지극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