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북튜버 겨울서점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몇 페이지만 읽으려다가 한 번에 끝까지 읽을 정도로 흡입력 있다고 리뷰를 해서 어떤 책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제19회 세계문학상 대상작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첫 페이지를 열었다.
첫 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처럼 이 소설은 쏜 화살 같은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시작한다.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겪어내고 있는 각자의 겨울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인 중년여성 명주는 오랜 기간 간병해 온 치매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 백만 원을 부정수령하기 위해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시체를 미라로 만든다. 매일 소독을 해도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어머니의 행방을 묻는 이웃들로 인해 이 모든 사실이 들통날까 봐 명주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이 소설에서 명주의 겨울을 보여주는 방식은 독특하다. 삭풍 아래 홀로 선 맨몸이 되어 벼랑 끝에 몰린 듯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그러한 상황과 감정선을 건조하고 담백하게 서술해 나간다. 담담함에 가려진 불안감 때문에 역설적으로 마음이 더 아려온다.
또 다른 주인공인 옆집 청년 준성은 알코올성 치매인 아버지를 돌보며 물리치료사 시험을 준비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자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제법 명랑한 캐릭터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구김 없음이 아버지 때문에 지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아 더 안쓰럽게 다가왔다. 그러나 무자비한 현실은 그를 마냥 밝을 수 있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눈보라 치는 겨울폭풍 속에 밀어 넣어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게 만들어 버린다.
더 나빠질 것도 없을 것 같은 둘의 상황에 기다렸다는 듯이 한파처럼 매서운 시련들이 들이닥친다. 각자의 겨울은 어느새 우리의 겨울이 되고 준성은 다행히 겨울 속에서도 조금 더 단단히 버티고 있던 명주를 만나 다시 일어서게 된다. 소외되고 외로운 두 주인공이 서로를 만나 온기를 만들어내고, 함께 연대하며 겨울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결국 두 주인공에게 찾아온 겨울은 '돌봄노동'과 '소외'이다. 가족 돌봄에서 해방되고 소외에서 벗어나,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 이들은 결국 봄을 맞이한다. '우리'의 겨울의 끝에 찾아온 결말에서는 봄인 듯 아닌 듯 독자의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게 알쏭달쏭한 채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결말이 봄일지 또 다른 겨울의 시작일지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하지만 가여운 주인공들에게 봄을 선사해주고 싶어, 하이키의 노래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처럼 악착같은 희망으로 짓는 결말로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또한 돌봄노동이 과연 어디까지 가족만의 의무여야 하는지,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존엄에 대해, 혈연가족과 비가족 공동체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이들의 상황이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복잡한 문제들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작품의 톤은 다소 어둡지만 담백한 서술과 작가의 문장력으로 인해 술술 가볍게 읽히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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