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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08. 2024

얘도 '나락' 갔네?

나락병에 걸린 사회

2024년 6월에 쓴 글을 각색했습니다.


*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소위 ‘나락에 가는’ 사람들을 결코 옹호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요새 사람들이 ‘나락병’에 걸린 것 같다. 
르세라핌의 코첼라가 한창 화두에 올랐을 때 관련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 고민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르세라핌을 미워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고, 괜한 논란을 만들 위험이 있어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기도 하고, 여러 유명인이 줄줄이 ‘나락’에 가는 현상을 보면서 느낀 것이 좀 있기도 하여, 슬며시 르세라핌 논란에 대해 생각해두었던 바를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지난 몇 년간 유명 아이돌들이 고인이 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는데도 사람들은 변한 게 없었다.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인터넷 위 심판대에 올려놓고 360도로 관찰하며 어떻게든 크고작은 흠결을 찾아 세밀하게 비난한다.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다.

그들은 혐오에 중독됐다. 그래서 혐오를 위한 혐오를 일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라. 지금껏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서로를 헐뜯었던 때가 있었나? 나는 암만 생각해봐도 이만한 혐오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대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이때다, 하고 피라냐처럼 달려들어 미워할 대상을 물어뜯는다. 정말 마구잡이로. 끝도 없이.


나는 르세라핌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서 10여년 전 광기에 가득 차 설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헐뜯던 사람들을 보았다.





라이브를 못한다는 이유로 욕을 먹기 시작한 르세라핌. 라이브 논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사람들이 르세라핌을 비난하는 댓글을 읽어보면 앵무새처럼 다같이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똑같은 양산형 숏츠를 수도없이 보고, 똑같은 악플을 본 사람들은 필터링의 과정 따윈 없이 순식간에 감화되어 다함께 같은 비난의 내용을 공유한다. 그들이 정말로 ‘비판’을 하고싶었다면, 악의적으로 짜깁기된 숏츠가 아닌 롱폼 영상을 보고 왔어야 했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기에 앞서 주관을 가지고 판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진실은 알 바가 아니고, 르세라핌은 음치여야만 하니까.


어도어 사태가 벌어진 이후로 르세라핌에 대한 혐오는 더욱 가속화됐다. 어도어는 절대적 선역이고 하이브는 절대적 악역. 그런 하이브에게 차별받은 우리의 불쌍한 뉴진스는 숭배해야 할 선한 천사(나 뉴진스 좋아한다). 하이브가 어화둥둥 키웠는데도 코첼라를 말아먹은 르세라핌은 욕먹어도 싼 악마. 


그들은 자신이 정의의 심판이 되었다는 크나큰 착각에 빠져 악역 르세라핌을 처단하려 한다. 홍은채의 조롱 발언 논란. 분명 논란이 될만한 발언이고, 실례되는 발언이 맞다. 그런데 과연 그 한 번의 실수가 홍은채의 모든 것을 설명 하는가. 몇 시간도, 며칠도 아닌 몇 달에 걸쳐 도넘은 악플 세례를 받을 정도인가.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데. 실수했으니 다음에 그러지 않으면 되는 건데. 그녀에게 ‘다음’이라는 기회를 주고 있긴 한가?


눈에 불을 켜고 ‘미워해야 할’ 대상을 찾는 사람들. 왜 그렇게까지 남을 미워하는 데 시간을 쓰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현생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데, 만만하게 화풀이할 곳은 인터넷이니. 군중심리를 따라 미워할 대상 하나 찾아서 열심히 익명으로 물어 뜯은 후 죄책감 하나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먹고 편하게 잠자리에 드는 거다. 아일릿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어도어와 하이브 양자간 갈등 속 형성된 선역 악역 프레임은 아일릿과 르세라핌을 지나친 위기로 몰아넣는다.



피식대학, 오킹, 달씨 등 유명 유튜버들의 논란이 줄줄이 뜰 때도 사람들은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자극’에 뜨겁게 반응했다. “그래서 걔 나락 확정이야?”, “얘도 나락이네”, “친구라더니 사이좋게 나락 가네” 등 해당 유튜버들이 어떻게든 나락에 가기를 바라는 듯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지나친 ‘나락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다시 말하지만, 이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불거진 트리플스타의 사생활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들떠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낙인 찍고 보는 것이다. 그들에게 한 번 논란이 터진 유명인은 끝까지 나락행이어야 한다. 이 기차는 돌아오는 편이 없어야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이거다.


Who’s the next? 또 나락에 갈 사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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