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난 도쿄에서 만난 노인의 모습들
여행을 나서면 평소의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다.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굳이 친해지려 하지 않는 다소 폐쇄적인 성격이, 여행지에서는 선뜻 먼저 말을 건네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나는 지난 10월 홀로 떠난 도쿄 여행에서 더욱 열린 시선으로 도쿄의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바라본 세상, 특히 '사람들'에 관한 관찰지를 써보려 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일본의 '노인'에 대해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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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둘째 날, 후지산을 보기 위해 떠난 도쿄 근교의 가와구치코에서 수많은 관광객을 만나고 금세 지치고야 말았다. 나는 도피하듯 빠르게 근처 가츠동 집으로 향했다. 아주 조그만 가게였는데, 할머니 홀로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런데도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던 것이, 현지인 맛집임이 분명했다. 할머니는 분주한 발걸음으로 식당 안을 오가며 서빙을 하고, 아직 식사를 건네받지 못한 팀에는 준비에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안내하셨다.
기다림 끝에 받은 가츠동은 살면서 먹어본 가츠동 중 최고였다. 이게 할머니의 맛이구나,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리며 싹싹 긁어먹었다. 다 먹고 나서 계산할 때에 할머니께 너무너무 맛있다고, 지금껏 먹어본 가츠동 중 최고라고 하니 수줍어하며 좋아해 주셨다. 그리고 식당에서 나가기 전에 다급하게 손에 뭔갈 쥐어 주셨는데 우마이봉이었다.
셋째 날엔 바닷가 마을 에노시마의 숙소에서 묵었는데, 가성비 료칸이었다. 이 료칸의 주인도 할머니셨다. 체크인 당시 영어를 전혀 못 하셔서 일본어로만 설명하시는데 알아듣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할머니가 나를 진심으로 친절하게 응대하고 계신 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와 바닷가를 구경하고, 하세데라'라는 사원에 가는 길에 우연히 귀여운 커피 트럭을 발견했다.
인상이 푸근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자그마한 트럭 카페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할아버지께서 손수 내린 이곳의 드립커피 또한 살면서 마셔본 커피 중 손에 꼽았다.
할아버지는 여유롭게 손님을 응대하며 아주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손짓에서 묻어 나오는 여유로움을 보아하니 상당한 경력자였다. 나는 이번에도 맛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다섯 째날 공항으로 가기 전 아사쿠사의 아무 카페에 들어가 팬케익과 커피를 시켰다. 퐁신퐁신한 팬케익이 나오고, 나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주인 할머니께선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팬케익을 먹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맛있냐고 여쭤보셨다. 엄지를 추켜올리며 맛있다고 하니 할머니는 웃으면서 "너 정말 귀엽다. 사진 찍어줄까?"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나는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고, 열정을 다해 사진을 찍던 할머니는 나와 몇 마디 더 나누다가 손님 응대를 위해 카운터로 돌아가셨다.
일본은 특히 초고령사회인만큼 노인 인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노인들이 좋아하는 일을 주체적으로 하는 모습이 과장 없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한국의 노인들, 특히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겹쳐 보이며 다소 슬퍼졌다.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간 일본의 다양한 곳을 방문했음에도 '폐지 줍는 노인'을 본 적이 없다. 한국과 일본은 고령화 사회라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일본을 웃도는 상황이다.
이 기사를 소개하고 싶다.
‘노인 지옥’ 일본, 한국 ‘노인 빈곤’ 걱정••• “서로 배워야”, 경향신문, 2024.11.13
저출산 고령화' 대표 국가로 조명돼 온 일본의 언론이 외려 한국의 고령화 속도와 노인 빈곤율에 주목했다.(중략) 아사히는 또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약 40%로 일본의 2배 수준이라며 "서울 길거리에서는 골판지 등 폐품을 주우며 걷는 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업자에게 폐품을 판 수입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노인 빈곤 문제의 대명사"라고 지적했다. '연금충' '노시니어(존)' 등 노인 혐오 현상도 거론했다.
일본 또한 초고령화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고독사 등-에 직면해 있고, 이를 해결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금의 일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우리보다 한참 앞서 초고령 사회를 맞은 일본은 이제 일흔 살까지 일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였다면 이미 은퇴했을 나이에 현역으로 일하는 모습은 일본에서 흔한 풍경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곧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나도 언젠간 이 사회의 노인이 될 텐데, 젊은 세대에게 혐오를 받고 싶지 않다. 그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찾아서 하며 내 삶을 직접 꾸려나가고 싶다. 노인 일자리 환경이 개선되고, 노 인 빈곤 문제가 개선되어 점진적으로 노인이 더 이상 빈곤하지 않은 사회로 나아간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