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한 대학생이 바라본 '서울공화국'의 현실
작금을 대혐오시대라고들 부른다. 나는 이 사회에 만연한 혐오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생각하다가, 한 가지를 생각해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내가 크게 짚은 것은 '인구 밀집도'다.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잘 들어보시라.
나는 서울로 상경한 대구 출신 대학생이다. 서울에 사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생각하는 건, 서울에 인구가 너무 많다는 것. 안 그래도 좁아터진 땅덩어리에 그 많은 사람이 살다 보니 서로서로 더욱 신경 쓰고, 사사건건 잡아 뜯고, 혐오하는 것 같다. 출퇴근 길만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그냥 늘 많다. 외향형이고 내향형이고를 떠나서 이정도로 인파가 붐비면 누구든 숨이 막힐 것이다.
나는 서울 1호선 지하철역의 출구 근처에 있는 커다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손님이 많은 건 서울의 역세권이라면 어딜 가도 그렇겠지만, 이 동네는 좀 더 유별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손님의 절반 이상이 중장년층, 혹은 그 이상의 연령층에 해당한다는 것.
아이는 안 낳고, 사람들은 점점 더 커가고. 이럴 때면 살갗에 와닿는, 한국이 고령사회를 넘어서 곧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현실. 70대 이상의 노인 인구가 20대 인구를 초월한 우리 사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의 젊은이들은 노인을 혐오한다. 혐로(嫌老) 사회. 오가는 길이 바빠 죽겠으니까, 거슬려 죽겠으니까. 여유라곤 하나도 없는 내가 왜 저들을 부양하기까지 해야 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고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는데, 대구에 살 때는 몰랐지만 대구는 살기가 좋다. 그것도 매우. 요새 서울에서 이리저리 치여 살다 보니 종종 짬 내서 대구에 다녀오면 더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끼게 된다. 대구는 서울보다 인구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서울이 약 938만이라면 부산은 328만, 대구는 237만이다. 사실 237만도 많은 건데. 서울에서 바삐 오가며 치여 살다 대구에 내려가면 숨통이 확 트인다. 그저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걷는 게, 친구와 카페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나서 함께 산 주변을 산책하는 게. 아니 심지어 버스에 탔을 때 비교적 쉽게 자리에 앉는 게. 그게 뭐 별거라고. 그 작은 것들이 새삼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최근 대구 버스에 앉았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온 건 노약자석의 개수였다. 분명 4년 전까지만 해도 그 정도로 많지 않았는데. 뒷문을 기준으로 앞쪽에 파란색 좌석이 단 두 개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노란색 좌석. 서울보다 대구가 더 고령사회라는 건 통계적으로 이미 드러나 있다. 청년 인구는 자꾸만 수도권으로 빠지려 하고, 있는 사람들만 서서히 늙어가고, 아이는 도저히 낳기가 힘든 사회. 그런데 대구의 젊은 세대는 노인을 적어도 혐오하지 않는다. 왜?
내 나름의 결론은 허무하리만치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이다. 인구 밀집도의 차이. 인구 밀집도가 서울만큼 심하지 않으니 서로 신경 쓰며 스트레스 받을 일도 잘 없고, 그러니 세대 갈등이 벌어질 확률도 확연히 낮다. 노인층에 앞서 기득권을 잡은 서울의 젊은 세대는 ‘빨리빨리’를 당연시 하지만, 노인층은 그들에 반해 느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뭐 하나 할 거 없이 나를 옥죄어오는데 저들(노인층)은 왜 이리 여유로운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한 젊은 세대.
대구는 인구가 적당히 많고, 도로가 아주 평탄하면서도 잘 정비되어 있으며, 차를 타고 그 평탄한 도로를 쌩쌩 달리기도 쉽다. 일상에서 여유를 갖기가 아주 쉬운 조건이다. 애초에 차를 타고 편히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삶의 질을 확 높여주니까.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나를 차에 태우고 드라이브시켜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차 타고 팔공산을 달려 대형 카페에 갔을 때 ‘이런 게 진짜 여유구나’ 생각했다. 서울 사람들이 휴일마다 길이 막히고 불편하더라도 꾸역꾸역 차 타고 외곽 도시로 도망치는 이유와도 맞닿아있다. 그걸 대구는 더 쉽게 한다.
아, 이 놈의 ‘서울공화국’. 살기 좋은 대구, 대전, 부산, 세종... 다양한 도시를 뒤로 하고 모두가 서울로 몰리는 안타까운 현실. 대구의 인프라는 서울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없는 게 없는 걸 떠나서 별 것이 다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상경을 택한다. 지금은 서울로 가지 않으면 위기감마저 느껴지도록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있으니까. 서울의 인구를 내려보내려면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낡은 체제부터 어떻게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만 해도 꾸역꾸역 서울로 대학을 간 이유가 있다.
암만 생각해도 좁은 땅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