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를 배워, 글로벌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청소년을 돕고 싶다.
설레었다.
어떤 아이와 멘토링을 하게 될까? 나는 어떤 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될까? 나의 서툰 영어 회화 실력으로 그 아이가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만반의 준비를 잘해야겠다. 아직 한 달 반 정도 남았으니, 차근히 준비를 잘하자.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캡모자를 주로 쓰는 선생님. 검정색, 파란색을 주로 쓰는데 잘 어울린다. 추석이 지나서 제법 쌀쌀하다. 처음으로 긴팔 옷을 입고 왔다. 야상점퍼를 입은 차림이 꼭 야구 선수 같은 인상을 준다. 성실해 보이고 반듯해 보이는 사람이다. 전의 영어 선생님도 지금 영어 선생님도 피부가 여자보다 더 곱다. 피부가 참 깨끗하고 하얗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남자가 저렇게 깔끔하지. 피부가 어쩜, 저렇게 깨끗해. 관리법이 궁금한 적도 있었다. 따로 묻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부와 프로듀싱으로 잠을 못 자고, 일이 바쁠 때는 까칠해 보이고, 가끔씩은 얼굴에 뾰루지가 날 때도 있었다.
추석 연휴가 길었고, 또 잘 보냈는지 얼굴이 아주 편안하고 좋아 보인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선생님, 진짜, 오랜만이에요. 한참 만이죠."
밝은 모습으로 웃으며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앉는다.
3주 만이었다. 추석 연휴도 길었지만, 나는 2년 만에 발목 인대를 좀 다쳐서 한 달 반 이상, 치료와 회복기 때문에 모든 일정을 잠시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면담 영어 수업도 꽤 오랜만이었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였다.
"선생님, 저요. 지난주에, 좀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똘망똘망한 총명한 눈이 나를 집중하고 있다.
"선생님, 저는요. 영어를 배워서 글로벌하게 살고 싶다고 했잖아요. 제 꿈은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말 안 한 게 있어요. 저는 불우한 청소년을 항상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작년에 그런 내용을 에세이에도 썼어요. 그중에서도 좀더 명확하게, 저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런 아이들은 선택권이 없었잖아요."
선생님은 처음 듣는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런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자라서요. 만 18세가 되면 나와야 돼요.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의식주를 자기가 해결해야 돼요.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죠. 그런데 올해부터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더 살 수는 있거든요. 나는 항상 그런 불우한 청소년들을 돕고 싶었어요. 선생님과 제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룬 분들과 그런 청소년들을 연결해서 꿈과 비전을 주는 사업을 나중에 하고 싶어요.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저한테 부담 없는 돈으로 몇 년 전부터 선교사님을 후원하는 돈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어요. "
"그런데 제게 그런 기회가 왔어요. 한 번 보실래요. 신기하게도 제가 소설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 이런 제안이 왔어요. 꿈만 같아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아주 좋아했다는 것, 아시죠? 어떤 아이가 나와 연결될까? 너무 설레어요."
선생님도 덩달아 함께 기뻐해주었다.
"역시, 열정이 있는 거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군요."
"나는 그다지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요. 그냥 조금 소통이 될 뿐이죠. 전보다는 좋아지고 있죠. 그런데 좀 걱정이 돼요.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요. 다른 선생님은 영어를 잘하는데, 나는 서툴러서 나와 연결된 학생을 불편하게 할까 봐요. 걱정이 돼요."
"그럼, 선생님, 수업 시간에 저랑 연습해요.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저한테 보내주시면 제가 영어 번역해 드릴게요. 일단 외우면 그것도 선생님한테 도움이 될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직 한 달 반 남았으니까, 준비를 잘하고 싶어요."
"영어를 그렇게 배우면 정말 더 잘하게 되실 거예요. 뭔가 확실한 목표가 더 생겼잖아요."
선생님과 나는 고취가 되었다. 그리고 발음 공부에 더 열성이게 되었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더 진지하게, 배우는 학생도 더 집중해서 1시간 30분을 열공하였다.
내게 미국식 영어 발음과 문법을 가르쳐 주시는 영어 선생님은 미 8군 카츄샤에서 군대 생활을 했고 통번역 일도 했었다. 그 선생님을 선택한 이유는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과 성우 같은 목소리, 군더더기 없는 수업 준비, 다양한 경험에 대한 안내가 이유였다. 내게 정확한 발음을 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발음에 대한 원리, 내는 방법, 연습하는 방법도 자세히 가르쳐 주어서 나의 발음이 많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일까? 리스닝 실력도 자동적으로 좋아지기 시작했었다. 2개월 이후, 나는 고대하였던 원어민 전화영어 수업과 원어민 화상영어 수업까지 시작하였다. 원어민 전화영어 수업은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에는 매일 오전에 30분씩 그리고 화상영어는 처음 한 달은 1주일에 2번 정도 그 이후에는 1주일에 1번 정도 하였다.
숙제는 만만치가 않았다. 화상 영어 관리 선생님, 면담 영어 선생님의 숙제가 힘겨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른 새벽 시간에 일어나서 나 자신을 다독이며 시간을 쏟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라고.
원어민 전화 영어 선생님은 고정적으로(미국식 발음), 원어민 화상 영어 선생님은 고정 요일과 고정 시간을 갖지 않고 다양한 선생님을 만나는 방법으로(영국식, 미국식 발음) 꽤 열심히 했다. 유튜브에서도 내게 재미와 흥미, 유익을 주는 미국식 발음을 구사하고,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젊은 여성 여행 유튜브의 영상을 매일 아침마다 1시간씩 섀도잉을 했다. 한 달 이후부터는 1주일에 1~2번씩 섀도잉을 했다. 나의 규칙적이고도 몰입적인 영어 공부 덕분에 나는 나의 면담 영어선생님과도 가볍게 프리토킹이 편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빠르게 발음하는 짧은 대화는 제법 알아듣게 되었다.
나는 영어는 미국식 발음도 있고, 영국식 발음도 있고, 그리고 필리핀식, 태국식, 아시아계 영어, 호주식, 유럽 사람들이 쓰는 영어식, 아무튼 다양한 영어 발음이 있기 때문에 원어민 선생님을 다양하게 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자신이 처음 발음을 배울 때에는 미국식이든 영국식이든 하나를 정해서 하는 게 맞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 선생님을 두고 공부를 했다. 중간중간, 딜레마가 생길 때마다 화상영어 수업 사이트의 대표이며 관리자인 선생님에게 그리고 면담영어 선생님에게 자문도 구하고 상담도 하면서, 내가 무슨 수업을 하고 있는지 다 밝히고 의논을 하였다. 나의 세 영어 선생님은 나의 방법을 지지해 주었고, 이해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편하게 다양한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
면담 영어 선생님은 남자분, 그 외 수업은 여자분, 이렇게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남성의 발음에도 익숙하고 싶었고, 여성의 발음에도 익숙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생각대로 되어가고 있을 때, 추석이 지나서 내게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영상 영어 수업 사이트의 대표 선생님이 2025년 하반기 아프리카 청소년 후원하기 프로젝트에 관해서 카톡을 보내왔다. 그동안 목소리와 텍스트로만 알고 지냈던 관리자인 선생님의 예쁜 모습과 아프리카 청소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네 장과 함께. 작은 교실에서 화이트 반팔 원피스와 단발머리를 한 선생님의 환한 웃음과 아이들의 밝은 웃음은 굉장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동안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참 반듯하고 예쁜 선생님이 훌륭한 일을 하고 계셔서, 그런 선생님과 비록 카톡이지만 인연을 맺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 나를 더 기쁘게 했다.
나는 영어를 꼭 정복하고 싶어.
I conquer English.
나는 영어로 한 단어씩 힘주어서 말했다.
그를 똑바로 응시한 채, 나의 목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내가 영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얼마나 빨리 배워야 되는지 그에게 각인하고 싶었다.
그는 내 말이 끝나자 must를 넣어 주었다.
I must conquer English. (나는 반드시 영어를 정복할 거야.)
나는 내가 번 돈으로, 나를 일어나게 하는 데에 돈을 쓸 거야. 내 꿈을 이루는 데에 돈을 쓸 거야. 돈을 가치 있게 쓰고 싶어. 명품백도 좋지만 그런 데에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아. 나는 나이가 많아. 시간이 별로 없어. 아직 에너지를 쓸 수 있을 때, 에너지가 있을 때, 꿈을 이루고 싶어.
그는 내 말에 집중하였다. 그는 나의 간절함을 알았고 이해해 주었다. 그 역시, 소원하는 꿈을 가지고 있고, 또 그 꿈과 비전을 향해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나의 간절함을 응원해 주었다.
그는 따뜻한 눈빛으로, 미소 띤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 그가 참 좋았다. 응원해 주는 눈빛.
그러나 나는, 그와 수업 종료를 선택하였다. 그도 그런 수업 종료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도 선택하였다.
그와 수업종료 한 후, 나는 스픽 앱도 수업종료하였다. 나는 영국식 영어 발음이 싫어졌었다. 애정했었던 에드시런의 노래도, 아델의 노래도 나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영국식 발음을 듣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특히 <오만과 편견> 영화도 싫어졌었다. OST도, 제인 오스틴도.
나는 하루의 시작을 에드 시런의 'Dive'와 함께 했었다.
거의 집에 있을 때는 "Dive', 'Perfect', 'photograph'와 아델의 'Someone like you'를 들었다. 온 집안에서 울리는 밝고 경쾌한 노래들 그리고 사랑의 노래들이 나와 함께 했었다. 그러나 나는 6월 5일 이후, 다 놓게 되었다. 맥이 빠졌다.
새 영어 선생님 수업을 바로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두 달 후, 나는 전화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영상영어 수업도 가능하게 되었다. 나는 미국식 영어 발음을 거의 원어민처럼 하는 영어 선생님을 선택하였다. 그는 유능했었다. 내가 요청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예전의 그에게 보냈던 나의 커리큘럼처럼 용하게 준비했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유창한 미국식 발음도 목소리도 수업 스타일도 가르치는 방식도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선생님이었다. 내가 발음을 정확하게 낼 수 있게 될수록 나의 리스닝 실력도 늘어갔다. 물론 영국식 발음에서 미국식 발음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은 있었지만 한국의 영어 교육에서는 미국식 발음이 익숙했었기 때문에 나는 미국식 발음이 영국식 발음보다 더 쉽게 와닿았다. 미국식 발음이 훨씬 마음에 들기도 했다. 부드럽고 세련되어 보였다. 영국식 발음은 좀 더 세고 거칠었다. 배울수록 마음에 안 들기도 했었다.
나의 상실감을 나는 영어 공부 몰두로 달랬다. 그렇게 시간을 달렸다. 어느 틈에 전화영어도 영상영어도 훨씬 수월하게 되기 시작했다. 전화영어 선생님도 영상영어 선생님도 나는 처음부터 원어민 수업으로 시작했었다. 리스닝 수업과 스피킹 수업을 빨리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점차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었다.
어느 날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현정님, 아프리카 스피치 2025년 하반기 안내 드려요. 내가 배우는 영어로 사람을 살리고 용기와 꿈을 줄 수 있다면 정말 가치 있는 배움일 거예요. 영어로 어려운 지구 반대편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적 같은 프로젝트를 함께 해보시겠어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아프리카 친구들을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있어요. 여기 아이들은 고아들도 많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가정이 많아요. 2024년 9월 22일부터 수강생 분들 중에 신청하시는 분들과 약 20명 아이들을 화상으로 연결해서 꿈과 희망을 주고 장학금을 주는 스피치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1명의 친구(브이또멜로)를 현재 후원하며 장학금과 교복, 학용품을 필요할 때마다 지원하고 있습니다. 스피치 프로젝트 시작하시면 영어는 급상승하세요."
"선생님, 넘 훌륭한 일을 하고 계세요. 많이 놀랐습니다. 외모도 목소리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 왜? 예쁘신지 알게 됐어요. 글로벌하게 살고 싶다는 제 마음도 있고, 항상 마음속에서 불우한 청소년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어요. 이것도 인연의 시작일 수도 있고, 제 꿈의 한 부분인 시작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걱정은 내려놔야겠죠. 선생님이 잘 도와주실 거야. ^^."
"제가 껌처럼 붙어서 응원하고 도와드려야지요."
내게 또 다른 "생의 정기"를 불어넣어 주는 기회가 왔는 것 같다. 나는 오래전부터 불우한 환경에 있는 청소년을 돕고 싶은 마음, 그들의 멘토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정말 뜻밖의 기회가 왔다.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분명히, 어린아이처럼. 내가 소망했던 영어로 시작해서 꿈을 키워갈 수 있는, 글로벌하게 살고 싶다는 내 소원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심장이 뛰었다. 벅찼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그런 날이 한 번쯤은 올까?
나는 그와 편안하게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는 그때 무슨 말을 할까?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영어 공부 열심히 했네."
담백한 그의 목소리의 톤, 나직한 진실한 성실한 목소리의 톤으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톤의 목소리로, 다정한 눈빛으로,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만난 이후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는 마지막 인사에도 내가 꿈을 이루기를 소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