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이 되고 싶어
‘넌 생각이 없는 것 같아’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생각이 없다’는 의미는 ‘배려심이 없다거나 생각이 짧다’는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부터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TV를 끼고 살아서인지, 책을 클수록 멀리해서인지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점점 생각이 단순해지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않게 된 것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바뀐 걸까?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만 해도 난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사물 하나하나, 사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때가 있었다. 유치원 다닐 때는 인형극 하는 걸 좋아했는데, 콩쥐 인형을 들고 옆집 나라 왕자와 결혼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우주 탐험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다. 그때는 뭐든 상상할 수 있었고, 생각하고 나면 꼭 현실로도 이루어질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때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마법을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기도 했다. 수학 과외선생님이 나에게 '그 마법이 도대체 뭐냐'라고 물었을 때, 내가 '머리 감는 거, 문제 푸는 거, 밥 먹는 거 모두가 마법'이라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황당해하던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얼토당토않은 얘기인가 싶지만, 그때는 그 생각에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상상을 많이 하고 생각을 깊게 해서 행복하고 황홀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렸을 적의 난 상처를 쉽게 받고 잘 우는 아이였다. 언젠가는 엄마가 ‘넌 누구 닮아서 그러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방에 들어가서 그 말의 의미에 대해 파고들며 끝도 없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는 내가 자신을 닮아서 싫은 걸까? 아니면 내가 아빠를 닮아서 싫다는 건가? 엄마 맘에 들려면 누굴 닮아야 하는 걸까? 그래서 엄마는 날 정말 싫어하는 건가? 엄마 맘에 들려면 어떡해야 하지... 끝도 없이 가지를 무는 질문들을 스스로 하면서 슬픔에 잠겨 있었던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과 같이 생각을 많이 하지 않게 된 이유에는 ‘자기 방어기제’도 있었던 것 같다. 온갖 생각이 파고들면서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걸 막기 위해서였겠지. 커가면서 점점 ‘그럴 수 있지’ 치부하며 깊게 고민하는 것을 멈췄다. 이후로 나는 그 시절만큼의 감수성은 사라졌지만,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쉽게 상처받지 않고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무던한 성격과 사고를 가지고 난 후에도, 우울감이 찾아왔던 적이 있다. 코로나 이후 집에만 있게 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잘 몰랐는데, 혼자 있다 보니까 그동안 내가 스스로에 대해 고민을 하거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뭘 제일 좋아하고, 어떤 사람과 주로 어울리고, 뭘 잘하며 뭘 못하고, 싫어하는지 조차 명확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뭔가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동시에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그 시간은 꽤 길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끝에 오랫동안 멀리했던 책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책을 표면적으로 읽는 게 아니라 구절 하나하나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애썼고, 숨어있는 의도를 찾으려 했고, 깊이 있는 생각을 하려고 했다. 오랫동안 놓았던 책을 다시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읽으면서 생각을 하니까 무기력증은 점차 없어져갔다.
생각이 많아서 힘들었던 때도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깊이 있게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지식이나 정보에 대해 광범위하게 알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알아가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인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뭘 할 수 있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살아가면서 이러한 질문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