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소고 11
어떠한 식으로든 인터넷이라는 공유의 장에 남긴 글이나 말은 마음 깊은 곳에 흔적을 남긴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향한 다짐으로서, 다른 이들을 향한 소심한 조언으로서, 나를 향한 위로의 말로써 글들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뜻깊고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비록 이 말이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 속에서 태어난 것일지라도 거짓 안에 숨겨져 있는 1%의 진실을 위해 글을 써 내려갑니다. 하루의 삶을 오늘도 끝까지 살아낼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늘 감사합니다.
변덕스러운 마음이 그려내는 심령적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된다. 한쪽에는 지루함과 권태, 무료함이 만연해 있는 세속적 부가 넘쳐나는 삶이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가난과 빈곤의 고통이 매일 반복되는 삶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속고 속이는 양극단의 관계 속에는 욕망과의 쉼 없는 투쟁이 있으며, 한 시도 쉬지 않고 마음은 외부 대상을 쫓아가기에 바쁘다. 그 어디에서도 평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마음은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이 군림하는 황량한 사막 안에서 일체를 단순화해서 알고자 하는 환원주의에 물들어 있다.
대상을 이미 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마음은 급격하게 흥미를 잃는다. 그 대상이 가져다주는 신비로운 빛깔이 서서히 무채색의 계열로 변하기 시작하면, 마음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새로운 자극을 가져다주는 대상을 쫓아간다. 외부 대상에 온통 주의와 관심을 빼앗겨버린 마음은 자극 자체가 가져다주는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극의 양상과 형태가 매번 달라져야만 한다. 견고한 환원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과학이라는 이름의 신앙은 자본주의가 낳은 재화와 맞물려 수만 가지의 다양한 자극의 양상과 형태를 생성하는 데에 몰두한다. 그 많은 양의 재화가 생명의 근원에 계속해서 부채를 쌓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과학은 제 자신만을 내세우는 자부심에 빠져 생명의 근원에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계속해서 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원동력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자본주의 무덤은 분열되어 있는 인격을 한 곳으로 통합할 수 있는 진리의 권능을 애타게 찾아 헤매고 있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극진한 관심 쏠림 현상이 이를 고스란히 대변해 준다.
어디를 가더라도 시체뿐인 무덤 속에서 마음은 스스로가 비틀려있고 왜곡되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한 시선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외부의 세상을 투영하는 마음의 창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생명의 박동을 느낄 수 없는 곳에서 마음은 놀이조차도 단순하게 환원될 수 있는 것을 원한다. 마음이 대상을 판단하고자 하는 의도 이면에는 대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있다. 기껏해야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시체를 부여잡고서 마음은 일체를 단순하게 대상적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오류 속에 빠져있다. 생명은 스스로를 단순한 형태로 환원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한다. 생명에게 과학의 환원주의는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폭행과 다를 바가 없다. 생명 전체를 담을 수 있는 영적 잠재력을 일깨우지 않은 채, 생명을 정의하고 규정하려는 짓은 모두 헛되고 부질없다. 그리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혼은 결코 생명을 정의하고 규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도 자체가 바로 생명의 기적이 갖고 있는 신비로움과 본연의 아름다움을 빼앗는 어리석음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환원주의는 물질에게는 적용되지만, 생명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객관과 주관의 분리를 부정하는 곳에서 과학은 객관적 증거를 찾으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점점 양심의 소리가 사라지는 삶의 현장 속에서 우리들은 고개를 밑으로 숙인 채, 땅 밑을 보는 데에 길들여진다. 고개를 숙이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마음은 물질적 형상에 깊이 파묻혀버린다. 핸드폰은 화면에서 계속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과학과 물질의 종속관계를 영속화하는데 기여한다. 과학의 권위가 계속해서 생명을 물질적 형상으로 환원시키려는 실수를 일삼기 때문에 삶 곳곳에는 조용한 분노가 만연해 있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간의 타협점을 외부로부터 찾을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기로부터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은 전인격적 통합을 도모하는 자아실현의 과정이며, 통합적 권능의 힘을 지닌 영의 현현이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라. 그곳이 그대의 영이 거주하는 고향, 바로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