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와 선의 만남
도아는 무기력하게 눈을 떴다. 전날 비가 세차게 내린 탓인지 삐걱거리는 나무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젖은 거리의 냄새에 마음이 축축해졌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여행을 떠날 호주의 적당한 게스트하우스를 찾느라 늦게 잠이 들었던 터라 화장을 하고도 그녀의 퀭한 눈은 숨길 수 없었다. 그녀의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20분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직장까지 30분,1시간 가까이 걸리는 다소 긴 출근길에 마음이 컥!막혀왔다.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뛰어왔다. “다행이다. 신호를 안 놓쳤네.” 아이는 안도하며 가방끈을 다잡았다. “참, 다행일 것도 많다.” 도아는 무심히 아이의 혼잣말에 답하며 신호가 바뀌자 황급히 길을 건넜다. 아이도 제 키만한 우산을 들고 도아를 따라 걸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사람들이 한가득 들어서있었다. 비오는 날 사람 가득한 버스를 타고 가는 것만큼 고역이 또 있을까? 도아는 짜증이 일었다. 오늘은 정류장마다 서는 일반 버스말고 직행버스를 타고 갈까 생각하다 3개월 후 있을 호주여행을 떠올리곤 마음을 고쳐먹었다.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앞문으로 몰렸다. 아까 횡단보도에서 보았던 꼬마도 같은 버스를 타려는 모양인지 엉거주춤 사람들 곁에 섰다. 신호를 넣지않고 차선변경을 하는 무례한 차들처럼 사람들이 자꾸만 끼어들었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밀려 이대로라면 버스를 놓칠 것 같아 도아도 힘싸움에 합세했다. “잠시만요. 좀 지나갈게요.”도아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아이는 흠짓 놀라며 도아를 따라 버스를 탔다. 버스는 곧 출발했고, 도아는 자신의 설 자리를 확보하는 순간 아이의 손을 놓았다. “저기, 고맙습니다.” 아이가 도아를 향해 말을 걸었다. “어? 어! 뭐.” 사실 애초에 도아는 아이를 도울 마음조차 품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지나갈 길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를 이용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