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를 읽고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는 21세기의 뜨거운 사회 문제들을 외로움과 연결지어 재해석한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민주주의 퇴행, 일자리 자동화, 감시 기술 등의 문제들은 이전부터 논해져왔던 어찌보면 진부한 화두지만, 이것을 현대인의 고립감과 연결지어 해석했다는 점에서 허츠의 주장은 특별하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외로움의 위험성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허츠는 외로움의 악영향으로 사람들의 건강 악화, 민주주의 퇴행, 국가 및 기업의 경제적 손실을 꼽는다. 다음으로 21세기 사회에 외로움이 팽배한 이유를 설명한다. 허츠는 현대 도시의 적대적 건축물, 정보 기술과 감시 기술의 발전, 생산성과 효율성에만 천착하는 기업, 일자리 자동화 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 같은 고립의 시대를 연대의 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서 필요한 개인, 기업, 정부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민주주의 퇴행의 원인으로 고립감을 지목한 부분이었다. 허츠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극우 포퓰리스트인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다른 후보자의 지지자들보다 더 외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 자료이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에게 투표한 유권자에 비해 공동체, 친구를 언급하지 않고 ‘그냥 스스로 해결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는 당시 경쟁 후보 테드 크루즈의 지지자에 비해 운동팀이나 독서회, 학부모회 같은 공동체 활동에 좀처럼 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2배나 많았다.
허츠는 통계가 보여주는 이같은 상관관계의 원인을 추론하기 위해서 두 가지 자료를 추가로 가져온다. 하나는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통찰이다. 아렌트는 나치 치하의 독일을 경험하면서 나치즘 지지자들이 정상적인 사회 관계를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이들이 타자에 대한 혐오를 “자기규정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하나는 2008년 금융 위기가 비숙련직 노동자들에게 미친 영향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2008년 금융 위기는 비숙련직 노동자를 임금과 지위가 낮은 서비스직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허츠는 그들이 사회·경제적 지위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각종 사회 관계와 일터 내 소속감까지도 잃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종합적으로, 허츠는 경기 침체로 인해 비숙련직 노동자들의 외로움과 동료 시민에 대한 신뢰가 감소했고, 이에 따라 우파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배타적·분열적 공동체에 매력을 느꼈다고 설명한다.
다른 주장들보다 이 주장이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다양한 자료들을 아우르는 허츠의 논리적 상상력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내가 이전부터 민주주의 퇴행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 허츠의 논의가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기존의 가설들이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영국의 정치학자 Roberto Foa는 밀레니얼 세대가 2차 대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에 비해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1]. 따라서 그는 세대 교체가 민주주의 퇴행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Foa는 왜 젊은 세대로 갈수록 권위주의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지에 대한 원인은 밝히지 못했었다. 허츠의 관점에서 이 논의를 보완한다면, 그 원인은 밀레니얼 세대 이후의 사람들의 고립감이 이전 세대보다 높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도 있다. 허츠는 21세기 고립 문제의 원인으로 현대 도시의 적대적 건축물, 정보 기술의 발전, 생산성과 효율성에만 천착하는 기업, 다양한 감시 기술, 일자리 자동화 등 다양한 원인을 지목하지만, 이 다양한 원인들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신자유주의’와 ‘경쟁 사회’로 귀결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고립의 시대>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새삼 조명한 것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허츠는 책 전반에서 ‘적극적인 국가’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게 된다. 물론 기업과 개인의 역할도 강조하지만, 허츠가 제시한 기업의 역할의 대부분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전제해야만 가능한 것들로 보인다. 예를 들어, 업무를 자동화할 시 노동자의 재훈련 비용을 감당하고, 구조조정 의사 결정에 노동자 대표를 포함하는 것을 기업이 자발적으로 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고립의 시대>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자유주의의 또다른 어두운 면을 발견한 참신한 책이겠지만, 정부 개입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정부 개입을 주장하면서 정부 실패의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는 미완의 책일 것이다.
지금까지, <고립의 시대>에서 흥미로웠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정리해보았다. 이 책은 외로움이라는 친숙한 주제를 명료한 문장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누가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먼저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논리적인 지적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참고 문헌을 자랑하며, 이 많은 자료들이 신자유주의 비판이라는 테마 아래 논리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연대가 점차 감소하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허츠는 연대를 위한 개인의 역할을 여러 번 강조하는데, 이것은 독자로 하여금 공동체에 필요한 자질을 스스로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나의 경우 이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하는 모임에 참여하거나 다정과 친절을 의식적으로 환기하는 변화가 생겼다. 이처럼 <고립의 시대>는 더 따뜻하고 연결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영감을 제공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스스로의 역할과 책임을 재고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면 좋겠다.
[1] Foa, R. S., & Mounk, Y. (2016). The democratic disconnect. Journal of Democracy, 27(3), 5–17. https://doi.org/10.1353/jod.2016.0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