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히신드롬
1화: 아내가 10명이 되었다.
“나 왔어!”
밝게 웃으면서 현관에 드러서자,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게 안겼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 왼쪽 다리를 끌어안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 오른쪽 다리를 끌어안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 왼쪽 팔뚝을 끌어안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 오른쪽 팔뚝을 끌어안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 오른쪽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 왼쪽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 오른쪽 팔을 끌어안았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뛰어 나왔다.
“왔어?”
그녀가 내 왼쪽 팔을 끌어안았다.
2화: 마법같은 순간
“어떻게 된거야?”
나는 아내들을 앉혀놓고 말했다.
“나도 알 수 없어.”
가장 앞에 있던 아내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열 명의 아내들은 궁리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뭘 하고 있었지?”
내가 다시 물었다.
“화장하고 있었지.”
다른 아내가 말했다.
”저쪽 방에서 말이야.“
다른 아내는 그녀들이 나왔던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어.“
다른 아내가 말했다.
”아무 일도 없이 사람이 10명이 될 수는 없어,“
내가 덧붙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
아내들이 단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점심은 어떻게 먹었어?”
내가 물었다.
“바나나 먹었어.”
한 아내가 말했다.
“10개?”
내가 물었다.
“한 개.“
다른 아내가 말했다.
“그리고 커피도 마셨어.”
다른 아내가 덧붙였다.
“어떤 커피 마셨어?“
내가 물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다른 아내가 대답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텀블러를 바라보았다.
“저게 마법의 커피인건 아닐까?”
내가 물었다.
”흠.. 그럴까?“
한 아내가 말했다.
아내들은 이제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선 보관해두자. 성분분석을 해야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말했다.
한 아내가 일어나, 텀블러를 집어들곤 옆 방에 다녀왔다.
이제 나와 아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집 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녀들이 나온 방부터 시작했다.
“어, 이상한 점이 있어.”
한 아내가 방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어떤거야?”
내가 말했다.
“어제 준 꽃 한 송이 있잖아, 화병에 꽂아두었는데, 지금은 줄기밖에 없어.”
그녀가 말했다.
“꽃잎이 9개였어, 내가 세보았거든.”
다른 아내가 말했다.
“화장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꽃잎이 있었어.“
다른 아내가 말했다.
나는 똑같은 빨간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는 10명의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3화: 그녀들 사이의 원칙
나는 그렇게 10명의 아내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들은 역할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이불을 개고,
환기를 시키고,
방을 쓸고,
정리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장을 보고,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각자가 자연스럽게 맡았다.
누구의 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각자가 그때마다 눈에 띄는 일을 맡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아내들끼리 순번을 정해 나를 깨워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1명이 자기엔 기존에 쓰던 침실이 좁아서,
조금 더 큰 방을 침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내 왼쪽, 오른쪽 자리도 정해진 순번이 있는 듯 했다.
왼쪽에 누워있던 아내가 별안간 화들짝 놀라더니,
끝에서 두번째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곤
막연히 그녀들 사이에 원칙이 있음을 추측하고 넘겼다.
4화: 숨바꼭질
“나 왔어!”
밝게 웃으면서 현관에 드러서자, 중문에서 망을 보고 있는 한 아내가 가장 먼저 보였다.
“왔어?”
다른 아내가 거실에서 달려와 내게 안겼다.
“보고싶었어.”
다른 아내가 부엌에서 달려와 내 왼쪽 옆구리를 끌어안았다.
“뭐 사온거야?”
방에서 나온 다른 아내가 내 오른쪽 옆구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한우야!”
식탁이 있는 방에서 나온 다른 아내가 나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나는 각 방을 돌아다니며 6명의 아내를 순서대로 찾아냈다.
깜깜한 침실 안에,
옷방 안에,
싱크대 옆에,
공기청정기 뒤에,
세탁실 안에,
피아노 옆에 숨어있던 그녀들은 나를 보고 까르르 웃어주었다.
나는 아내들에게 사온 것을 내밀었다.
“또 꽃을 사왔네.”
한 아내가 나를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5화: 나를 찾아줘
주말이 되면 그녀들과 대규모 데이트를 즐겼다.
우리들은 불꽃 축제를 가고,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고,
수영장을 갔다.
그리고 10명의 아내들과 사진관에 가서 우리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 사진은 방 한 켠과, 휴대폰 안에 들어있었다.
문득 회사에서 그녀들과 찍은 사진을 보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10명이 된게 나였다면 어땠을까?’
집에 있을 그녀들을 떠올렸다.
퇴근하고 집에 올 나를 생각하며, 화장을 하고 있을 그녀들을.
‘그녀가 아닌 내가, 그리고 나 이외에 9명이 외출한 그녀를 함께 기다리고 있다면?’
이전에는 나만이 독차지 하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나와 같은 여러 명이 그녀의 곁에 있다는 상상에서 떠오르는 건,
질투라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진짜인 나는 내심 알아주기를 바랬을 것 같았다,
내가 원래 그녀의 곁에 있었던 단 한 명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결심했다.
‘그래, 지금도 좋지만 원래 아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내야겠어.’
그 다음에 드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찾아야하지?’
6화: 나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아?
집에 오는 내내 내가 해야 하는 ‘질문’을 생각했다.
귀가하자마자, 나는 방에 10명의 아내들을 모아두었다.
그리고 한 명씩 거실로 나와서
내 질문에 답변해주고,
다른 방에서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금방 끝날거야.”
내가 덧붙였다.
나는 그녀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아?”
아내들은 말했다.
“잘생겨서 좋지.”
“키가 커서 좋지.”
“재미있어서 좋지.”
“똑똑해서 좋지.”
“몸이 탄탄해서 좋지.”
“재주가 많아서 좋지.”
“남자다워서 좋아.”
“섬세해서 좋아.”
“능력이 많아서 좋아.”
단 한 명의 아내만이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가끔씩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작은 신혼방이 떠올릴 때가 있어,
침대가 작아서 우리가 꼭 붙어서 자야 했던 밤들을 말이야.
그리고 지금 벽에는 커다란 설산 그림이 걸려있지만,
그 때 우리 신혼집 벽에는 같이 그린 작은 수채화가 걸려있었지.
비왔을 때도 생각나,
물이 많이 불어서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지.
생일 날에 작은 냄비에 만들어 먹었던 미역국,
무화과 조각 케이크를 사서 나누어먹었던 것도,
그 때 나의 기억에 우리가 함께 있었던게 참 좋아.”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의 심장이 앞에 서 있는 그녀가 나의 원래 아내라는 것을 가리키는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러고나서 다른 아내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를 꼭 안아주곤,
방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