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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시]설령

미히스토리

by 미히

1. 가정


산장에서 만난 주름이 깊은 할머니가 말했다.

그녀는 높은 산바람에 마른 얼굴을 하고 있었고,

동물의 털과 깃털로 장식된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채,

의자에 깊이 앉아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너는 여기서 내려갈 수도 있고, 아니면 정상까지 오를 수도 있지.”

나는 그 속삭임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차 잘 마셨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는 살을 에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날은 맑았다.

나는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에만 집중하며, 고요하게 발걸음을 내디었다.


2. 가정의 무게


나는 산을 사랑했다.

결코 가볍게 오르는 길만은 아니었다.

가족을 남기고 떠나는 길이었고,

내가 이룬 기록들을 뒤로 한 채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산의 등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언젠간 올라야 할 길임을 스스로 잘 알았기에.

나는 고개 너머의 설령을 바라보았다.


3. 조난


조난을 당했다.

여전히 저 설령은 내 눈 앞에 그대로였다.

‘다시 한 번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곳에 오지 않을 수 있을까?’

눈은 깎아지른듯 높은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럴 일은 없었다. 나는 오를 것이었다.

산이 거기에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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