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부부가 정상적인 가정으로 평생 해로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다. 물론 그 어려움들을 잘 헤쳐 나가면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는 부부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내가 서울고등법원 가사부에서 담당한 사건의 재혼부부는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멋지게 살아오고 우아하게 만나 20여 년을 살아오다가 자녀와 재산문제로 갈등이 생겨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다.
원고(70세 중반)는 부인과 사별한 후 최고급 호텔 임원으로 지내면서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었고, 피고(60세 중반)는 전 남편과 이혼하고 유명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둘은 1995년 최고 사립 명문 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처음 만나 알고 지냈다. 원고는 최고급 호텔 임원으로 상당기간 근무하는 등으로 주식, 빌딩 등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원고의 순재산은 약 170억 원에 달함), 피고도 유명식당과 웨딩사업을 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모으고 있었으며(피고의 순재산은 약 70억 원에 달함), 큰 문제없이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9년경부터 피고의 아들들에 대한 재산 지원 과정에서 원고와 피고 간에 갈등이 있었고, 피고는 원고가 그동안 재산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이 피고 덕인데 공동기여 재산내역을 알려주지도 않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고 노후보장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원고의 금고를 열어 관련 재산자료들을 가져갔다. 그런데, 원고의 금고에는 원고가 작성한 유언장이 있었는데, 해당 유언장에는 모든 재산을 자기 자녀와 형제들에게 돌리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큰 배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2019. 7. 피고가 내용증명으로 이혼소장을 첨부하면서 이혼을 준비하였고, 피고가 보낸 소장내용을 보고 원고는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던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에 2020. 8.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고, 2021. 10. 피고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 소송은, 파탄이 되었다는 점은 당사자가 일치하였고 다만 파탄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와 분할 대상 재산과 주로 분할비율에 대하여 치열한 다툼이 전개되었다. 1심은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가 파탄된 것은 재혼 가정에서 있을 수 있는 서로의 자녀들에 대한 금전 지원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직면하여, 피고가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은 채 섣불리 원고에게 이혼과 재산분할을 위한 협의를 하되 그렇지 않으면 소를 제기할 것임을 통보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 원고의 금고와 컴퓨터까지 무단으로 집 밖으로 반출하여 혼인관계의 기초가 되는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고 보이므로,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피고에게 있다’고 하면서 피고에게 위자료 1,000만 원의 지급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재산분할은 분할비율을 원고 70% : 피고 30%로 정하면서 일부 지분으로 되어 있는 빌딩, 아파트의 소유권을 정리하고 나머지 10억 원 정도를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하라고 하였다. 사실상 피고의 완패에 가까운 판결이었다.
피고는 파탄책임이 원고에게 있다는 점(폭행, 갈등, 자녀차별, 피고의 내용증명이 파탄원인이 아니고 그 이전에 이미 신뢰상실, 피고의 금고반출은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을 내세우고, 22년 가까운 혼인생활, 피고가 9년 이상 사업소득이 있는데 전업주부보다도 낮은 비율이고 빌딩이나 아파트 구입대금을 자신이 대부분 조달했다고 주장하면서 항소하였고, 원고는 이에 대하여 최고급 호텔에 근무하면서 받은 급여, 퇴직금, 주식 등으로 빌딩이나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그 이전부터 소유하던 빌딩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부대항소를 제기하였다.
1심에서 제출된 여러 자료들을 보면, 원고는 비교적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결혼 전 재산상태와 재산의 흐름을 밝히면서 자신의 기여도가 많다는 것을 주장하는 반면, 피고는 여러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충분하지는 않았다. 나는 2회에 걸쳐 준비절차를 진행하면서 피고로 하여금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과 여러 증거신청을 통하여 추가 입증하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여러 방안들을 제시하는 등 화해 조정을 위하여도 노력하였는데, 금액은 컸으나 당사자는 화해로 종결되었으면 하는 의사도 보였다.
나는 1심보다는 피고가 조금 더 기여에 대한 평가를 해주는 것이 좋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1심에서 인용한 10억 원 부분을 15억 원에서 20억 원 정도 선에서 합의하면 어떤지 의사를 타진하였는데, 당사자 모두 적정한 방안으로 화해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나는 준비절차를 종결하고 다음 변론기일을 정하면서 그 이전에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줄 테니 비공개로 각자의 조정안을 제출하라고 하고 그것을 보고 화해권고결정을 한다고 하였다.
원고는 그다음 날 비공개로 1심 분할방법을 따르면서 18억 원을 제시하고 그와 같은 내용으로 화해권고결정을 내려달라고 하였고, 피고는 공개된 서면으로서 여러 방안들을 제시하였지만 1심과 같은 방법을 분할방법으로 하는 경우 29억 원을 지급받으면 화해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하였다. 나는 고심 끝에 1심의 분할 방법을 따르면서 20억 원을 지급하는 안으로 화해권고결정을 하였다.
화해권고결정이 송달되고 2주가 지나 확정된 다음 날, 피고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재판부께 드리는 말씀’을 서면으로 보냈다.
‘...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본질과 진실, 그동안 담아두었던 저의 마음속 이야기를 속 시원히 말씀드리고 이제는 이 사건을 떠나보내고 싶어 이렇게 말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하고 원통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습니다... 20여 년의 결혼 생활동안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뒷바라지한 결과가 오늘의 이혼소송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재판은 끝났지만 이렇게라도 이 사건의 본질과 진실 그리고 제 마음을 재판장님께 전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이 사건을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이 부득이 저의 한탄을 글로써 전달드리게 되었습니다.’
재판내용이 억울하지만 자료의 한계를 절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나, 절대 진실은 그게 아니라는 호소이며 절규였다.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되고 난 후 당사자로부터 고맙다는 내용의 서면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현 상황이 불만이고 억울하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내용이어서 피고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내내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남기면서 불편함을 달래보고 비록 다시 헤어졌지만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두 분 모두 잘 살아 헤쳐나가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