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에게 비결을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그냥 했어요."
처음엔 겸손한 척인가 싶었다.
진짜 비법은 따로 있는데 얼버무리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에게서 같은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게 진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키는 수십 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Just do it
그런데 왜, 이렇게 단순한 말이 이렇게 어려운 걸까.
꾸준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다 안다. 그런데도 안 된다.
왜일까. 의지가 부족해서? 게을러서?
그 말이 너무 쉬운 답인 것 같아 한참을 생각해 봤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작하는 순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긴다.
그 압박을 견디다 어느 날 멈추면 비로소 진짜 실패가 된다.
못 버텼다는 증거가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게을러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서 시작을 미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우 시작했다 해도 또 다른 벽이 있다.
처음 며칠의 설렘이 사라지고 나면,
변화가 보이지 않는 흐릿한 시간이 온다.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를 그 중간 어딘가.
우리가 포기하는 건 대부분 그 지점이다.
꾸준함이 어려운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시간을 견디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꾸준함에 대해 가장 솔직한 말을 들은 건,
대단한 자기 계발서에서가 아니었다.
배우 윤여정이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던 시기,
누군가 그녀의 연기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냐고.
그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난 먹고살려고 연기를 했어요."
이혼 후 아이들을 홀로 키우던 시절.
그 시간을 버텨온 이유를 돌려 말하지 않았다.
고상하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냥, 먹고살아야 했다고.
그 말이 한참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꾸준함의 이유가
뭔가 대단하고 고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 계발을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런 이유여야만 꾸준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하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해낼 때,
그 이유가 꼭 고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절박함이고,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공허감을 채우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장치이고,
그냥,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인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이유의 품격이 아니라,
나에게 그것이 얼마나 절실한가다.
25년이 넘도록 조직 안에서만 살았다.
큰 결심 끝에 독립하고 나서,
갑자기 아무도 시키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 낯선 감각 속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책을 냈고, 대학과 여러 기업에서 강의를 했다.
새 강의를 맡게 되면
커리큘럼을 처음부터 고민하고 짜야했다.
막상 맡고 나면 걱정이 밀려오지만,
언제나 걱정보다 두근거림이 앞섰다.
가끔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들었다.
"참 부지런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어색했다.
부지런하거나 대단해서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 일들이 나를 채워주었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힘들긴 해도 그 과정이 싫지 않았다.
어떤 날은 지하 30층 같은 기분인 날도 있었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윤여정이 먹고살려고 연기를 했다고 말한 것처럼,
나에게 그 일들은
스스로를 버티게 하는 장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꾸준함이 가능했던 것 같다.
의무로 하는 꾸준함과 선택으로 하는 꾸준함은,
같은 시간을 써도 결이 다르다.
그러고 보니, 꾸준함 자체도
오랫동안 잘못 이해하고 살았던 것 같다.
매일 같은 높이까지 물을 채우는 것이 꾸준함이라고 생각했다.
반만 채우면 오늘은 망쳤다는 생각에 아예 내려놓곤 했다.
그런데 어쩌면 꾸준함이란,
물 잔의 높이가 달라도 되는 것인지 모른다.
어떤 날은 넘칠 듯이, 어떤 날은 겨우 바닥을 적실 정도로.
그래도 잔을 완전히 비우지는 않았다는 것.
책 한 챕터를 다 읽지 못해도,
한 페이지를 읽은 날과 한 줄도 펼치지 않은 날은 다르다.
완성된 글을 쓰지 못해도,
생각나는 한 문장을 메모한 날과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날은 다르다.
그 차이가 작아 보여도, 쌓이면 달라진다.
오늘 잘했냐고 묻지 않고,
오늘 했냐고 묻는다.
조금이라도 했으면, 오늘은 한 것이다.
"그냥 했다"는 말 안에는
아마 이런 것들이 다 담겨 있을 것이다.
재미없었던 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날도,
지하 30층 같았던 날도.
이유가 고상하지 않아도 됐던 날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절실해서.
내가 필요해서, 내가 선택해서.
그런 날들이 쌓여서,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꽤 먼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겠지.
그런 말이 있다.
먹고살려고 했다는 말도,
그냥 그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는 말도,
결국은 같은 말이다.
"그냥 했어요."
이유가 거창하지 않아도 됐고,
잘 된 날만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절실했던 날들이 쌓인 것뿐이다.
당신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냥 했던 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