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라도-부르고스 (50km)
산티아고 순례길 게시글 중 마지막 글이 될 글이다.
원래는 걸으면서 일기처럼 쓰려고 했는데..
하루 이틀 밀리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이 늘어졌다.
그리고 아직 순례길 유튜브 편집도 덜 했다..^^
뭐 여튼, 오늘은 부르고스까지 가는 여정이다. 50km 걸어야 함
의종이네랑 같이 50km 가기로 했어서, 새벽 3시에 같이 출발하자고 이야기를 끝내고 잤다.
근데 어제 날씨가 추웠는데 수영을 했던 탓인지,
새벽에 일어나니 코가 막히고 목감기도 든 게 느껴졌고, 머리가 무거웠다.
여튼 컨디션이 안 좋아서 같이 못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푹 잤다.
그리고 혼자 터벅터벅 출발했다.
가는 길에는 정섭 씨랑 같이 만나서 갔다.
알고 보니 옆 동네 사는 사람이었다.
근데 진짜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재밌는 분이셨음
컨디션이 올라온 나는 다시 열심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늦게 출발하기도 했는데다가
출발하고 1시간쯤 지나서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서도 1시간 반이나 앉아서 정섭 씨랑 수다 떨다가 나왔기 때문에,,
오늘 당연히 부르고스는 못 갈 줄 알았다.
그래서 그냥 가는 데까지만 가자는 마인드로 계속 걸었다.
피레네 산맥을 지나면서부터 동물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산티아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안 알아보고 온 나는 모든 길이 피레네 산맥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나머지 길들은 대자연!!! 이런 느낌보다는 그냥 길이다.
생각에 잠기기 딱 좋은 그런 길.
여튼 오랜만에 동물 봐서 좋았다.
배고파서 점심을 먹으러 바에 들어갔다.
샌드위치 시켰는데 간에 기별도 안 가서 머핀도 시켜 먹고 갖고 있는 빵까지 다 해치웠다.
아 참고로 난 순례길에서 3kg 쪘다.
그렇게 걸었어도 그 이상으로 먹었다.
_
점심 먹으면서 생각했다.
그냥 몇키로만 더 가고 끝낼지,
부르고스를 갈지
근데 사실 부르고스 가자고 의종이 꼬신 건 나니까...
늦더라도 가야겠다 싶었다.
걷다 보면 산티아고까지 얼마 남았는지가 나온다.
점점 줄어드는 숫자를 보는 게, 그리 반갑진 않다.
뿌듯하긴 한데, 또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진 않았다.
혼자 긴 길을 걷다 보니까 너무 심심해서 저런 사진도 찍었다.
이어폰 없었으면 아마 50km 못 걸었을 것 같다.
K-pop 광인인 나로서는 음악이 없으면 인생이 다운그레이드된다.
넓게 펼쳐진 해바라기밭
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시들어있어서 삭막하다고 느껴졌다.
근데 가끔 가다 보면 해바라기에 얼굴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은 귀엽게 스마일로 그린다.
근데 저건 너무 섬뜩하잖아... 잡아 먹힐 것 같아
어떤 언덕을 오르자 갑자기 우중충해졌다.
일반적인 코스로 가면 이 길은 아침에 걷게 되는 길이라
내가 간 오후 즈음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계속 이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걷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여기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니!! 정말 반가웠다.
그는 대만인이었다. 그 또한 부르고스까지 간다고 했다.
나 걸음 빠른데... 나랑 비슷한 친구였다.
진짜 키도 190은 되고 다리도 짱 길었다.
이 친구 만나고 나도 다시 신나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엄청 빨리 걸어갔다.
어느 정도로 빨랐냐면,,
from 벨로라도 숙소 to 부르고스 숙소까지 50km가 넘는데
쉬는 시간 빼면 8시간도 채 안 걸려서 도착했다.
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부르고스는 큰 도시다.
그래서 마을 초입에서부터 중심지에 있는 알베르게까지 4km가 떨어져 있다....
뭐 어찌어찌해서 열심히 걸어가다 보니 도착했고,
날 기다려주신 의종이, 아버님과 함께 체크인했다.
씻고 빨래하고 저녁 먹으러 나왔는데,
발 뒤꿈치가 아파서 보니까
작고 귀여운 물집이 생겼다.
산티아고 오기 전에 국토종주 하면서 발 뒤꿈치가 단련됐다.
그때는 ㄹㅇ 물집 파티였어서 뒤꿈치가 다 까졌었다.
천천히 걸으면 안 생기는데,
마지막에 빨리 걷느라 생긴 것 같다.
저녁은 한국인 분들과 다 같이 일식당에 왔다.
진짜 배고팠다. 그리고 진짜 맛있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숙소 뷰가 부르고스 대성당이었는데... 진짜 멋지다.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