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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Aug 15. 2024

 '자기야'에서 '이 인간아'가 되기까지

머지않은 영감!

우리 부부는 '여보'라는 호칭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19,20살에 만나 '야', '너' 하던 습관 때문에 주변에 신경 써야 할 사람들이 없다면 여전히 그렇다.

7년을 만나고, 24년을 같이 살고 있지만, 남편은 내게, 나는 남편에게

여전히 19살 20살의 말투, 행동을 보인다. 우리의 호칭은 아직 '자기야'이다.

'누구' 아빠, '누구' 엄마도 아닌, 가끔은 서로 이름을 부르는 여전히 그때의 우리다.



언제부터일까?

'자기야' 보다 '이 인간'이라 부르는 횟수가 많아진 건.




'인간'은 취미부자다. 여자들이 이혼사유로 뽑고 있는 모든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바다낚시, 골프, 차박 남편말을 빌리자면

'남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엔진소리'를 느끼게 한다는 오토바이

도대체 내가 볼 땐 그 타는 모습은 마치 두 손을 높이 들고 벌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스쾃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즐거워 보이기보다 힘들어 보이기만 하다.

도로에서 타는 오토바이는 위험하다는 나와 다투기 시작했고, 안전한 것을 찾겠다며 시작한 취미가 산악 오토바이다. 오토바이를 싣고 다니려고 차까지 바꿔 버리는 실행력이 놀랍다.


"내가 미친다. 뭐가 다르냐고, 이 인간아. 다치거나 죽어도 애들 20살 넘고, 빚 다 갚고 죽어야지!"

하고 소리치는 내 목소리는 '인간' 귀에 들리지 않나 보다.

"안전해, 안전해 걱정하지 마 내가 다치지 않게 잘 타 볼게"


365일 중 52개의 토요일은 '인간'에겐 너무 부족하다.


어느 여름,

친구들과 2박 3일 여행을 다녀와서는

"자기야, 나 스킨스쿠버에 소질 있나 봐. 그거 배우러 필리핀 다녀와야겠어"

어이없어 아무 말도 안 하고 노려보는 나는 안중에도 없고,

"재밌어, 아주 재밌어"

하며 말을 잇는다.


나는 취미생활이란 걸 모른다.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경제적인 사정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인간 또한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을 듯하다.

남편은 남편 수입의 일부를 생활비 통장으로 넣어준다. 나 또한 그렇다.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관리한다. 생활비에 흠집을 내지 않으면서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알바를 하는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힘들고 즐거운 취미생활을 하고 들어와 코를 골며 자는 '인간'을 보면

발로 확 밟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자기야, 적당히 좀 하자"

달래듯이 건넨 나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담뱃값 모아도 람보르기니 못 산다.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자. 더 나이 먹으면 하고 싶어도 못 해"

이성적으로는 남편말이 맞다고 인정하고 있지만, 내 감성은 다르게 소리친다.

"너, 나보다 먼저 잠들지 마. 내가 밟아 버릴 수도 있어"

앙칼진 내 협박은 허공에 맴돌 뿐이다.

오히려 즐길 줄 모르는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진심으로.


남편의 이름엔 '즐거운'이란 뜻의 한자어가 있다.

정말 이름대로 산다.

매일매일 너무 행복하다는 데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 '인간아' 맘껏 행복해라.


체력이 있어야 즐길 수 있다며 새벽 운동을 나가는 남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속으로 외친다.

'조만간 '영감'이라고 불리는 날이 되면 날 찾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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