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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Sep 02. 2024

ep7. 와! 여름이다.

빨간 고무통 수영장이 최고다!

햇살이 창문너머로 짧지만 뜨겁게 들어오는 계절이 오면 아이들의 마음이 방망이질을 한다.

동네 아이들은 무척이나 원하던 계절, 반대로 어른들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계절 7월이다.

 



스케치북에 양은 냄비 뚜껑으로 커다란 원을 그려오는 것이 그날의 숙제이다. 숙제를 완성한 지영이는 그 스케치북을 한 손에 들고 덜렁덜렁 흔들며 2층 선미 언니의 오른팔에 목이 감긴 채, 끌려가다시피 등굣길에 오른다.


"언니, 힘들어. 팔 좀 내려"


울먹이며 말을 하면 언니는


"나도 힘드니까 그러지"


하며, 배식 웃는다. 뒤따라 우르르 몰려오는 동네 아이들은 안쓰러워하는 건지, 쌤통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를 웃음을 히죽거린다. 얄밉다. 선미언니는 지영이보다 1살 어린 동생 선화가 있는데도, 등굣길이면 꼭 지영이를 찾아 저 보다 키 작은 지영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누가 하나 늦게 일어난 날을 제외하면 지영이는 선미언니가 졸업할 때까지 언니에게 어깨를 내어 주었다.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과 책상 사이에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걸어놓으면 지나다닐 자리도 없다. 그 좁은 사이로도 아이들은 뛰어다니기도 하고, 책상 위를 겅중거리며 날아다니기도 한다.

교탁옆 자리엔 서너 명이 모여 바닥에 철퍼덕 앉아 다섯 알짜리 공기놀이를 하고, 사내아이 두 명은 빗자루를 들고 복도에서 교실을 향해 뛰어온다. 오늘의 당번은 창을 활짝 열어  희뿌연 먼지를 날리며 칠판지우개를 연신 털어내지만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아이들이 앉아 있는 책상 가운데는 여지없이 얇은 줄이 하나씩 그어져 있는데, 짝과의 영역 경계선인 것이다.

팔꿈치라도 넘어오면 별거 아닌 일에 싸움이 난다.


"넘어오는 거 다 내 "


하며 씩씩거리기 일쑤다.

이 작은 교실이 우리 건물 시장통보다 더 시끄럽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일제히 조용해진다. 항상 길고 두꺼운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시는  담임선생님은 풍채도 크시고, 목소리도 무겁다. 선생님들은 웃질 않으실까?


"지영아."

 

하고 부르시면 순간 얼음이 된다.


"뛰지 마! 이 자식들. 먼지 나고 냄새나고 좀 씻고 다녀라."


미닫이 문을 쓱 밀어 열고 들어오시며 하는 첫 말씀이다.


"영광이, 기철이, 승민이 선생님 따라와"

"나머진 자기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어. 떠들고 뛰면 혼나!"


엄포를 놓으시곤 앞장서 걸으신다. 선생님의 부름에 키 큰 세 남자아이들이 지레 겁을 먹은 얼굴을 하고 선생님 뒤를 졸졸 따른다. 남아 있는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둘레둘레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잠시 후, 선생님과 아이들은 두 팔로  여러 권의 책을 버겁게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여름방학 탐구생활


여름방학이다.

그즈음 배우는 국어책 마지막 단원쯤엔 선풍기를 틀고, 한쪽에 푸짐하게 수박을 잘라놓은 접시가 있는 넓은 방에서  배를 내놓고 자는 남자아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영이는 그 그림을 보며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낀다. 저렇게 꼭 한번 똑같이 해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평범한 그림 속에서  왜 그런 편안한 느낌을 받았을까? 이유를 유추할 순 없지만 한참을 바라본다. 기억에 오래 남도록. 하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배 내놓고 선풍기 틀고 자면 안 돼, 배탈 나. 찬 거 많이 먹지 말고, 물놀이할 때 조심하고, 친척집 가서 장난 많이 치지 말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지?"


하시며, 탐구생활 책을 한 권씩 나눠 주신다. 탐구생활의 책장을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앞으로 4주가량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한껏 게으름을 부릴 수 있다. 탐구생활 책은 언제나 앞부분에만 열정이 넘친다. 가난한 집 아이이건, 부잣집 아이이건 여름방학은 모두에게 설렘이다.


방학생활시간표


다음 시간은 숙제로 해온 스케치북을 꺼내어 방학생활시간표 작성을 한다.

기상, 운동, 독서, 방학숙제, 식사시간, 취침시간등 지키지도 않을 하루 일과를 빼곡히 채워 알록달록한 색을 칠해  놓으면 마치 모두 성공한 것 마냥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단 하루도 지키지 않을 생활시간표이지만, 계획이라도 잡았다는 성취감일까? 이 계획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일까?


방학이 시작된다 해도 지영이에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빠가 휴가란 게 없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에 하루는 길어도 방학은 짧게만 느껴진다.

늘 같은 일상. 건물 안에서 놀다 아침부터 시끄러워 예민해진 뚱뚱이 할아버지에게 두배로 혼나고 도망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의 반복이다. 그나마  지영이가  여름방학에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은 한 열흘정도 이모네 다녀오는 것이다.



이모네는 부자다.

논밭이 많은 시골에 사는 이모집은 마당도 있는 2층 단독 주택이다. 그곳에 가면 첫날 그리고 그다음 날까지는 넓은 방. 깨끗한 화장실, 달콤한 과일 등이 지영이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3일째부터는 관심이 없어지면서 동네가 그리워진다. 친구가 있고, 엄마 아빠 동생이 있는 그 건물이 보고 싶어 진다.


지영이 집엔 전화가 없어 바둑이 이모네로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 달라고 때를 쓰지만, 엄마는 그렇게 쉽게 지영이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열흘을 꼬박 채울 모양새이다. 지영이가 없는 집은 조금은 넓어졌을 테지. 이것이 엄마가 지영이를 방학 때마다 이모네로 보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새벽운전을 하시는 이모부가 주무시는 낮에는 집에서 소리 내어 놀 수가 없다. 소리로 소리 내어 놀지 못하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다. 더운 여름날이지만 지영이는 남동생들과 함께 뜨겁고, 끈적한 논 밭 사이를 뛰어다니며  방학 숙제인 곤충채집. 식물채집을 한다. 땀을 잔뜩 흘리고 나서는 넓은 마당 한쪽에  빨간색 고무통을 놓고 넘치게 물을 받아 물놀이를 후,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영이가 사는 그 건물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수영장이 아니면 어때?  이게 최고의 물놀이지.


한낮의 열기가 식어가고 서쪽 하늘 끝이 검붉게 물들어 갈 때면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냄새가 한 낮과 다르다. 그 냄새는 지영이가 사는 곳과도 다르다. 살던 곳의 냄새가 그리워 지영이는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옆에서 자는 동생들에게 들키지 않게 등 돌려 누워 훌쩍인다. 매일밤을 그러다 잠든다.

집이 보고 싶어서다.


지영이는 그. 여름방학의 반은 놀다 혼쭐이 나 도망 다니고, 나머지 반은 놀다 울며 잠든다.


 이모집이 아무리 넓고, 먹을거리가 풍부하다고 해도 지영이는 방 한 칸짜리 그 집이 좋다.

그 건물의 냄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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