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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Aug 26. 2024

ep6. 언니 or  고구마

뭐가 그리운 거야?

국민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지영이네  옆옆 집으로 소정언니가 이사 왔다.

소정언니네 이삿짐은 살림살이보다는 쌀자루나 보따리 같은 것들이 많았다.

시골 할머니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키, 소쿠리, 무쇠솥, 싸리비 같은 물건들이다.

소정 언니네 아궁이 위엔  언제나 그 까만 솥이 자리 잡고 있다.

열 살인 소정언니는  지영이 보다 몸집도 키도 손 발도 모두 작다.

비쩍 마른 몸에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하고, 입술은 한 여름 에도 항상 추운 사람처럼 파랗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몸이 아파 집에만 있던 소정언니가 지영이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너 이름이 뭐야? 난 소정이야. 10살이고"


" 난 지영인데, 10살이라고? 근데 왜 이렇게 작아?


"몸이 아파서"


지영이는 언니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묻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다.

언니가 놀자고 한 일만 신이 났을 뿐이다.

소정언니는 밖에서 놀면 금방 지치고, 힘들어하고. 가끔은 쓰러질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잠깐 놀다 힘들다며 들어가기 일쑤였다.

지영이 와도 주로 언니네 집에 앉아서 공기놀이나 실뜨기를 하며 노는 일이 많았다.


처음 언니네 집에 간 날.

간식이라며 언니가 다락방에 있는 누련 자루에서 꺼내준

것은 먹을 수 있는 게 맞나 생각이 들었다.

바싹 말라비틀어지고. 곰팡이도 아닌 것이 하얀 분필 가루 같은 게 잔뜩 묻어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마치 돌 같이 딱딱한데 먹는 것이란다.


"이거 어떻게 먹어?"


"이렇게 잘라서 먹어"


언니는 그 하얗고 딱딱하고 이상한 것을 하나 집더니 한 조각을 깨물어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천천히 씹는다.


"천천히 계속 씹으면 단물도 나오고 배도 불러. 먹어봐. 맛있는 거야"


먹순이 지영이는 맛있단 말에 하나 집어 그것의 끝을 이로 잘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한참을 오물거리니 언니 말대로 단물이 나오고 점점 부드러워지더니 고소한 맛이 난다.

씹는 시간이 좀 걸려도 맛있다.


"언니. 이게 뭐야?"


"시골. 살 때 이렇게 생고구마 말려서  죽도 끓여 먹고, 가루 내서 묵도 쑤어 먹고,

배 고플 때 이렇게 씹어도 먹고 해"


그날 이후 지영이는 소정언니네 놀러 가는 게 좋다.

돌덩이 고구마가 좋다.


소정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산다.

두 분은 항상 아침 일찍  제대로 펴지지 않는 굽은 허리로  장사를 나가신다.

지영이네 동네는 엄마 아빠와 살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언니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건 별 일이 아니다.

시끄러울 일 없는 집, 그날 밤엔 그 집에서 큰 소리가 다.

세 식구만 사는 그 집에서 화난 어른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와장창, 쿵!' 부서지는 소리에 이어서 고함소리까지 난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마구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른다.

언니는 밖에 나와 울고 있는데, 지영이는 무서워서 언니한테 다가가지도 못한다.

말리는 어른도 없다.

한참 소란을 피우던 남자는 욕을 하며 문을 걷어차고 나오더니.

"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어? 내가 또 올 거야, 그땐 진짜 가만 안 둬"

소리치며 쳐다보던 동네 사람들에게 까지도 욕을 하며 떠난다. 동네서 그 남자어른은 망나니로 통한다.


두 번째 그 남자가 찾아와 소란을 피운 이후, 할머니 할아버지는 장사를 안 가시고, 소정언니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얼마 지났을까?

지영이가 언니네 문을 두드리자

더 마른 것 같은 언니가 나와 들어오라고 한다.

두 분은 집에 계시지 않았다.

방 여기저기 싸 놓은 보따리가 잔뜩이다.


"언니, 이사가?"


"응"


"이사 가지 마!"


"아빠가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꾸 때려서 우리 다시 이사 가야 해"


지영이는  언니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때리는지 물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영이에게 중요한 건 언니가  이사 간다는 것이니까


그 아저씨가 또 올까 봐 무섭고, 소정언니가 불쌍해 보인다.

이 동네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아파서 학교도 못 가고,  무서운 아빠가 있는 소정언니가 제일 불쌍해 보인다.


며칠뒤, 언니는 인사도 없이 이사 갔다.

아니 사라져 버렸다.

엄마와 이모들의 대화 속에서 주워들은 얘기로는  살림살이도 모두 그대로 두고 떠났다고 한다.

언니가 그렇게 떠나고, 지영이는 어디에서도 그것과 같은 말린 고구마를 본 적이 없다.



가끔 언니 생각이 난다.

언니가 주던 말린 고구마의 맛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고 있다



뭐가 그리운 건가?

정든 언니인가? 말린 고구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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