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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Aug 21. 2024

겨울숲에서

연수목

   제주 중산간 가을 숲길을 걷는다. 색색 고운 물들임으로 단장하기 시작하는 예덕나무, 누리장나무, 말오줌떼나무, 상수리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곰솔 등등 낙엽활엽수와 상록활엽수, 침엽수가 섞여 있는 혼효림 숲이다. 큰 키 나무들 아래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어중간한 키와 굵기를 가진 나무가 있다. 교목 같기도 하고 관목 같기도 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만추에 단풍이 곱게 물든 감태나무는 찾기 쉽다. 주황색, 노란색, 붉은 갈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단풍이 며칠간 아름답게 스쳐 지난다. 이후 단풍물이 빠지면서 갈변한 잎새는 떨어지지 않고 겨우내 나목들과 벗하며 자리를 지킨다. 감태나무는 쌍떡잎식물 녹나무목 녹나무과 생강나무속 낙엽활엽 관목, 혹은 소교목이다. 감태나무의 생리적 특성은 교목과 관목의 특징을 함께 갖고 있으면서 낙엽 지는 모습이 독특하다는 점이다. 감태나무는 봄이 무르익는 4월 중순에 새순을 틔우면서 갈변한 잎을 놓아주는 나무다. 대개 낙엽수와 상록수는 잎사귀의 특징이 있다. 낙엽활엽수는 잎사귀가 부드럽고 얇은 편이다. 상록활엽수는 잎사귀가 빳빳하면서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감태나무는 낙엽활엽수이면서 상록수 같은 질감의 잎새를 가졌다. 참나무도 갈변한 낙엽을 오래 달고 있는 편이지만 하늬바람이 불때마다 조금씩 낙엽을 벗어 던진다. 감태나무는 새순이 돋을 때까지 갈변한 잎을 하나도 놓지 않고 품는다. 마른 잎을 손으로 잡아 당겨보았다. 떨어지지 않는다. 잎새가 찢어져도 잔가지에 힘을 다해 붙어있다. 잎새가 갈변한 이후에는 광합성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뿌리에 영양소를 공급하지 못한다. 기능을 다한 마른 잎새의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는 떨켜가 없기때문이다. 감태나무의 존재감은 겨울에 드러낸다. 새순이 돋은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이 나무를 잘 아는 사람만이 찾아낼 수 있다. 겨울에는 낙엽처럼 보이는 마른 잎이 매달려 있으니 죽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작고 붉그스름한 겨울눈을 달고 있다. 그래서 찾기가 쉽다. 인생의 겨울 같은 혹한기(酷寒期)에 잘 찾을 수 있게 자신을 보여주는 귀한 나무가 감태나무다.


   화초를 사러 온 어느 손님이 정원을 둘러보다 물었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예요?"

  예사롭지도, 흔하지도 않은 잎사귀와 줄기를 보고 나름 나무를 아는 분이기에 묻는 것이다.

  

  “감태나무입니다.”

  “몸에 아주 좋은 약재랍니다.”

  “그런데 철분이 많아서 그런지 벼락을 잘 맞지요.”

  “여기 인두로 지진 것 같은 자국이 보이시죠?”


  손님의 동공이 동굴처럼 커진다. (설마 벼락 잘 맞는 나무를 나에게 사라고 하는 건 아니지? 이런걸 알면서도 정원에 키우는 이 사람은 뭐지?) 여러 의문이 스쳐가는 표정이다. 이런 그를 살피며 정원사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정색하며 돌아서는 그에게 한마디 덧붙인다.


  "약용수로 아주 좋아요"

대꾸도 없이 총총히 사라지는 그녀.


  "저기요. 피뢰목이란 별명도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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