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이희주 작가의 '마유미'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다

by 유키
책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소설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통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를 가진다.

그리고 사적 자아를 본래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유미’를 만든 ‘나’는 다르다. 소설에서 ‘나’는 자신과 마유미를 분명히 구분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갈수록 자기 자신의 삶보다 ‘마유미’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갈수록 마유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편견에 굳게 사로잡혀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편견은 마유미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유미를 손주처럼 생각하는 어른들, 딸처럼, 공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진짜 사랑이 무언지 아는 이들이 마유미를 사랑한다.’

위의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마유미와 시청자들을 자신이 만든 아주 완벽하고 손색없는 공간에 가두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나’는 마유미에게 이야기를 붙여주고 숨을 불어넣는 단순 제작자에서 점점 그 역할을 넘어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인다. 마유미가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라고 여기며 그녀에게 너무나 확고한 정체성을 부여해 주었다.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 결국 자신을 잃을 만큼 말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마유미가 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길래 ‘나’가 그렇게 집착적인 행동을 보였는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작가는 그 의문의 해결을 위해 ‘나’의 목소리를 빌려 ‘나’와 현주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한마디로 ‘현실 도피’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마유미에게 서사를 선물하고, 생방송을 할 때마다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마유미가 살아 숨 쉬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수록 ‘나’ 또한 즐겁고 행복해졌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마유미를 자신과 동일시했을 것이다. 얌전하고, 신라 호텔에서 산 망고 케이크를 자르고, 책을 읽고, 박물관에 가는 마유미를, 본래의 ‘나’의 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마유미를 말이다. 피로감으로 가득한 자신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순수한 마유미, 사랑받는 마유미, 언제나 긍정적인 마유미를 보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의 정도가 너무 컸던 탓이었다. 마유미의 진실을 알려준 현주마저 없어진 세상에서 ‘나’는 결국 마유미를 완전히 독점하게 되었으며 이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유미의 삶을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말인즉슨 ‘나’는 결국 마유미에게 삼켜졌다는 것을, 그러기를 스스로 택했다는 것을 말이다. 너무나 크고 견고한 환상은 가끔 현실과의 경계를 침범할 때가 있다.

환상은 오로지 환상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그저 가상일 뿐인 환상이 실제 하는 현실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환상은 언제나 달콤하고 아름답다. 그만큼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실은 환상과는 정반대의 세계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현실은 의무이고,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대로 바뀌는 것도 아니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존재한다. 다만 환상은 다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고,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다.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점이 있다면 이 무한함이 ‘마유미’에서와 같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경계 침범의 문제다.


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상은 어디까지나 환상이어야만 하고, 현실 세계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만약 환상이 그 경계선을 침범하여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현실이 흔들린다면, 자아를 혼동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 현상은 곧 자신의 현실을 더욱 회피하게 만들어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환상에 더욱더 극심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만약 모종의 이유로 그 환상이 완전히 깨졌을 때, 우리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좋다고 생각되는 것에 계속해서 몰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소설 ‘마유미’에서의 ‘나’는 자신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그 말을 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이런 ‘나’의 혼돈은 결국 극단적인 결말을 만들어냈다.

이 소설은 여기서 끝났지만, 이것이 소설이 아닌 현실이라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나’가 마유미를 가지게 된 이상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상의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부정적인 끝을 맺는다.

그 환상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현실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행복감과 즐거움을 얻고, 잠깐의 현실 도피를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조금이라도 얻게 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며 때로는 필요한 일이지만, 그 환상이 삶을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희주 작가의 소설 ‘마유미’는 이렇듯 독자들에게 가상의 인물을 향한 집착이 불러오는 위험성에 대해 짧지만 분명하게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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