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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현모양처 Nov 08. 2024

외박하고 갈래?

집안의 또 다른 집. 방문 너머가 외박이라고 한다면 나 억울해.

우리 집은 세 개다. 남편이 잠을 자는 안방. 큰아이가 잠을 자는 방. 그리고 작은 아이가 잠을 자는 방이다. 집안에 또 다른 집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자신만의 공간이자, 편히 쉴 수 있는 집 속의 집. 그러나 이 세 개의 집은 곧 우리 집의 뜨거운 감자가 된다.
 
다른 가정들에도 잠들기 전 루틴이 있듯이, 우리 집 역시 루틴이 있다. 아이들이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책가방을 싸고, 주변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저녁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마무리한다. 그런 다음, 작은 아이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함께 침대에 누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작은 코를 만지고, 귀를 만져준다. 아이는 나에게 포옥 안긴다. 팔베개를 한 아이는 나의 품에 더욱 깊이 파고든다. 우리는 하루 동안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눈다. 신났던 일, 웃겼던 일, 속상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며, 나는 아이에게 집중한다. 나도 아이도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마음이 편안해진 아이는 이내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너는 너무 사랑스러워”라고 눈빛으로 말해준다. 5분, 10분, 15분. 마지막으로 자장가를 불러준다. 8살  아이는 나에게 여전히 ‘아가’이고 싶어 한다. 작은 아이가 잠에 들면, 큰아이가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에서 나는 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뽀뽀를 해준다.  마음을 충분히 알아주고 어루만져 준다. 그런 다음 남편이 있는 안방으로 간다. 남편을 꼭 안아준다. 잠들어 있는 남편이지만, 그 역시 내 온기를 느낀다. 그렇게 나는 잠에 들고, 남편은 출근을 위해서 일어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저녁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맞아떨어지지 않는 날도 있는 법.


그런 날은 바로 내가 외박을 한 날이다.
애 있는 엄마가 외박이라고? 세 집을 투어 하며, 잠에 들지 않아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잠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학창 시절, 잠 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학교 다닐 적  나의 취침시간은 9시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믹스 커피를 수시로 내 입속에 때려 넣었고, 겨우 겨우 야간 자율 학습을 버텨냈다. 성인이 되어 술자리에선 또 어떤가. 술을 마시며 노는 것보다 나는 잠을 택했다. 졸려서 노는 것도 힘든 나였다. 설상가상 결혼 후 낳은 큰아이는 잠이 없었고, 아이가 잠을 자지 않는 여러 이유들을 찾느라 여러 날을 인터넷을 뒤졌다. 아이들이 좀 더 컸을 땐, 대부분의 시간을 놀이터 투어에 썼다. 때문에 잠재우러 들어갔다 잠들기 일 수였다. 같이 누워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하면 그 자장가는 부메랑이 되어 나를 재웠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는 나를 물 먹은 솜사탕처럼 만들었다. 작은 아이를 재우다 잠에 들면, 큰아이가 나를 깨우러 온다.


 “엄마, 나 아직 안 재워줬어. 나도 재워줘”,


큰아이를 재우다 잠들면, 남편이 나를 깨우러 온다.


 “안방 가서 편하게 자.”,

 “자꾸 여기서 잘래?”,

 “자꾸 외박할래?”


 모두가 나를 기다리는 밤이다. 나는 바로 우리 집의 인싸다. 핵인싸. 남자복이 터진 그야말로 인기쟁이.


그러니까, 나도 안방 침대에서 편하게 당신 옆에서 자고 싶은데 말이야. 잠에 빠져드는 걸 어떡하냐고. 나랑 같이 자고 싶으면 초저녁에 일어나 아이들 숙제라도 좀 봐주면 훨씬 좋잖아. 으 답답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메아리가 치고 있었다.


사실 아이들과 밤 시간을 갖는 이유는 두 가지다.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아이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잦은 외박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더 돈독해진다. 물론, 남편은  불만족스럽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은 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의 스킨십이 불편하고 닭살이라 생각하는 그 시기. 사춘기는 피할 수 없으니까. 나를 떠나갈 시기에, 잘 보내주려면, 지금 마음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나의 아쉬움이 아이를 잡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오니까. 머지않아 나와 아이들은 거리가 생길 것이고, 반대로 남편과는 지금 보다 더 가까워질 것이다. 나의 체력이 그때까지 버텨줄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들지만, 비타민을 내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몸을 관리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나의 정신을 환기시킨다.


오늘의 나의 추천.
워킹맘인 지인은 늘 아이에게 미안해했고, 나는 잠자기 전 루틴을 권해주었다. 마음의 허기를 채워 주고 싶다면, 양보다는 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추천해 준 방법이 좋은 영향을 준다고 했다. 10분, 20분. 긴 시간이 아님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아이는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워킹맘이라고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함께 있는 시간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 할 말이 없다면, 그저 그윽하게 바라봐줘도 괜찮다. 열 마디 말보다, 따뜻한 눈빛 한 번이 더 큰 것을 말해 줄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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