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현모양처 Nov 19. 2024

나는 충전기다.

퇴근 후 나만 찾는 남편의 심리는 무얼까?

종일 만지던 핸드폰이 방전되었다. 부리나케 충전기를 찾아 꽂는다. 1%, 2%. 아직 핸드폰은 켜지지 않는다. 딱히 연락 올 사람도 없는데, 괜스레 불안해진다.

그런 걸까? 나의 남편도. 충전이 필요해서 서둘러 집으로 왔는데, 충전기가 없다. 불안하다. 남편은 핸드폰을 열어 전화를 건다. 부재중 전화 1, 부재중 전화 2.


“어디야? 어디 갔어?”


전화기 너머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 꿈틀댄다. 동시에 숨이 턱 하고 막힌다. 사방팔방 불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불을 뿜어 내지 말자. 푸시시 불씨를 꺼뜨리자. 심호흡 크게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대답한다.


“무슨 일이야? 아이들 학원 데려다주러 왔어.”


 전화기 너머의 대답이 날이 선다.


“그래서 언제 오냐고.”


 내 얼굴은 울그락 붉으락, 점점 더 달아오른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그 사이 남편은 잠에 들었다. 허무함이 밀려오다, 이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뚜껑이 날아갈 것만 같다. 아니, 날아갔다. 뻥!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게 무엇인지 나에게 제발 말해.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수수께끼도 아니고 나에게 알아맞히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아냐고. 스무고개도 아니고, 퀴즈로 자기의 마음을, 원하는 바를 알아맞혀 보라는 게 어른의 대화 맞냐고. 매 순간 그걸 내가 어떻게 해.'


 비록 말은 속으로 삼켰지만, 하고픈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다 뱉어 버렸으니, 아후, 속은 시원하다.  남편은 자주 퀴즈를 냈고, 그럴 때면 정답에 따라 태도를 취해 달라 요구한다. 물론 이것도 정확하게 말로 하는 것은 아니다. 꼭 그걸 말로 해야 아냐는 식이다. 순수한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자신만의 정답이 있는 어른의 마음은 어떻게 알까.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도리어 나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실제로 자신의 원하는 바를 말로써 표현하는 것에  서툰 어른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소통이 소통다워지도록 아이들과 함께 연습한다. 그 시작은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내 마음과 대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원하는 바를 찾게 되고,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불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나의 아이들은 누군가로부터 불통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말’이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서로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상대를 잘 이해할 수도 있고, 더 단단하고 깊은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가족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말’이다.  나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더 나은 관계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배움이다. 하지만, 연습이 동반되지 않으면 절대 얻기 힘든 배움이기도 하다. 가족 내에서 연습하고 갈고닦아야, 성인이 된 후,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을 때,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가장 중요한 필 수 역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편은 나에게 말한다. 아이들 가르치듯이 대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알기 위해서 대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이어가는 것인데, 그 질문 끝에 이렇게 말해줘라고 말하는 것인데, 그는 왜 자기를 가르친다 생각하는 걸까.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들리는 것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말하면 되는데, 두리뭉실하게, 때로는 모호하게, 애매하게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알아 들었냐고 이야기를 하다니. 받아들일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신의 정확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꼭 그걸 말로 해야 아냐는 식으로 대화는 이어진다. 딩~. 이야기는 다시 원점이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내가 당신을 낳아 키우지 않았는데, 내가 그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우린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이 넘는 시간을 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예상은 할 수 있지만, 예상이 언제나 정답 일 수는 없다.

지난여름, 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먼저 아이들 고모댁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냈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집(아이들 이모집)에 들려야 했기에 남편과 시어머니는 먼저 서울로 출발했다. 나와 아이들은 청주로 향했다. 나와 아이들의 외출에 있어서 남편이 나를 놓아주지 않음에 시어머니께서는 동의하지 않는 눈치셨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나를 불편해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씩 언급했다. 이번 휴가를 기점으로 어머니께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어머니께서 물었다.


"보경이가 아이들 데리고 나가있으니, 편하고 좋지?"

"집에 들어오면 짜증이 나.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라고 남편이 대답했단다. 그 말에 시어머님은 이해할 수 없었단다. 이제는 더 이상 부정 할 수 없으실 것이다.  어머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남편에게 넌지시 돼 물었다.


"내가 많이 보고 싶었겠네? 그래도 전화 많이 안 하고 잘 참았네."  

그러자 남편은 말했다.


"난 너랑 침대에 누워있어야 충전되나 봐." 


드디어 그는 인정하고야 말았다. 내가 자신의 충전기라는 사실을.


"그래 여보, 내가 말없이 같이 TV를 보면서 옆에 있어야 당신은 충전이 되잖아. 그게 당신의 힐링 포인트잖아."

"그런가 봐."

"그래, 당신이 인정하면 그걸로 됐어."


 그래, 충전기는 말이 없지. 충전기는 늘 그 거리에 있지. 충전이 되고 나면 충전기는 더 이상 필요 없지.  그때 다시 나로 돌아가면 되지. 여보, 당신에게도 나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줄게. 그러니 나에게 쉼을 주라. 내가 지치지 않게.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 내가 그의 충전기라는 사실을 그는 비로소 인정했다. 그의 인정을 통해서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오늘의 나의 추천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음'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도 있으니.  상대와 잘 지내고 싶다면, 가까워지고 싶다면, 나의 '마음'을 '말'이라는 언어로 갈고닦아 말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말잘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말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타인이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길 기대하는 것보다, 그에 앞서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곧 내가 될 것이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에 서툴다. 아이도, 어른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