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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현모양처 Nov 22. 2024

님아 그 문을 열지 마오

아이의 하교 시간, 현관문이 열리면 롤러코스터는 출발한다.

띠띠띠, 띠띠띠. 성큼성큼 성큼. 큰아이가 현관 문턱을 넘었다. 동시에 내 마음도 쿵, 하고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한 걸음에 달려가 현관에 섰다. 양팔 벌리고, 얼굴에 미소를 한 껏 장착하면, 준비 완료다. 나를 본 순간 아이는 속사포로 짜증을 쏟아낸다. 나는 원, 투, 원, 투. 계속해서 두들겨 맞는다. 20분이 지났을까, 투덜대던 큰아이는 그제야 짜증을 멈춘다. 나는 20분 동안, 큰아이의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한다. 이 시간을 견뎌 내야 한다. 아이의 짜증을 계속해서 받아 주기 때문에 나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라 남편은 말한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만일 내가 작은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남편과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남편이 틀렸다. 내가 받아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 그러한 것이다. 기질은 아이마다 다르다. 내 뱃속에서 태어난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너무 다르다. 오 남매인 ‘나’ 역시 동생들과는 많이 다르다. 큰아이의 예민함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크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난 탓에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동안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모든 아이가 큰아이와 같지는 않다. 규칙을 지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아이도 있다. 작은 아이가 그러하다. 냉탕과 온탕을 수 없이 드나드는 나의 육아는 아이를 비교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가 끝이 난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 전, 나는 아이와 교실 규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왜 지켜야 하는지,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에 대해 굉장히 들떠 있었지만, 그에 반해 나의 걱정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닐 때와는 다르게 지켜내야 하는 규칙은 훨씬 더 많아졌고, 강도도 더 세졌다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도 많아졌다.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더 많은 애를 쓰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선생님 말씀에 집중해야 할 것이고, 수업도 잘 따라가야 할 것이고, 수업시간 중에 돌아다니면 안 될 것이고, 선생님 말씀 중에 앞, 뒤, 옆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어서도 안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꼭 가르쳐 보내야 한다. 부정적 상황에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일은, 다른 아이들에게 문제아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와 아이의 노력을 알아준 것일까? 1학기 상담 중 선생님께서는 수업 진행에 있어서 큰 무리가 없다고 하셨다. 안도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수업 태도가 나쁘지 않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 아이는 나의 걱정과 달리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반전은 지금부터다.



 학교 규칙과 교실 규칙을 잘 지켜냈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는 엄청난 에너지를 썼고, 긴장으로 인해 스트레스는 높아졌다.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룰 것인가? 쏟아 낼 것인가?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직 잘 다루지 못한다. 왜? 연습이 부족하니까. 8살 아이가 스트레스를 잘 다룬다고 하면 그 아이는 이미 성인군자다. 아이의 스트레스는 나를 만남과 동시에 봇 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어떤 날에는 댐이 무너지기도 한다. 큰아이가 집에 돌아오기 전, 오전 시간에 내 마음을 돌보아야만 한다. 이너피스, 이너피스, 내면의 평화를 부르짖으며 아이를 기다린다.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 나는 아이와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다. 마음을 세심하게 다뤄 줘야만 하는 아이였다. 몰랐다면 나와 아이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을 것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마음을 위로받고, 점점 더 좋아졌다.


  

큰아이가 할머니와 단둘이 고모댁에 갔을 때였다. 고모댁에 가기 전 아이는 내 핸드폰 속 나의 사진을 고르고 골라 프린트해 갔다. 잠들기 전 큰아이가 내 사진을 고이 접어 이마에 올려두고 잤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짠하면서도 기특했다.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을 자기의 방식대로  참아낸 것이다. 이틀밤을 자고 돌아오던 날, 서울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반가운 마음에 양팔 벌려 아이를 맞이했고, 아이는 나에게 뛰어왔다. 그 순간 큰아이는 나를 향해  짜증을 들이부었다. 콸콸콸. 넘치다 못해 줄줄 흘렀다. 한 동안 계속 흘렀다. 그때 큰아이는 5살이었다. 나는 알았다. 이 아이가 나에게 짜증을 내야만 하는 이유를. 고모댁에 있는 2박 3일 동안, 통제가 따랐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는 통제를 이겨낼 힘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했다. 고모에게, 할머니에게 짜증으로 표현하지 못하니, 마음에 가득 담겼을 것이다. 그 담긴 짜증이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터져버린 것이다. 아이에게 통제를 하지 않는 엄마는 아니다. 하면 되는 행동과 해선 안 되는 행동의 구별을 명확하게 가르친다.  동시에 아이가 멈출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강제로 멈추게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마음대로 하겠다는 몸부림을 두 눈을 뜨고 지켜보며, 아이가 스스로 진정할 수 있게 기다려줘야 했다. 머리는 뜨거워지고, 심장은 빨리 뛴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여러 말들을 꾸역꾸역 삼키며, 나도 그 시간을 버틴다. 이 작은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아이는 학교에서 나름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스트레스 다루는 방법에 여전히 서툴다. 나의 마음이야, 아이가 나에게 안기면, 아이의 힘듦을 들어주고, 어루만져주고, 다독여 주는 드라마 같은 전개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노력을 집중적으로 하기 시작한 다섯 살 무렵부터  열 살까지. 6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그 어떤 노력도 헛으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고, 다듬어야 한다. 아이가 스트레스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연습을 도와주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 줘야 한다. 마치 감정이란 공을 손 뒤에 올려두고 요리조리 굴리며, 떨어뜨리지 않는 연습으로 말이다. 오늘 우리의 연습은 훗날 괜찮은 어른이 되는 영양분이 될 것이다.






오늘의  나의 참견


“아이의 마음은 알아주되, 행동은 통제해야 한다”는 심리학자, 의사들의 공통적인 조언이 있다. 잘못된 행동은 반드시 알려주어야 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나의 잘못된 행동, 실수에 대해서는 아이, 어른 상관없이 사과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나의 마음을 해석하거나, 내 감정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나의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마음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타인의 마음을 얻기보다  ‘반감’, ‘반항심’이라는 부정적 감정만 더 키울 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게 울 일이야?”라는 말은 삼가야 한다. 때로는 눈물로써, 울음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쏟아 낼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진정되기도 한다. 우리는 절대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실수를 범해선 안된다. 나의 기준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상대를 바라보아야 한다.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장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 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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