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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이 시를 짓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조선시대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

by 화우

15년 전 쯤? 우울증을 겪고 있던 당시 나는 한자 지도사 자격증을 따러 한문 학원에 1년 정도 다녔다.

주 1회 수업이었는데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곳에서 젤 좋아하고 기억에 남는 한시 구절을 소개하고 작가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몽혼(夢魂)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 유적)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해석


요즈음 어찌 지내시는지요

달빛 드는 사창에 첩의 한이 깊어갑니다

만약 꿈속의 넋이 오가는 자취를 남긴다면

문 앞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


한시를 배울 때 선생님의 들려주시는 이 시를 듣고 나는 너무 좋았다. 어쩜 이런 시도 지을 수 있을까?

그냥 마냥 행복하고 시대와 시간을 달리 한 사랑의 감정은 다들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일본가이드 일을 다닐 때 딱히 생각나는 멘트가 없으면 일본의 지폐를 설명할 때

이 여인의 이야기도 해 주었다.


일본의 지폐는 천 엔, 오천엔, 만 엔짜리가 있는데 일본의 오천 엔짜리에 여류작가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작년까지 히구치 이치요라는 분으로 1872년 생이며 결핵으로 24세로 요절하신 분이다. 우리나라의 소설 춘향전을 세계적으로 알린 나카라이토스이의 연인이기도 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대마도에 토스이의 박물관에 그녀의 초상화가 같이 걸려 있기도 한 분이다. 그러면서 나는 조선시대의 슬픈 사연을 가진 이 여인을 은근슬쩍 소개했다.


이름은 이옥봉이다.


이분은 양녕대군의 고손자 자운 이봉(1562~)의 서녀로 운강 조원의 소실이었다.

그녀는 이봉의 서녀였지만 이봉은 그녀의 글재주를 기특히 여겨 책을 사주었고 공부도 뒤바침해주었다.

옥봉의 문학적 재능은 점점 늘어 시에 능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이봉의 집에 자주 드나들던 선비 중 조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조원은 조선의 3대 미남이라고 할 정도로 잘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미남도 까칠하다?

옥봉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보다 못한 이봉은 조원을 찾아가 자신의 서녀를 받아 줄 것을 간청한다. 그러자 조원은 옥봉이 다시는 시를 짓지 않을 것을 전제로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결혼하고 몇 해 동안은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지내게 된다. 그러나 큰 사건이 하나 터져 그녀는 구설수에 휘말리게 된다.

근처에 사는 농사꾼이 소를 훔친 도둑놈으로 몰려 파주관아에 끌려가는 일이 생긴다. 그러자 그녀의 아내가

옥봉을 찾아와 자신의 남편은 죄가 없음을 읍소하며 파주관아의 사또에게 편지를 한통 써 줄 것을 간청한다.

그러자 옥봉은 그녀를 어여삐 여겨 시를 한 편 써 보낸다.


爲人訟寃(위인송원)


洗面盆爲鏡(세면분 위경)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소두수작유) 물을 기름 삼아 머리를 빗네

妾身非織女(첩신비 직녀) 첩의 몸이 직녀가 아닌데

郞豈是牽牛(랑기시 견우) 임이 어찌 견우이리오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물로 기름을 삼는다는 것은 가난한 삶을 말하는 것이고 ‘이 몸이 직녀 아닌데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리오’라는 말은 견우(牽牛)는 소를 끌어간 사람이므로 내가 직녀가 아닌 것처럼 남편이 견우 즉 소를 끌어간 도둑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시를 본 파주목사는 즉시 그녀의 남편을 방면하게 된다.

남편 조원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시를 지어 관가의 판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여 옥봉을 집에서 쫓아 버린다. 쫓겨난 옥봉은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지금의 한강 뚝섬 근처에 움막을 지어 살며 남편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리며 한시를 지어 보내지만 허사였다. 실연의 아픔을 안고 살던 옥봉은 기다리다 지쳐 그녀의 온 몸에 자신이 쓴 시가 담긴 한지로 온 몸을 감싸고 한강에 몸을 던지게 된다.


그러자 옥봉에 대해서는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인조 때 조원의 아들 승지 조희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명의 대신이 조희일 에게 묻기를 “조원을 아느냐?” 하니 희일이 “제 부친입니다”라고 답하자 그 대신은 이옥봉의 시집을 주며 들려준 이야기가 다음과 같다.

40여 년 전에 중국 동해안에 괴이한 주검이 떠다닌다는 소문이 돌아 관에서 확인하고 시신을 거두어 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십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종이를 벗겨보니 종이 안쪽에 시가 가득 적혀있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씌어 있었다. 시는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들이라 명의 조정에서 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지에 붓글씨로 글을 적어 두면 이것이 물에 적어도 그 글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그때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명나라 조정에서 극찬하여 책으로 만든 것은 이옥봉과 허난설헌이 유일하다.


그럼 옥봉의 주옥같은 한시를 감상해 보자.


閨情(규정)

有約郞何晩(유약랑하만) 약속을 해 놓고 임은 어찌 이리 늦나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뜰에 매화는 다 지려고 하는데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갑자기 가지 위에서 까치소리 들리니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헛되이 거울 보며 눈썹 그리네


이 시에는 온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잘 나타내고 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소식에 의지하여 오늘은 혹시 임이 올까 헛된 기대 속에 화장을 하는 여인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시이다.


苦別離 (고별리)


西隣女兒十五時 열다섯 처녀시절

笑殺東隣苦別離 쓰라린 이별 비웃었네

豈知今日坐此限 오늘 내가 이럴 줄 어찌 알았으랴

青髮一夜垂絲絲 검은 머리 하룻밤에 오올이 늘어지네

愛郎無歸驅駿馬 고운님 느닷없이 길 떠난다 말했는데

滿懷都是風雲期 가슴 속엔 허망한 약속만 가득 찼어라

男兒功名自有日 사내의 부귀공명 스스로 때가 있으나

女兒盛裝忽已遲 여자의 한창때는 홀연히 지나간다네

吞聲那敢歎離別 울음을 삼키고 탄식한들 어쩔거나

掩面却悔相見遲 얼굴을 가리면서 마주 보기 피했어라

聞郎已過城隍外 낭군 소식 들으니 강성현 벌써 지나

抱琴獨對江南湄 거문고 끼고 혼자 물가에 닿았다네

妾身恨不似雙燕 이 내 몸 한스러워라 기러기처럼 날개 달려

翻翩羽翮逐相隨 훨훨 날아서 님 따를 수 없구나

粉臺明鏡葉不照 화장대 밝은 거울도 보기 싫어 내쳐두었는데

春風寢複舞羅衣 봄바람은 어찌 비단옷 나부끼게 할까

天涯魂夢不識路 하늘 끝 외로운 혼 꿈속에서도 길을 모르니

人生何用慰秋思 인생의 시름이야 위로한들 무엇하리


세상은 그녀를 불운한 여인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그녀의 시를 읽을 때마다 그 안에 깃든 생의 의지를 본다.


사랑받지 못한 여인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을 믿었던 시인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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