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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미생 Oct 15. 2024

#7 참고 견뎌야 한다

눈과 귀를 닫자, 지금은 나를 지킬 때가 아니다

화려한 복귀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업무는 어느 정도 적응해 가고 있었다.

복직을 하고 나니 조직의 체계가 레벨이 세분화된 형태로 변해있었다.


기존의 조직은 실무가 파트장에게 직접 가이드를 받는 형태였는데, 복직 후 조직은 파트장의 의견을 받기 위해선 실무 - 셀장 - 파트장 순서로 거쳐야 했고, 셀장/파트장의 의견이 다를 경우, 기존 셀장 가이드에 따라 한 일을 파트장의 가이드에 따라 뒤집어야 했다.

효율이 가장 중요한 나에겐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셀장은 내 휴직 기간에 경력직으로 입사했고,

모든 것을 본인이 컨트롤해야 하는 집착이 있는 사람이었다.

파트장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다를 경우 아니꼽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반박하며 자신의 의견 개진에 힘쓰는 스타일이었다.


처음엔 나에게 피해가 없기 때문에 셀장과 파트장의 관계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복직 후 한 달쯤 지났을까?

셀장이 나에게 마이크로매니지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이크로매니지를 당할 때 업무 효율이 나지 않는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이전 파트장과는 큰 업무 방향만 받고

중간 체크 및 의사 결정 필요 건을 보고 하는 정도로 일해왔다.

하지만 새 상사를 잘 모셔야 인정도 받을 수 있기에 처음엔 셀장의 업무 방식에 모두 맞추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짜증과 폭언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업무 중 사소한 업무 실수가 생기면

담당자를 모든 파트원 앞에 세워놓고

인격모독성 발언을 했다.

"이게 말이 되냐, 뇌는 빼고 일을 하는 거냐, 생각이라는 걸 좀 해라"는 게 주 레퍼토리였다.

그녀의 기분과 업무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사람 가리지 않고 폭언과 짜증을 퍼부었다.

나도 아직 업무가 완벽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주간 보고 때마다 타깃이 되었다.

내가 아닌 날은 다른 사람에게 폭언이 옮겨갔

매주 보고 시간이 지옥 같았다.


나는 그녀의 폭언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것은 폭언 대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면 될 일이었다.

우린 일을 하러 모인 것이지 그녀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상사 기분 맞추자고 부모님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 폭언을 받아주러 모인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우선 파트장을 찾아갔다.

진급이고 뭐고 일단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회의실에 마주 앉았을 때, 그도 내가 면담 요청한 이유를 짐작한 것 같았다.

휴직 전 친했고, 좋은 선배였고, 배울 점도 많은 사람이었기에 믿고 고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의 코멘트는 "셀장의 만행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참아라."였다.

이미 다른 사람들과 면담을 거쳐 상황은 잘 알고 있다고 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조치는 어렵다고 했다.


그래, 벌써 한 해의 반을 도는 시점에 그럴 수 있겠다. 인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아 인력 부족은 핑계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회사에 나쁜 X들이 참 많죠. 하지만 셀장은 나쁜 X 중에는 좀 덜 한 케이스라 생각하세요.

 더 나쁜 X들도 회사에 많아요. 진급해야 하잖아요. 어려운 일 있으면 제가 들어는 드릴게요.

전 더 나쁜 X들하고도 많이 일 해봤어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황당한 헛소리를 들으니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고 배신감이 몰려들었다.

파트장인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녀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데, 주의도 주지 않는다고?

이미 그녀에게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파트장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분명히 그녀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는 사람의 회피였다.


내가 알던 선배는 따뜻하고, 배려심 깊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다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트장이 되어 있는 그 선배와 상하 관계로 지내보면서, 회사 생활에서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완장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좋은 선배 한 명을 잃었다.

아랫사람을 제대로 지도할 수 없는 상사, 존경할 수 없는 상사는 내가 가까이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급이 걸렸다. 당장 파트 이동을 할 수 없었고, 나를 지킬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진급 발표 날까지 카운트 다운을 하며, 참고 견디는 날이 시작되었다.

내 눈과 귀를 닫기 위해 노력하며, 버티기 작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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