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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미생 Oct 02. 2024

#3 잠시 후퇴, 아이부터 살려야한다!

임신중독증이요? 우리 둘 다 죽을 수도 있다고요?

계약 체결에 대한 성취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불행이 찾아온 건, 정확히 임신 20주 검진을 갔던 때였다.


한 달 전 받은 정기검진 때부터 담당의는 아이가 주수보다 한 주 정도 작다고 했다.

원래 작은 아이일 수도 있지만, 주수 차이가 많이 벌어진다면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뭐 사람의 체형이 다 다르고, 몸무게도 제각각인데 평균보다 한 주 정도 작을 수 있지 싶었다.


나의 혈압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아직은 괜찮다며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래서 임신하면 다들 겪는 신체적 변화인 줄 알았다.


20주 검진에서 의사는 대학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산모인 나는 자궁 혈류가 한쪽이 불안정한 상태로, 임신성 고혈압의 위험이 커 보인다고 했다.

이로 인해 아이에게 혈류공급 및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이가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다.

의뢰서를 써 줄 테니, 근처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임신이 처음이었던 나는 현실적으로 이게 얼마나 안 좋은 상황인 지 와닿지 않았다.

그냥 대학병원 가서 검진 한 번 보고 오면 다니던 병원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난 그 이후 매일 문지방이 닳을 정도로 자주 대학병원 진료를 가야 했고, 4개월 간의 버티기 끝에 출산도 대학 병원에서 해야 했다.


대학병원 첫 진료, 긴장하는 기색 하나 없이 진료를 보러 들어간 나에게 교수님은

"산모 상태에 비해 얼굴이 평온하다"는 의미 심장한 말로 진료를 시작했다.

의심 가는 병명은 있으나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2주 뒤에 결과를 보기로 하고 돌아왔다.


그 이후 들었던 무시 무시한 말은 진급과 회사 생활에 미쳐있던 나에게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했다.

"아이 심박수 불안정, 몸무게 평균 대비 2주 미달, 산모 혈압 높음, 전형적인 전자간증 소견입니다"

전자간증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 지 유추 조차 할 수 없던 나에게,

교수님은 친절하게 "임신 중독증 아시죠? 의학적으론 전자간증이라고 해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친절함은 거기까지였다.

"산모와 아이 사이에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영양소 공급 부족으로 아이는 저체중이 될 가능성 높아요.

산모는 혈압 상승, 부종, 시야 혼탁, 두통, 신장 기능 이상으로 인한 단백뇨 등을 겪을 수 있고, 중증으로 진행될 경우 아이와 산모 모두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임신성 중증 질환이에요.

24주라 이르긴 하지만, 엄마 뱃속이 열악한 상황이라 당장 아이를 제왕 절개로 출산해서 밖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좋겠어요. 분만실 올라가서 검사받고 내일 수술하는 걸로 해요"


이게 무슨 상황이지? 40주 중에 24주면 아직 내 뱃속에 4개월을 더 있어야 하는 아이인 건데, 지금 당장 내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낸다는 건가? 난 아직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모든 상황이 나에겐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의료진들은 감응조차 없어 보였다.

그동안 진급에 밀려 뒷전이었던 뱃속 아이의 존재가 그때 강렬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우선, 나의 뱃속이 정말 아이에게 안 좋은 환경인 지 판단이 필요했다. 러 의사의 소견을 듣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우르르 달려들어 뱃속의 아이를 꺼내려고 하는 의료진에게 차분히 손을 들고

"메이저 대학병원으로 전원 할게요"하고 말했다.


그 병원의 의료진 모두 "전원"이라는 단어에 극도로 민감해했다.

전원 하려는 메이저 병원 대비 본인들의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닌데 나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전원을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겐 정확한 결정을 위한 판단의 근거가 필요했다. 다른 의사도 정말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할까?

나는 전원을 감행했고, 이 병원은 나를 메이저 병원의 응급실로 쫓아내듯 밀어냈다.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회사를 박차고 나온 남편이 나를 전원 하려는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차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며, 아이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 와중에 또 하나 마음 구석에서 '진급을 위해 준비하던 일본어 시험은 포기해야겠구나, 12월까지 재직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진급 걱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편은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아이와 나의 생명이기에, 진급은 아무 생각하지 말라고 나를 다독였다.

내 숨이 붙어 있어야 진급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아이와 내가 사는 게 먼저라며 나를 잡아주었다.


메이저 병원의 응급실에서 각종 검사를 진행했고, 한두 시간 정도 걸려 분만실에 올라가 전자간증 관련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행히 배정된 담당의는 이전 병원과 다른 소견을 주었다.

"다행히 아직 전자간증 진단을 내릴 정도의 심각한 상황은 아니에요. 어떠한 상황이라도 엄마 뱃속이 아이 성장엔 가장 좋은 환경이에요,  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되, 전자간증이 진행되어 증상이 나타나거나 아이의 성장이 너무 더디다면 그땐 바로 출산을 해야 해요.

매일 혈압을 재고, 이틀 간격으로 엄마와 아이 상태를 보기 위해 진료를 오세요.

산모가 잘 버틸 수 있도록 저와 전공의들이 도울거에요.

분만실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밀고 들어오세요 "


다행이었다. 아직 아이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전원한 덕분에, 좋은 담당의를 만난 덕분에 그렇게 우리는 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뱃속의 아이는 이 때 부터 '정상 주수 분만'이라는 목표로 함께 하루 하루 버티기 작전에 돌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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