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행복의 정점, 아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정확히 한 달 만에 아이와 함께 조리원에 입소했다.
안아본 아이의 존재감은 뱃속에서의 희미한 존재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보며, 이 아이가 내 뱃속에 있었다니... 이 작은 체구로 생사의 고비를 잘 넘겨냈다니
생명의 경이로움과 이 아이의 삶을 향한 의지를 느끼며 더 잘 키워주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졌다.
승진에 대한 걱정이 희미해지고, 조리원 퇴소를 며칠 앞둔 시점 파트장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대략 '인사과 지침에 따라 고과를 직접 알려드려야 하니 전화를 달라'는 것이었다.
임신 기간 동안 살인적이었던 업무 강도에 파트장이 일조하기도 했고,
출산 후 고과는 될 대로 되라는 모드였기에
메시지 자체가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예의 상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건강하게 낳은 걸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바로 날아온 말은,
'이번엔 못 챙겨드려서 미안하다.
승진 대상자가 많아서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돌아와서 잘 도모해 보시죠'
될 대로 돼라 싶기는 했지만 순간 배신감이 들었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진급 누락, 당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는 슬프지도, 마음이 아프지도 않았다.
잠시의 허탈함은 있었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나의 하루는 너무나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 출산 휴가가 끝나면 1년의 육아 휴직이다.
그 기간 동안 업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리고 이젠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이 아이는 내 보살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아이다.
임신 기간 제대로 아이를 신경 쓰지 못했기에,
휴직 기간 동안은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휴직의 기대감은 사치일 정도로 출산 전까지 바쁘게 보냈다.
회사 밖의 삶, 회사를 가지 않으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 본 적 조차 없었다.
일이 없는 삶이 지루하진 않을까,
수입이 줄어들면 누리던 것들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초반에는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이것은 기우였다!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육아휴직은,
아이를 키우느라 내 자유가 없는 삶이었다.
아이가 일어나면 깨고, 아이가 자면 같이 자는, 아이를 위주로 돌아가는 생활인 건 맞지만,
나를 보며 배냇짓하는 아이의 미소, 꼬물거리는 아이의 몸짓을 보며 전혀 희생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눈에 필터가 씌워진 듯,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은 나에게 행복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중간중간 짬이 나면 내 의지대로 꾸릴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날이 좋은 봄날, 아이를 재우기 위해 집 앞 천변을 거닐며 회사에선 느낄 수 없던 한낮의 햇살을 느꼈다.
아이가 자는 동안, 간단한 음식은 직접 만들어서 건강한 밥상을 차려 먹기도 했다.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재워놓고 잠깐 책을 읽을 시간도 생겼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나니 교회의 평일 행사도, 문화 센터도 다닐 수 있었다.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을 만나 커피 한 잔 하고, 집을 오가기도 하며 휴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10년의 시간 동안 회사에 고여 있던 나의 삶은, 시간의 자유,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제라는 큰 파도를 타고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진급 누락으로 인한 슬픔, 좌절은
휴직 기간 동안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