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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미생 Oct 12. 2024

#6 화려한 복직, 다가오는 그림자

돌아간 사무실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복직이 두 달 남은 시점, 돌아갈 생각을 하니 한동안 잊고 있던 진급 걱정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돌아가서 고과는 받아야 하겠지만, 고과에만 의존할 수 없어 진급 점수를 하나라도 더 채워보기로 했다.

중학생 시절, 일본 아이돌 팬이 되어 일본 문화에 심취하게 되었고,

이때 친구들과 일본 가요, 드라마 가리지 않고 보면서 공부하게 된 짧은 일본어가 생각났다.

두어 달 동안 차로 30분 거리의 개인 교습소를 오가며 일본어 회화 시험을 준비했고,

결국 복직 전 점수를 따서 진급에 유리한 고지를 만들어 놓고 복직했다.

일본어 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비운 시간 동안, 육아는 남편이 책임져 주었다.


복직이 한 달 남은 시점, 부서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선배는 내 휴직 기간 동안 실무에서 파트장이 되었다.

복직할 때 본인 밑에 자리가 하나 비었으니 같이 일해보겠냐는 전화였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 우리 회사도 복직자에게 업무를 선택할 권한은 없다.

그저 누군가의 자리가 비면,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 게 복직자의 운명인 것이다.


설명을 들어보니, 부서에서 꽤나 큰 업무인데,

나의 복직 시점에 기존 담당자가 휴직할 예정이었다.

복직할 때 중요한 업무를 받게 되다니!

고과를 받아 진급해야 하는 나는 그것이 행운이라 생각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원래 뭐든 부딪혀가며 적응해 가는 스타일이라 고민 없이 수락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알던 선배는 나에게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다.

직장 생활의 고민도 함께 나누고, 커피도 함께 마시며 수다도 즐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장의 자리에 올라가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걸 그땐 잘 몰랐다.

인어공주가 뭍 위로 올라가기 위해 본인의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꾼 것처럼,

이 선택이 나의 정신 건강과 진급을 맞바꾼 일이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복직 첫날, 사무실 분들께 인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며 가볍게 시작했다.

모시던 부장님은 다른 사업부로 가셨고, 퇴사/파견으로 그룹원이 많이 바뀐 상태였다.

휴직 전 가장 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기에, 평판이 많이 올라간 느낌이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올 해는 진급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밖엔 없었다.

 

복직 시점은 기존 담당자의 휴직이 목전이라,

복직 직후 인수인계부터 받기 바빴다.

인수인계 첫날, 나보다 몇 년 후배였던 초면의 그 친구는 나에게 "계약서 잘 보세요?"라고 물었다.

무슨 뜻이지? 싶었지만 "잘 보는지는 모르겠고 많이 보긴 했죠."라고 대답했다.

그 친구는 나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부러운 눈빛인 것 같기도 하고, 지친 눈빛이기도 했다.

그 후배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 그 이유가 무엇인 지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인수인계가 끝나고 업무에 채 적응하기도 전이었지만 손엔 촉각을 다투는 업무가 있었다.

이미 꽤 지연된 건이라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가 필요했고, 잘 모르는 상태였지만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렇게 복직 열흘만에 신규 계약을 체결했고, 팀의 환영을 받으며 화려하게 신호탄쏘아 올렸다.


그땐 몰랐다.

이 부서는 내가 휴직 전 있던 그 부서가 더 이상 아님을, 몰랐던 어둠이 나를 삼키게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나의 정신 건강을 파괴할 그림자는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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