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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속삭임 Nov 12. 2024

12화 : 걸어서 행복한 여자 (마지막화)

아프고 나서 알게 된 것들

 

 허리가 아파졌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걸으라고 했다. 아프기 전의 나에게, 걷기란 그저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서 걸었을 뿐 걷기 자체가 목적이 된 적은 없었다. 


걸으면 허리가 낫는다고?
걷기가 운동이 된다고?

 허리 통증을 낫게 하기 위해서 여러 치료를 해봐도 수술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고, 의사 선생님도 진통제를 먹으면서라도 걸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매일 걸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너무 추운 날엔 지하 주차장에서 걸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마스크를 쓰고 걸었다. 무더운 여름엔 그늘을 찾아 걸었다. 걸을 수 있는 양이 점점 늘어날 때마다 근력도 조금씩 늘어가고,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갔다. 그리고 날 괴롭히던 허리통증은 점점 줄어갔다.


아파지고 난 이후의 월별 평균 걸음수. 필라테스를 하다가 재발하여 2023년 8월에 리셋되었다. 하루 만보씩은 걷지 못하지만 성장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걷기 운동은 장점이 많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장점은 돈이 안 든다는 점이다. 운동화와 몸, 걷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 가볍게 시작할 수 . 두 번째 장점은 내 마음대로 속도와 경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천천히 걸으면 되고, 활력이 있는 날은 조금 빠르게 걸으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매일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장소를 바꿔 걸으면 운동 정도도 달리할 수 있었다. 약간 오르막이 있거나, 내리막이 있는 곳을 걸으면 자연스럽게 하체근력도 단련되었다. 세 번째 장점은 혼자서도 걸을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혼자 걸으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걸어도 좋았고, 가족들과 친구와 함께 걸으며 시간을 공유할 수도 있었다. 네 번째 장점은 잘 다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네 번째 장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다른 운동들을 시도하다가 허리가 다시 아파지며 공든 탑이 무너졌을 때 새로 몸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데 걷기는 몸이 단시간에 확 좋아지게 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하면 할수록 몸이 편안하고 건강해지도록 돕는 좋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 꾸준히 걸어보니, 진짜 걷기는 허리통증을 줄이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허리 아프다는 사람에게 당당히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걸으세요, 그래야 삽니다.

 





 살다 보면 노래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처음 사랑이 시작될 때 세상의 모든 사랑 노래가 내 이야기 같았고, 사랑이 끝났을 때 모든 이별 노래가 내 것 같았다. 걸으며 음악을 듣던 어느 날,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연스럽게 재생된 음악, 러빔의 '하나님의 열심'이었다. 노래가사를 듣는데 내 이야기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작음도 내겐 귀하다
너와 함께 걸어가는 모든 시간이 내겐 힘이라

조금 느린 듯해도 기다려 주겠니
조금 더딘 듯해도 믿어줄 수 있니
네가 가는 그 길 절대 헛되지 않으니
나와 함께 가자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가주겠니
이해되지 않아도 살아내주겠니
너의 눈물의 기도 잊지 않고 있으니
나의 열심으로 이루리라


'사랑하는 내 딸아'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덩치가 작았긴 했지만, 아프면서 더 보잘것없이 작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작음도 귀하다고 하며, '너와 함께 걸어가는 모든 시간이 내겐 힘이라'했다. 고군분투하며 혼자 걷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픈 시간 동안 너무 힘이 들었다. 회복되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도대체 이 고통이 언제쯤이면 없어질지, 끝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어 늘 답답하고 어둠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래를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고 계셨다. 조금 느린 듯해도 기다려달라고, 조금 더딘 듯해도 믿어줄 수 있냐고. 내가 걷는 이 길이 절대 헛되지 않다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가주겠냐고, 이해되지 않아도 살아내주겠느냐고.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당장 죽고 싶을 만큼 통증에 괴로운 밤들이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나를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왜 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걸까. 고통이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다면 이렇게 사는 게 괴롭지 않을 텐데...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는 시간들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그저 울고 기도하며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낼 뿐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사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의 시간이 주어졌는지 그 뜻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달라진 점들은 있었다.


 내가 해 온 모든 것들이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게 되었다. 내가 내 힘으로 서고, 앉고, 걷고,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못하게 되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은혜로 허락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거저 주어졌다고 생각한 것들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잃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은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자고 되뇌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시야가 선명해졌다. 매일이 흐릿했었다. 눈앞에 주어진 과업들을 해치워가느라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항상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모든 장면들은 흐릿했고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아파서 멈추어보니, 그리고 느리게 걷다 보니 풍경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봄의 핑크도, 여름의 초록도, 가을의 빨강과 노랑도, 겨울의 흰색도, 지나가는 이웃들의 모습도. 그리고 내 삶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사랑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불필요한 것들은 정리됐마음은 깨끗해졌다.


 지금도 통증이 완전 없어졌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오늘 아플 수 있지,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야.' 하며 통증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여유를 배운 것 같다. 지난 2년의 시간들을 세월이 아주 흐른 뒤 돌아본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모든 인생그림이 완성되며 이때 이런 일이 꼭 필요했겠구나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처음엔 아파서 걸었지만, 이제는 걷는 게 좋아서 걷는다. 나는 이제 걸어서 행복한 여자.



<끝.>








'걸어야 사는 여자'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독자님, 작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공감과 위로를 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글을 끝까지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브런치 마을은 참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새로운 글로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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