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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속삭임 Nov 06. 2024

11화 : 며느리 허리에 붙은 귀신을 물리쳐주세요

과욕은 금물, 재발은 방심, 욕심에서 나온다


 내 이야기가 소설이라면 '속삭임씨는 이렇게 회복되어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났을 것이다. 아니다. 갑자기 뛰기 시작하여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는 업적을 세우며 한계에 도전하는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몸이 정말 좋아지긴 했었다. 통증도 많이 줄어서 살맛 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자 남편은 조금 더 강도 높은 근력운동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듣고 보니 계속 걷고 계단 오르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종목을 고민하다가 코어에 힘을 기를 수 있다는 필라테스를 고르게 되었다.


 괜찮다는 필라테스 학원을 찾아봤다. 동네에 물리치료사 출신 원장님이 1:1로 수업을 해주신다는 곳이 있었다. 맞춤식으로 수업을 듣는다면 내 몸상태에 맞게 조절해서 운동을 할 수 있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겨우 3번의 수업 후, 나는 다시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리고 또 입원을 했다...


 그렇게 심한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용수철에 매달린 손잡이를 여러 번 잡아당기고, 한 발로 서기 운동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내 허리는 극심한 통증신호를 보내왔고 괴로움을 참다못해 진통제 수액을 맞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입원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원장님을 원망했었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할 수 있다며 계속 운동을 시켰었기에.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건 원장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내 몸이 아직 보통사람처럼 코어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던 거다. 징검다리를 한 칸씩 건너야 탈이 없는데 빨리 가고 싶은 욕심으로 세 칸, 네 칸 건넜으니 고꾸라질 수밖에...


 마음이 무너졌다.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들이 한순간에 쏟아져내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처음 아파졌을 때처럼 바닥을 치지는 않았다. 새로운 길가는 것과 한 번 가본 길을 가는 것은 다를 것 같았다. 회복해 본 기억이 있기에 그 방법들로 가다 보면 내 몸이 다시 좋아질 라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시간은 많이 걸릴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집안 어른들의 생각은 달랐다. 나아지는 게 지지부진하고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있는 것이 속상했는데, 다시 또 아파졌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 시어머니는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나 점을 좀 보러 가야겠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통화내용이 들렸다. 퇴원 한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쯤이었다. 어머님은 대뜸 점을 보러 가겠다고 하셨다. 주변에 용한 김보살이 있는데 그분한테 한 번 가보겠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웃었다.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가서 곧 나아진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부적하나 받아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머님이 가시지 않았으면 했지만, 다녀와서 어머님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다녀오시라 했다. 그게 문제였다. 처음부터 말렸어야 했는데...



 어머님은 결국 김보살을 만나고 왔다. 그리곤 말씀하셨다. 굿을 하기로 했다고.


뭐 굿이요?!


어머니 말에 의하면 김보살은 어머님 집의 모습, 선산에 묘가 있는 것들을 눈감고도 맞췄다고 한다. 그리곤 얼마 전 이장한 합동묘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한다. 나와 남편이 결혼하고 첫째가 태어날 때쯤, 떨어져 있던 조상묘들을 한 곳에 이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묘에 탈이 생겨 산바람이 불어 내가 아픈 것이라고 했다. 어머님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김보살은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그러고 보면 염려 가득한 표정을 한 손님에게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굿을 한다니!!! 상상을 해봤다.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데 김보살이 와서 내 주변에서 칼춤을 추고 작두를 타는 모습을. 그리고 팥을 마구마구 나에게 뿌리며 "허리에 붙어있는 귀신아, 물러가라!!! 물러가라!!!"하고 외치는 장면을. 오~~~!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건 아니다! 어머님께 굿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남편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다. 당당하다는 MZ세대이지만 어쩔 수 없는 K-며느리이기 때문에 어머님께 직접 거부의 의사를 밝히기는 어려웠다. 남편은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생각해 보니 굿은 정말 아닌 것 같아.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내 살아생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너희들은 신경 쓰지 마라."


어머님은 아주 완강하셨다. 우리가 수차례 전화를 드리고, 형님들이 말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늘 다정하고 온화한 어머님이었지만 한 번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꼭 하시는 고집이 있으신 분이었다. 어머님이 굿을 하기로 결정하셨을 때 우리는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기도할 뿐이었다. '굿만은 제발 안 할 수 있게 해 주세요.'하고.


 

 몇 주가 지난 뒤, 결국 굿판은 벌어졌다. 다행히 장소는 우리 집이 아닌 선산에 있는 묘였다. 어머님말씀처럼 우리는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그날 거사가 치러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평범한 토요일이었고,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놀러 와 아이들을 봐주고 계셨다. 오후가 되어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전해줄 게 있어서 잠시 우리 집에 들르신다고 하셨다.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님께 우리는 자주 농작물을 얻어먹었기에,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을 전해주러 오시나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흔쾌히 오시라고 했다.


 오후가 되어 어머님이 오셨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은 약간은 어색하게, 그렇지만 예의를 갖추며 서로 인사를 하셨다. 어머님과 엄마는 서로 고생이 많으시다고 했다. 아픈 며느리 때문에, 아픈 딸 때문에 우리 집을 오가며 많은 도움을 주시는 데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나누신 것이었다. 인사가 끝나고 어머님 손에 들려있는 검정봉투가 개봉되었다.


"어머님, 그건 뭐예요?"


"아, 이거 요구르트."


" 요구르트예요?"


"아, 오늘 굿했는데, 김보살이 부적 써준 거 태워서 먹어야 된다고 했거든. 이 요구르트에 넣어줄 테니까 먹어."


"네??!!! 제가요? 부적을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 검정봉투 안에 분명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게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다름 아닌 부적과 요구르트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먹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저는 못 먹어요, 어머니."


나는 거부의사를 밝힌 후, 놀라서 얼른 안방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엌 가스레인지에서는 오징어대신 부적이 구워지고 있었다. 그리곤 부적 재를  곁들인 요구르트 칵테일이 제조되고 있었다.


드디어 완성되었고 요구르트병은 내 손에 들려졌다. 색깔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잿빛 색을 띤 요구르트라... 상상해보지 못한 조합이었다.


"어머니, 저 진짜 못 먹겠어요. 저 교회 다녀서... 부적을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연거푸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는 자식한테 몸에 좋은 보약을 먹이는 것처럼 나를 따라오며 얼른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뒷걸음질을 치고 막다른 벽에 다 랐을 때였다.


"얼른 먹으라고...! 흑흑... 내가 오늘 하루종일 땡볕에서 얼마나 힘들게 절하면서 빌었는지 아나. 내가 그렇게 고생하면서 낫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는데 너는 이거 하나도 못 먹나!!!!!!!"


 어머님이 언성을 높이시며 화를 내셨다. 그리곤 울먹이셨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고 지난 5년간 한 번도 화를 내신 적이 없었다. 부족한 며느리였지만 항상 좋은 말만 해주시던 어머니였다. 굿을 하셨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 어머님도 그곳에서 종일 절하면서 빌고 오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죄송해졌다. 내가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죽하면 굿까지 하셨을까. 그제야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머님의 외침을 듣고 친정엄마도 거들었다. 등짝을 가볍게 때리며 '그래, 얼른 먹어라. 너희 어머님이 너를 이렇게나 생각하시는데.' 하며 재촉하셨다.


요구르트병을 들고 빠르게 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거 제 의지 아닌 거 아시죠? 제 마음의 중심 알고 계시죠? 저 이거 일단 먹을게요. 제 몸에서 잘 배출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멘."


재빨리 기도를 한 후, 결국 두 눈을 꼭 감고 부적이 담긴 요구르트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삼켰다.


맛이 어땠냐고? 웩. 부적 재의 탄 맛과 요구르트의 상큼 달콤한 맛의 부조화가 아~주 일품이었다.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을 맛. 별점 0점.


요구르트를 다 마시고 나니 어색한 공기만 남았다. 그냥 순순히 먹을 걸 그랬나 하며 뻘쭘해진 나. 화를 내며 울먹이기까지 한 어머니. 눈치 보며 당황스러워하신 친정엄마. 말리지도 동조하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던 남편. 모두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몰라하는 것 같았다. 일단 그날의 부적 요구르트 촌극은 어색한 채로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 내 몸은 다시 좋아졌다. 동안 매일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걸었다. 계단도 올랐고 재활치료도 받았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통증이 줄고 일상생활을 다시 되찾았다.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며, 차 안에서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보, 이렇게 장도 보고 애들도 볼 수 있게 돼서 정말 감사한 것 같아요. 그땐 진짜 지지리도 아팠는데..."


"그러게, 여보.  고생 많았지. 근데 나도 같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


"그쵸... 여보가 도와준 덕분에 난 버틸 수 있었어요. 와, 생각해보니 그때 어머님이 굿까지 하시고 그랬는데. 나 낫게 하려고, 그쵸?"


"그래, 어머니가 굿도 하셨었지. 여보 근데 어머님이 왜 굿하셨는지 알아요?"


"몰라요. 왜 그런 거예요?"


"지금 와 하는 얘기지만 그때 점 보러 갔을 때 김보살이 여보 3개월 안에 멍석에 말려서 집 밖으로 실려나간다고 했었어요." 


"정말요?!!! 왜 그때 말 안 했어요?"


"여보 괜히 걱정할까 봐. 그걸 어떻게 말하겠어요. 그때 그 얘기하면서 어머니 얼마나 펑펑 우셨는지 몰라요, 나도 덩달아 같이 울고. 여보 잘못될까 봐 어머니랑 나랑 얼마나 걱정했던지..."


 난 전혀 몰랐다. 내가 달안에 죽을 운명이라고 했다고? 남편에게 그 말을 듣고서야 모든 퍼즐조각이 맞춰졌다. 어머님이 왜 그토록 화를 내며 울먹이셨는지, 요구르트를 억지로 먹이려 하셨는지 말이다. 내가 걱정할까 봐, 진짜로 잘 못되기라도 할까 봐 한참을 비밀로 간직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통해  살리고 싶어 했던 어머님의 절실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이 집안에서 막둥이였기에 어머님이랑 나는 나이차이가 40살 정도 났다. 그래서 난 늘 어머님이 어렵고 다가가기가 힘들었고, 어떨 때는 어머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파 힘들 때마다 어머님은 늘 먼저 찾아와 도와주셨다. 처음 구급차에 실려갔던 날도 내 곁에서 간병을 해주셨고, 재활하는 동안도 우리 집에 주무시면서 도움을 주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것이긴 했지만 가까이, 함께 지내는 시간을 통해 어머님과 나는 서로 어렵고 어색한 관계가 아니라 부족함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진짜 가족이 되어갔다.


내가 달안에 죽지 않고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것은 그때 굿을 했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어머님이 아주 애타게 나의 회복을 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내게 전해져, 내가 더 열심히 걷고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 과정에서 원치 않았던 것들이 있긴 했지만 그때 느낀 어머님의 사랑만큼은 나에게 굿(good)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렇게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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