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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속삭임 Oct 30. 2024

10화 : '두려움'이라는 탑을 무너뜨려라.

재활 사부님을 만나다. 엉덩이 근육을 살리면 요통이 줄어든다.


 도수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통증에 아주 민감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통증을 느끼지 못할 작은 터치에도 나는 아픔을 느꼈다. 치료사선생님이 발가락을 살짝만 건드렸을 뿐인데 자극이 신경을 타고 올라와서 허리에 찌릿-하는 통증이 유발됐다. 그래서 가장 아팠던 허리 쪽과 엉치 쪽의 근육은 아예 풀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치료사선생님도 혹시 신경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 말이 나에게는 '당신의 몸은 구제불능입니다. 즉 불치병이지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도수치료를 받으며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실망했고 다시 길을 잃었다. 



 자극을 받아들여 통증으로 인지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 걸까. 신경에 대해서 자꾸 검색을 했더니 알고리즘은 나에게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병이름을 알려주었다.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다. 여러 증상 허리통증, 어깨결림, 근육통도 있었다. 누웠다 일어나면 핑하고 어지럽다거나,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다거나, 뭘 먹으면 체한 것처럼 소화가 안 되는 점 등 내 몸상태와 비슷한 증상들이 줄줄이 써져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온몸이 동시다발적으로 아프고 힘들까에 대한 대답을 한 번에 듣는 같았다. 자율신경실조증을 가진 환자들이 나처럼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녀봐도 검사결과상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듣고 고생한다는 말도 적혀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도 있었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알 수 없었던 나의 병의 이름과 실체를 드디어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자율신경실조증'이란 병을 치료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마침 자율신경실조증 주사치료를 하는 병원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과흥분된 신경의 스위치를 일시적으로 꺼주는 주사라고 했다. 주사 성분은 대부분이 포도당과 생리식염수인데 리도카인이 소량 들어있다고 했다. 주사를 맞으면 효과가 있긴 했다. 분명 맞은 후 3일 동안은 통증이 줄어들었으니까. 그런데 3일쯤 지나면  다시 스멀스멀 몸이 아파왔다.



"환자분, 지금의 통증은 0부터 10까지의 숫자 중 얼마입니까?"


"음......."


주사를 맞으러 가면 의사 선생님은 어김없이 오늘의 통증지수를 물어봤다. '음...' 하는 소리를 내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당장 생업이 불가능하고, 먹고 자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주 큰 제약과 고통이 있으니 당연히 '10입니다.'라고 크게 외치고 싶지만 당장 죽을 만큼의 통증은 아닌 것 같아 숫자를 '8이나 9'로 깎아본다. 또 지난번의 통증을 생각해 보니 주사를 맞고 효과가 있었던 것도 같고, 치료를 받는데 영 효과가 없다고 말하면 의사 선생님이 실망하려나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하면서 하나쯤 더 깎아 적당한 숫자 '7'을 골라본다. 다음번에는 '6'이라고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엔 '통증의 정도를 어떻게 숫자로 나타내란 말이에요!'하고 외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소심하게 생각만 해본다. 음주측정기처럼 '통증측정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측정기를 내 허리에 갖다 대어 '당신의 통증은 10입니다.' 이렇게 명확히 알려준다면 어느 정도는 꾀병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주변인들에게 내가 진짜 아프다고, 너무나도 괴로운 상태가 맞다고 확실히 할 수 있을 텐데...  


 주사위치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도 했다. 척추기립근 주변에 맞은 날은 효과가 있었는데 엉치부분에 맞은 날은 오히려 더 아프기도 했다. 일단 통증에 즉각 효과가 있었기에 한 달 정도 주사를 맞으러 부지런히 다녔다. 12월 말에 가까운 내 생일날, 그날도 주사를 맞고 왔다. 그날따라 몸이 좋아진 게 아니라 시름시름 몸살처럼 더 아파왔다. 남편이 주문해 놓은 초밥이 다 식고 마를 때까지 침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몸이 너무 무거웠다. 저녁때가 한참 지나서야 차가워진 초밥을 깨작대며 먹고 다시 누우면서 이제 이 주사 맞는 것을 멈추어야 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사는 도움을 줄 뿐, 모든 통증들을 한 번에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병의 이름을 찾았다고해서 쉽게 나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 걸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것뿐이었다. 걸으면 확실히 허리의 불편감이 줄고 긴장되어 뭉친 근육들이 조금은 풀어졌다. 걷기 운동은 어느 순간에도 나를 떠나지 않고 친구 같은 존재로 내 곁에 있어주었다.



 

 친정엄마는 내가 아파진 이후로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귀여운 손자들이 보고 싶어서라고 했지만 실은 혼자 애들보랴 집안일하랴 직장일하랴 동분서주로 바쁜 사위가 안쓰러운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사람구실 못하고 메말라 가는 딸의 모습을 머릿속에 상상만 하고 있는 것은 엄마에게 괴로운 일이었다. 조금씩 노력하있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면 엄마의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듯했다. 엄마는 겨울휴가를 통째로 우리 집을 돕는데 쓰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내 곁에 함께 있는 것이 마냥 좋았다.


 낮잠시간, 아이들을 재우고 엄마와 침대에 함께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쭉 구경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한 동영상이 눈에 띄었다.

 

"엄마, 이것 좀 봐봐. 대박. 이게 가능하다고?"


한 병원에서 올린 글이었는데, 동영상 속 어떤 여자분이 허리 한쪽이 비틀어진 모습으불편하게 걷고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 그분은 바르게 교정하며 걸을 수 있게 하는 장치를 하고 러닝머신 위를 걷는 운동을 했다. 그렇게 치료를 받은 후, 몹시 편안하게 그리고 아주 바른 자세로 걷고 있었다. 놀라웠다. 마치 기적을 보는 것처럼.  


"속삭임아, 너도 여기 한 번 가볼래? 엄마가 같이 가줄게. 혹시 모르잖아, 좋아질지. 뭐든 할 수 있는 건 시도해 봐야지. 이렇게 계속 누워있을 수는 없잖아."


 허리가 아플 때 항상 왼쪽만 특히 더 아팠다. 엉치도 왼쪽만 따끔거리고, 다리도 왼쪽만 저렸다. 몸 한쪽만 특별히 더 아프니 이상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병원가서 치료를 받으면 나도 동영상 속 여자분처럼 똑바로 걸을 수 있을까, 몸이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내 몸상태를 설명했다. 디스크 문제가 아닐 수 있다며 예약을 해줄 테니 한 번 와보라고 했다. 믿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다음날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과 짧은 면담 후, 부원장님이라고 불리는 도수 치료사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은 안경을 끼고 깔끔한 흰색 가운을 입고 계셨는데 굉장히 예리해 보이는 눈빛과 인상을 갖고 계셨다. 선생님은 내 mri 사진을 살펴보시고 디스크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셨다. 그리곤 내 몸 이곳저곳을 촉진하시기 시작했다.


"아고, 이거 조졌네 조졌어. 젊은이 몸이 70대 할머니 몸이 되었네. 얼마나 누워있었던 거예요?"


"아픈지는 5개월 정도 되었어요."


"다 누워서 생긴 병이에요. 몸에 근육이 다 빠져가지고 뼈만 만져지잖아. 엉덩이근육도 하나도 없고. 누워있으면 꼬리뼈가 아프겠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엉치부분이 너무 아프고 누워있어도 배겨요."


"잘못하면 욕창 생길뻔했네. 이제부터 누워있지 마세요. 무조건 움직이려고 해야 돼. 그래야 낫지. 하도 안 움직여서 지금 근막들이 다 근육에 달라붙어가지고 유착되어 있어요. 한 번 풀어볼게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였다. 누워있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운동해야 하는지,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아프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지 도통 물음표였다. 선생님은 허리부터 골반, 다리 몸 곳곳의 통증유발점들을 찾아 누르고 흔들며 굳어있는 몸 곳곳을 깨우기 시작하셨다. 시원하면서도 너무 아팠다. 악소리가 나도록 너무 아팠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선생님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와 카리스마에 일단 기가 눌렸고, 내가 아팠던 곳들을 족집게처럼 딱딱 집어내는데 선생님의 전문성이 느껴져 치료과정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30여 분간 내 몸 곳곳은 흐물흐물한 느낌이 될 때까지 풀렸다.


"자 이제 일어나 보세요. 생활하면서 어떤 동작을 할 때 제일 아프고 힘들어요?"


"의자에 앉을 때 너무 힘들고, 일어날 때도 힘들어요."


"내가 손 잡아줄 테니까 한 번 앉아봅시다."


 치료실 가운데에 벤치 같은 의자가 있었다. 일반 의자보다는 높이가 낮아 보였다. 너무 낮은데 과연 내가 앉을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앉으면 허리가 뻐근해져 오는 게 느껴져서 서거나 누우며 그동안의 시간을 보내왔다. 등받이 없는 의자는 시도조차 았던 나였다. 치료사 선생님 두 손을 잡고 슬~며시 앉아보는데 워낙 오랜 시간 앉는 동작을 안 하다 보니 온몸이 할 수 없다고 저항하는 듯했다. 뻣뻣한 몸의 뒤쪽 부분을 조심스레 굽히며 겨우 앉아보았다.


"되네! 앉을 수 있네. 이제 한 번 일어나 봅시다."


마음은 '할 수 없어요'하고 외치려 하고 있었지만, 선생님이 손을 끌어당겨주시는 통에 정신없이 나는 일어서고 있었다.


"좋아요. 아주 잘했어요. 지금부터는 몸이 이 동작들을 기억하도록 계속 반복해서 해보는 거예요. 10번만 해봅시다."


"10번이요? 1번 하는 것도 너무 힘든데..."


"할 수 있어요. 손 잡아줄 테니까. 그리고 하다 보면 점점 더 쉬워지는 게 확실히 느껴질 거예요. 자, 시작!"


'끄응 차'하고 앉고 '여엉차'하고 일어나기를 1번, 2번, 3번... 신기하게도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처음보다 동작이 부드러워졌고, 5번을 넘어설 때부터는 선생님의 손을 놓고도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앉았다 일어나고 있었다. 10번을 마쳤을 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친정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내 빌빌거리던 딸이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을 목도하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선생님께 연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셨다. 분명 이 병원에 오기 전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앉고 서지 못했던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고 있었다. 홀린 듯 선생님의 이끌림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동안 얼기설기 쌓아온 두려움이라는 탑이 어이없게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꾸준히 재활도수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유착된 근육을 풀어내는 한편,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몸에게 정확한 근육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방법들을 배웠다. 선생님은 요통을 해결하려면 '엉덩이근육'을 키워야한다고 하셨다. 엉덩이 근육만 튼튼해져도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허리와 엉치통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시며, 누운 상태에서 엉덩이를 드는 동작을 시키셨다. 허리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근육을 조인다는 느낌으로 동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안 쓰던 부위를 단련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선생님은 집에서도 운동을 하도록 숙제를 내주셨고, 나는 꾸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근육만져보시면 한 주 동안 운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바로 들통났기 때문에.




 하루는 선생님께서 뭉친 근육을 다 푼 뒤,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이전의 치료를 받을 때, '낮은 경사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도 무섭게 느껴지고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요.'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었. 지하주차장의 오르막은 경사가 꽤 있어보였다.


 "자, 잡아주고 밀어줄 테니까 오르막 한 번 올라봅시다."


"선생님, 저 절대 못할 것 같아요. 경사가 너무 가팔라요. 아파트 현관 오르막도 힘들어서 겨우 올라가는데 이걸 어떻게 해요. 전 못해요."


"아 글쎄, 할 수 있어요. 내가 근육 다 풀어놨고 나중에 다시 뭉친 거 다 풀어줄 테니까 걱정 말고 따라와요. 속삭임씨는 의심이 많은 게 문제야. 자기 몸을 믿고 한 번 해봐요. 이거 했다고 디스크 터지거나 하지 않으니까 겁내지 말고. "


오르막을 올랐다. 한 발, 한 발 무겁게 느껴지는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높아 보이는 오르막길도 막상 한 발씩 오르다 보면 생각보다 경사가 그리 높지 않게 생각되는데 하기도 전에 왜 지레 겁부터 나는 건지. 선생님말이 맞았다. 의심이 많은 문제였다. 몸을 믿지 못했다. 어떨 때는 움직이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안 하던 동작들을 하면 디스크가 터져서 다시 아파지는 극단적인 상황을 항상 상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딪히기보다는 회피하기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활운동을 하며 생각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약간의 근육통은 생기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파국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선생님은 내 몸을 훈련시켜주고 있었지만 내 마음도 함께 훈련시키고 계셨다. 나를 단순히 지나가는 명의 환자로 생각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영혼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에게 선생님은 재활치료 사부님이자 다시 일상을 살게 해 주신 은인이었다.



 몸에 조금씩 근육이 붙어가면서 나는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문을 밀지 못해 편의점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은 없었고, 바닥에 떨어진 둘째의 기저귀도 주울 수 있게 되었다. 500ml 생수병을 들 수 있게 되었고, 양말도 스스로 신을 수 있게 되었다. 도저히 썰 수 없었던 감자와 당근을 칼로 썰어낼 수 있는 허리힘이 생겼고 냄비나 후라이팬 정도는 들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1시간 정도는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과 근교에 나들이를 가서 예쁜 꽃과 하늘을 보았을 때 나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평범한 일들이 더 이상 결코 평범하지 않았기에 너무 그리웠던 일들이었다. 매일매일의 시간 속에서 세상은 아름다웠고 감사할 것 투성이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그림 출처

1. 제목 그림 : Midjourney ai 생성그림

2. 엉덩이 근육 강화하기 그림 : https://blog.naver.com/lghmms/223089684241?photoView=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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