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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속삭임 Oct 23. 2024

9화 : 제 복근 운동법은 웃는 것입니다.

걷기 운동을 계속하다, 도수 치료를 시작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절로 나오는 말이 있다.


'역시 집이 최고야!'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입원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우리 집이 최고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부산스러운 병실과 달리 집은 공기마저 차분하고 아늑했다. 마스크를 24시간 쓰고 있지 않아도 되니 숨 쉬는 것마저 자유롭다. 시어머니께서 그간 고생했다고 따뜻한 밥도 준비해 주셨다. 집밥을 먹고 편안히 쉬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낙원이었다. 무사히 집에 돌아온 것에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기쁨도 잠시, 일상의 작은 어려움들을 자꾸 마주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간병인 이모님이 일일이 나를 도와주셨는데 집에서는 모두 스스로 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시 눕는 일도, 화장실 그 낮은 턱을 내려가는 것도, 바지를 입고 양말을 신는 것 모두 아직 버겁기만 했다. 그때마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여보~"하고 불러야 했는데, 안방 침대에서 내가 최대한 큰 소리로 부른다고 불러보아도 방 밖에 있는 남편에게 잘 닿지가 않았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지 않아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떨 때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남편을 부르기도 하였다. 남편은 힘들어했다. 어린 두 아이를 돌보고 각종 집안일을 하면서 나를 돕는 일까지. 과부하가 걸릴 만도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다 보니 가족들에게 짐 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자꾸 움츠러들었다.


"여보, 움직이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더 시도해 봐요.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은 내 손을 잡지 않고도 할 수 있잖아요."


"아직 난 못 해요. 여전히 아프다고요. 나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요!"


괜스레 화만 벌컥 내며 토라지기도 하였다. 더 노력해 보라는 남편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다. 여전히 나의 가장 큰 적은 더 아파질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조금씩 움직이려고 노력해서 낫는 것뿐이었다. 그제야 입원했던 첫 번째 병원에서 만났던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할머니들은 아파도 움직여야 낫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집안에서 벽을 잡고 조심조심 걸어보았다. 달팽이처럼 느렸지만 분명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2주 정도 집 안에서 걷기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밖에서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리 보호대를 단단히 메고 용기 내어 밖으로 나가보았다. 집안에서 걸을 때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보도블록은 편평하지 않고 높낮이가 제각각이라 울퉁불퉁했다. 워낙 근력이 없다 보니 길의 수평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몸이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쁘게 걷고 뛰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 혼자 슬로모션이었다. 그래도 꿋꿋이 한 발 한 발 정성스레 디뎌보았다. 아파트단지를 겨우 반바퀴 돌았을 뿐인데 만보는 걸은 듯 기진맥진해서 외출은 하루 1번이면 아주 족했다. 그렇게 매일 걸었다. 한 달 뒤에는 하루 걸음수를 다 합해서 2천 보정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계속 평온히 좋아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안 쓰던 근육들을 쓰다 보니 몸 여기저기가 돌아가며 아파왔다. 하루는 종아리가, 다음날은 무릎이, 그다음 날은 허벅지가. 문제는 걸을 때마다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와 운동을 하는데 제동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삐그덕 대는 몸의 가동성을 높여줄 재활치료가 필요했다. 내가 는 곳은 중소도시라 재활병원이 몇 군데밖에 없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하는 병원 찾아갔다. 재활병원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상태를 보시고 도수치료를 권해주셨다. 척추환우카페에서 도수치료를 받고 상태가 더 나빠졌다며, 비추천한다는 댓글을 봤던 게 생각나서 멈칫하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이니 일단 치료를 받아보고 판단하자고 생각하며, 과장님이라고 불리는 치료사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도수치료실에 들어갔더니 40대 초반정도 되어 보이는 건장하고 인상 좋은 남자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인사를 할 때부터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시는 게 참 넉살 좋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신 분인 것 같았다. 그동안 치료를 어떻게 받아왔는지 간단히 설명드리고 지금은 등허리 쪽과 엉치 쪽이 제일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둘째를 출산한 지 아직 7개월밖에 안 돼서 아직 몸이 약하다고 살살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 와이프분도 아이를 낳고 나서 잇몸이 약해지고 치아가 뭉텅뭉텅 빠져서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하시며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고 공감해 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며 치료는 시작되었다. 도수치료라고 하면 힘줘서 우두둑 뚝뚝 소리가 나게 관절을 맞추는 카이로프랙틱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상과는 다르게 내 몸 상태에 맞게 아주 부드럽게 근육들을 마사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혹시 엎드려 누워볼 수 있어요?"


"아뇨, 허리를 비틀듯이 움직이는 게 잘 안되고 엎드려 눕기도 힘들어요. 아픈 부위들은 손가락만 갖다 대도 통증이 밀려오는 것 같아서 무서워요."


"허리와 엉치 쪽을 바로 만지는 게 부담스러우시면 연결된 주변 근육부터 천천히 풀어갈게요. 일단 몸 앞쪽뭉친 곳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아픈 부위가 아닌 다른 부분의 근육과 근막을 풀어준다고 했다. 뒤쪽이 아픈데 앞쪽을 푼다고? 의아했다. 허벅지 근육과 정강이 쪽의 아픈 부위를 지그시 눌러가며 마사지해 주시는데 희한하게도 아주 질긴 고무처럼 팽팽하던 뒤쪽 근육들의 긴장도가 약간씩 낮아지는 게 느껴졌다.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선생님, 신기해요. 허리 쪽의 불편감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정말요? 다행이에요. 우리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결되어 있답니다."


 책에서나 보던 '인간은 유기체이다.'라는 명제가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허벅지근육을 풀었는데 무릎아래 통증이 사라지고, 목과 어깨 근육의 뭉침을 풀어주었을 뿐인데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며 소화가 잘 되었다. 한 군데가 아파지니 몸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던 것처럼 나아갈 때도 이렇게 작은 부분씩 좋아지다 보면 도미노처럼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여러 차례 도수치료를 받으면서 내 몸의 코어가 무너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번의 임신기간 동안 뱃속에서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나의 복직근은 벌어질 대로 벌어져있었다. 그런데다 통증으로 누워있던 기간이 길어지면서 복부근육은 약화되어 흐물텅거리는 뱃가죽만 형편없는 모양으로 남아있었다. 허리가 아프지 않은 상태라면 크런치나 플랭크 같은 복근운동을 했겠지만 그런 운동은 시도조차 어려운 몸상태였다. 


"배에 힘을 줘보세요."


"배에 힘이 안 들어가요 선생님. 어떻게 힘을 주는지 까먹었어요."


"그럼 쉬운 것부터 해봅시다. 복식호흡을 해보는 거예요. 복식호흡을 잘하면 복횡근이라는 부분이 강화돼. 그러면 자꾸 삐끗거리는 허리도 많이 안정될 거예요.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집에서 누워있을 때 가만히 있지 말고 호흡운동을 자주 해보세요."


"네 선생님. 그럴게요."


"자, 일단 편안하게 누운 상태에서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셔요. 배가 풍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빵빵해질 때까지 공기를 점점 채워 넣어보세요. 이때 허리를 들면 안 되고 등을 바닥에 붙여요. 배가 부풀었으면 이제 입으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숨을 내뱉어보세요. 그러면 맨 마지막에는 배에 힘이 딱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 호흡운동을 틈날 때마다 해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나는 그동안 숨을 가슴으로 아주 얕게 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호흡을 하기에도 부실한 근육이었던 걸까. 복식호흡법을 알려주신 대로 집에서도 꾸준히 해보려고 하였다. 숨을 들이마셔서 배가 빵빵해질수록 배와 허리근육이 사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빵빵하게 넣으면 허리가 조금 뻐근해져 오길래 되는 만큼 천천히 연습해 보기로 했다. 속도는 느려도 방향만 맞다면 언젠가 내 복근에도 힘이 생길 것이라 믿으며.






 어느 날 도수치료를 받는데 선생님이 물으셨다.


"속삭임씨,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을 때 뭐 하면서 시간 보내요?"


"음... 노래를 듣거나 목사님 말씀 들어요. 예능 같은 거 틀어놓을 때도 있고요."


"그렇군요. 잘 보내고 있네요. 왜 물어봤냐면 웃긴 이야기 같은 거 들으면서 많이 웃어보라고요. 웃으면 통증도 줄어들고 복부에 근육도 생겨요."


"에이, 정말요? 웃으면 복근생긴다고요?"


"네, 한 번 소리 내서 웃어보세요. 이렇게 웃으면 배에 힘이 딱 들어가는 게 느껴지죠? 우리가 심하게 웃으면 배도 당기잖아요? 내복사근 활성화에 절정의 웃음운동이 크런치운동보다 효과가 있었다는 논문도 있어요. 그리고 웃을 때 나오는 엔도르핀은 자연진통제 효과도 있데요. 통증도 덜 느끼게 해 준다네요. 그러니까 많이 웃어요."


 치료사선생님이 농담 삼아 이야기해 주셨다. 웃으면 저절로 복부운동이 된다니. 배에 힘이 없어 윗몸일으키기도 함부로 시도해 볼 수 없는 나에게 쉽고 안전하면서도 당장 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 같았다. 돌이켜보니 아픈 후부터 소리 내어 웃은 기억이 없었다. 미소조차 언제 지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보았다. 지쳐서 텅 빈듯한 눈빛, 약간은 찌푸려진 듯한 미간, 초췌한 안색을 한 여자가 그 속에 있었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았다. 입꼬리를 올려봐도 어딘가 어색한 웃음이었다.


'주님, 웃으면 나아질까요. 다 지나갈까요? 이 지긋지긋한 허리통증도, 불편감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까요? 웃다 보면 다 잊힐까요. 구급차에 홀로 실려가던 그 밤의 차가움, 대학병원 침대에서 사무치게 외로웠던 시간들도. 잊혀지겠죠? 다 지워지는 거겠죠?'






 치료사선생님 말대로 재밌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어보기로 했다. 유튜브에 '웃긴 이야기'라고 검색해 봤다. 그중에 '컬투쇼 레전드 사연'이 마음에 들어 눌렀다. 익살스레 상황을 연기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듯. 연신 폭소할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평소와 다르게 깔깔대고 있으니 첫째 아이가 '엄마, 뭐 재밌는 거 있어?' 하며 내 근처에서 함께 웃어주었다. 웃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운도 좋아지려나. 웃음이 자연진통제가 맞긴 한 것 같았다. 내 처지도, 내 통증도 웃는 동안만큼은 잊게 해 주었으니까.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그림 출처 : Midjourney ai 생성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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