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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속삭임 Oct 09. 2024

7화 : 두 번째 걸음마

대학병원에서 걷기 재활을 시작하다


 입원실의 밤은 소란하다. 환자들의 코 고는 소리, 수시로 환자를 체크하느라 드나드는 간호사 선생님 인기척 소리 거의 선잠을 잔다. 새벽 6시가 겨우 지난 이른 시간부터 일과는 시작된다. 교수님들이 회진을 돌기 전, 환자들의 몸상태를 점검하며 병실의 전등은 켜지고 아침이 된다. 밤새 뒤척인 탓에 비몽사몽으로 겨우 아침밥을 입에 조금 욱여넣으면 8시 가까운 시간 교수님이 회진을 오신.


 "오늘부터 재활운동을 할 수 있게 워커를 빌려드릴게요. 이렇게 손잡이를 잡고 이동하면서 걷기 연습을 하는 겁니다. 처음이니까 일단 제자리걸음부터 차근차근해보세요. 지금 한번 일어나서 같이 해봅시다."


걷기 재활 연습용 워커. 보행보조기라고도 한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 겨우 일어나 워커 앞에 서보았다. 이런 기구를 이용해서 걷기 재활을 할 수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넘어지지 않게 양팔을 바칠 수 있으니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무거운 발을 천천히 들었다 떼는 시늉을 내보았다. 교수님은 저녁에 와서 얼마나 운동했는지 확인할 거니까 하루종일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시고 가셨다. 교수님이 나가시자 병실에 다른 환자들이 나보고 교수님 참 잘 만났다고 했다. 선생님은 회진도 늘 제일 먼저 오시고 하루에 여러 번 병실을 다녀가시면서 환자들을 정성스레 돌보아주신다고. 입원환자에게 하루 한 번 있는 회진 시간은 너무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내 몸상태와 검사결과가 너무 궁금하고, 언제쯤 퇴원가능한 지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사막에도 물은 있다고 연이은 불운에도 행운 하나쯤은 찾아오나 보다. 이제 조금씩 좋아지려고 그러나 하는 마음이 들며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져 왔다.



 간신히 일어서보니 누워있을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입원실의 풍경도 보이고 근육과 살이 다 빠지고 앙상해진 내 다리도 보였다. 입원한 이후로 아예 걷지를 못해서 몸이 많이 달라졌음을 그제야 알았다. 워커 앞에 서서 제자리걸음을 시도해 본다. 한 발을 디뎌보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마치 근육이 아주 땡땡하고 질긴 고무가 된 것처럼 뻣뻣해져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걷는 방법도 어버렸다. 발 뒤꿈치, 발바닥, 발 앞꿈치가 자연스럽게 디뎌져야 하는데 관절이 고장 난 듯 뻑뻑하기만 하다. 겨우 일주일 안 걸었을 뿐인데 걷는 법을 잊었다니. 충격이었다. 마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걸음마를 배우몸에 익을 때까지 새롭게 걷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고모집에 있을 6개월 둘째가 떠올랐다. 넘어져도 계속 무언가를 잡고 서려고 하던 아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던 모습이. 아이보다 더 못 걷는 엄마는 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넘어지더라도 계속해서 걸어보리라 생각하며 한 발씩 조심스럽게 디뎌보았다. 그렇게 2시간마다 한 번씩 일어나서 연습해 보고 또 누워서 쉬었다가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냈다. 나에게 그 걸음들은 이대로 침대에서 시들 수 없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다음 날, 제자리걸음은 터벅터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 연습을 조금 해보기로 했다. 한 손은 복도에 설치된 봉을 잡고, 한 손은 남편의 손을 잡았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뎌 본다. 걸음이 너무 무겁다. 그동안 어떻게 가볍게 걸어왔던 걸까. 평소에 걷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임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마치 공기처럼, 물처럼 걷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꼭 잃어야만 얼마나 감사한 것인 깨닫는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님을. 마음을 먹었다고 금세 뚜벅뚜벅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씩 느리게 좋아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데 현실은 여전히 출발한 위치 근처이다. 마음과 현실의 괴리. 그것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 참 어려웠다.

 

한 발, 한 발 걷기연습을 해본다.



 병원생활동안 좋았던 점도 있었다. 남편과 단 둘이 보낸 시간들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나를 바라보고 일부러 농담을 하고 내 곁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주는 남편이 정말 고마웠다. 남편의 도움 없이는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남편에게 화장실 물을 내려달라고 하고, 화장실에서 부축을 받을 때는 아주 민망했다. 아직도 남편에게 예쁘다는 이야기 듣고 싶은데. 밤에 불편하고 작은 보호자 베드에서 남편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초라한 순간, 불평하지 않고 나를 붙잡아주는 이 사람. 다 나으면 좋아하는 김치찌개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고. 아이들을 키우며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고 워커를 이용해서 혼자서도 조금 걸을 수 있게 된 무렵, 이제 다른 층에 있는 재활치료실로 이동하여 훈련을 한다고 했다. 아직 잘 걷지 못하니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재활운동을 하러 갈 때마다 휠체어를 탔는데 생각보다 많이 불편했다. 병원 실내를 다니는데도 땅 울퉁불퉁해서 허리에 충격이 갈 때가 꽤 있었, 곳곳에 위치한 작은 턱들은 내가 넘기 힘든 높은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만원인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 그냥 보내고 다음번까지 기다려야 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향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았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문을 열 수 없었고, 스위치에 손이 닿지 않아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다. 휠체어를 타보지 않고는 몰랐던 일들이었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자꾸 찾아오는 자괴감이었다. 작은 한계들에 자꾸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못해. 나는 이제 못하는 사람이야.' 하는 생각이 쌓여가 나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무너뜨리려 했다. '그래, 너는 그런 사람이야, 너는 다 내려놓고 얼른 포기해라'하며 의도가 통했다는 듯 마음껏 비웃는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낼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었다. 이대로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반드시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사진 및 그림 출처

1. 첫 번째 사진 : 시니어스 nulchansilver 블로그

2. 두 번째 그림 : copilot ai 생성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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