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입원기-5, 외로운 내면아이, 완벽주의, 그리고 인정주의
나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친척집 여기저기에 맡겨져 자랐다. 그리고 5살 무렵부턴 아예 외할머니에게 전적으로 맡겨져서 키워졌다. 주말이 유일하게 부모님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나는 항상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냈고, 어쩌다 부모님의 일이 바빠져서 주말에 날 데리러 오시지 못하게 되면, 부모님이 날 찾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엉엉 울고 외할머니께 부모님을 불러달라며 떼를 썼다. 동생이 태어나고 좀 자란 후 유치원에 갈 무렵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외할머니댁 바로 앞에 살며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부모님은 정말 적은 시간만 집에 계셨고, 그 적은 시간에도 항상 싸우셨다.
그러다 보니 나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고, 항상 그것들을 갈구했다. 열심히 잘하면 부모님이 날 봐줄 줄 알았다. 날 필요로 할 줄 알았다. 그리고 또 그때의 나는 그들의 불행이 마치 나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했고, 내가 잘 해내면 그들을 불행에서 구원할 줄 알았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버린 나는,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하는, 잘 큰 독립적인 첫째 딸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나는 항상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뭐든 척척 잘 해내야 했고, 완벽해야 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만 했다. 그런 것들에서 그나마 살아있음을 느꼈었다고 해야 할까. 참, 지금 생각하면 정말 외로운 삶이었다. 어린아이가 살기엔 세상이 너무도 흑백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흑백 세상 속에 나는 아직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