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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Jul 05. 2024

우당탕탕 캠핑일기_2

병지방캠핑_둘째 날 이야기.

캠핑_둘째 날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텐트 밖을 나오니 구세주 아저씨가 환하게 인사를 한다. 

근데 표정이 야릇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텐트는 방음이 안 된다.

‘ 이런 젠장….’

세상에 이런 바보들이 따로 없다.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이 여자친구는 내게 화장실에 가자고 했다. 

우린 마치 분업하듯이 나는 동전을 챙기고 여자친구는 휴지를 챙겨서 다시 그 짤랑이 아줌마에게로 갔다. 


낮부터는 이제 신나게 놀기만 했다. 어제의 힘들었던 기억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계곡물에 입수했고 우리 둘만의 물놀이였지만 1초도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병지방 계곡은 얕은 물과 허리 정도의 수심, 그리고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깊은 물까지 다양한 것이 장점이라서 우리는 계곡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신나게 물을 즐겼다. 물론 난 세수도 못 한 상태라 자연스레 우리 몸이 깨끗해지기를 기대한 것도 있었다. 


계곡에서의 물놀이를 마치고 배고픔과 한기를 느낄 때쯤 우린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오늘 밤도 춥지 않을까? 여긴 한여름인데도 춥네 ”

우린 잠깐의 고민을 하고는 바로 시장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 이불을 사 오자 ”

내가 말했고 여자친구도 흔쾌히 동의했다.


“ 이불이야 집에서 계속 사용하면 되니까 아까워하지 말고 그냥 사 버리자”

난 이 한마디 말로 이불을 사 오는 것이 낭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시장은 하나로마트를 끼고 있었다. 아니, 하나로마트가 시장 안에 있었기 때문에 우린 자연스레 마트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시장은 생각보다 컸고 우린 골목을 다니며 이불을 켜켜이 쌓아놓은 이불집을 발견했다.


“이불 좀 주세요”

아주머니는 한여름 날씨를 의식한 것인지 우리에게 얇은 이불을 제안했지만, 우리 둘의 눈은 저 뒤에 있는 두꺼운 이불에 향해있었다.


“ 두꺼운 걸로 주세요 ”

가격은 중요치 않았다. 이불을 사고 나니 벌써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한여름의 뜨거운 날씨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이불을 사서 차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여자친구를 돌려세웠다.

“ 나 삽도 하나만 살까?”

여자친구는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눈을 흘겼다.

“ 난 원래 집이 아닌 다른 화장실은 잘 못 가. 그냥 밖에서 처리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아 ”

난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소리를 떠들어대며 여자친구를 설득했다.

“ 그럼 나한테 강요하진 말고 자기만 알아서 해 ”

여자친구는 조건부 승낙을 했고, 난 무슨 이유인지 신이 나서 철물점으로 향했다.


노란 손잡이가 있는 삽을 발견하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2개를 살까? ’

왠지 양손으로 땅을 파고 흙을 퍼담아야 더 쉬울 것 같았다.

“ 모종삽 2개 주세요 ”

이미 말은 내 입을 떠났고 난 500원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렀다. 


텐트에 돌아온 우리는 신이 나서 이불을 깔았다. 

평소에는 새로 산 이불을 덮기 전에 깨끗이 빨래부터 하는 여자친구도 지금 상황에서는 개의치 않고 이불의 포근함을 즐겼다.

“ 와 이제 살 것 같다 ”

잠자리를 제대로 갖추고 나니 극심한 허기를 느꼈다.

“ 우리 이제 뭐 먹지? ”

여자친구는 자신의 요리실력을 뽐내려 엄청난 크기의 냄비를 준비해왔었는데 난 그때 알았다. 그건 찜닭을 위한 것이라는 걸. 

전자레인지는커녕 매점 앞 수도꼭지가 전부인 노지 야영장에서 찜닭이라니….

난 걱정이 됐었지만 일단 쌀을 씻어 밥을 짓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점까지 가는 게 귀찮다고 계곡물에 대충 헹궈서 밥을 지었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도 이런 방귀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 여기 계곡은 바로 먹어도 되는 물이라서 저 물로 밥을 해도 될 거야 ”

이때 난 소변이 급할 때 후다닥 계곡에 들어가서 해결했던 내 행동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남자들이 그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더욱더 하지 못했다. 


찜닭이 되기까지 허기를 달래며 맨밥에 김치만 씹으면서도 우리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사랑에 미치면 딱 이렇게 되는 것이다. 힘들게 차린 식사를 마치고 부른 배를 두드릴 때쯤 또다시 걱정이 생겼다.


‘ 이거 설거지가 너무 어렵겠는데? ’

벌건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냄비를 보며 걱정하고 있던 순간, 그 고민을 할 시간도 없이 여자친구는 나에게 신호를 줬다.

“ 화장실….”

내가 약간 귀찮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끝까지 맺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난 오히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

“ 어? 가자, 가자 ” 

굳이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해서 말하면 내 감정을 조금은 숨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설거짓거리를 챙겨서 금방 따라갈 테니 혼자서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나 할 법한 말이었지만 그 당시 난 진심으로 걱정하며 물었다.

“ 응, 좀 그렇긴 하지만 먼저 가볼게 ”

여자친구도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걱정됐는지 먼저 간다고 답했다.

“ 어 그럼 먼저 가 있어. 금방 따라갈게 ” 


난 큰 냄비에 식기들을 차곡차곡 담아서 화장실이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 그때 설거짓거리를 들고 가는 다른 여자분을 발견했는데 난 그때 삼촌 장비에는 없는 캠핑 필수품을 발견했다.

‘ 설거지통.’

동그랗게 생긴 모양에 두꺼운 방수가죽으로 만들어진 그 제품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 다음엔 꼭 사야지 ’

모든 장비가 다 있다고 큰 소리치던 삼촌의 장비중에는 이 필수품이 빠져있었고 그때 난 그 설거지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매점의 열악한 수도를 이용해서 설거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 가며 벌건 기름기를 닦아 내는 것이 곤혹이었는데 그나마 내 뒤의 줄이 짧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화장실 줄이 워낙에 길어서 내가 설거지를 끝낼 때쯤 여자친구가 볼일을 마치고 나왔고 난 이유 없는 환한 웃음으로 그녀를 반겼다.


다시 개운해진 몸과 마음으로 텐트로 돌아갈 때 계곡을 건너는 다리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감상했다. 아마도 그때서야 좀 여유가 생겼나 보다.

“ 와 진짜 맑다 ” 

흔하디흔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우린 계곡을 한동안 지켜봤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보며 행복에 젖어 있을 때는 오늘 밤 나에게 일어날 일을 알지 못했다. 


과식을 한 것인지 밤이 되자 배가 스르르 아파져 왔다. 아직 여자친구 앞에서는 방귀도 뀌지 못하는 사이다보니,  뱃속의 가스까지 참느라 더욱 긴급하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난 방귀 같은 말만 계속 떠들어 댔을 뿐 정작 방귀는 뀌지 못하고 있었다. 

배가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고 아픈 것인지, 꽉 차서 그런 것인지 이유는 몰라도 결론은 확실했던 그때쯤. 난 급히 삽을 찾아 나섰다.


여자친구는 허둥대는 날 보고 무슨 일인지 당황하며 물었지만, 난 차마 눈도 맞추지 못하고 내 행동에만 집중했다. 아까 태무심하게 던져둔 삽이 어딨는지 도저히 보이지 않았고 내 마음은 점점 급해져 갔다. 한참을 텐트 주변을 뒤진 끝에 어둠 속에 숨어있던 검은 봉지를 발견했고 난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난 머릿속으로 노란 손잡이를 그리며 찾고 있었는데 사실 손 삽은 검은 봉지에 쌓여 있었고 계곡의 어둠은 그것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 더는 참을 수 없어 ’

겨우겨우 막아두고 있던 녀석들이 쏟아져 나올 기세였다.

“ 으…. 휴지 ”

난 여자친구에게 짧은 단어만 겨우 말할 수 있었는데 그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그녀는 특전사와 같은 몸놀림으로 텐트 안에 있던 휴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난 급한 와중에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최대한 어두우며 눈에 띄지 않을 곳을 찾아 나섰다. 이윽고 찾아낸 그것을 위한 명당!!

난 주저 없이 바지를 내린 후 쪼그려 자세를 취했고 세상의 모든 근심을 거기에 쏟아 버렸다.

‘ 휴…. 정말 죽을뻔했네 ’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스스로를 칭찬하듯 혼잣말이 나왔다.

급한 녀석들은 해결이 되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에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쯤 문제의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설마 하는 생각으로 나는 계속 쪼그리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자 그의 모습이 더 선명해졌고 그 남자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자신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음악을 느끼는 척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명당을 찾은 적 있던 내 눈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 그는 분명 명당을 찾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그 명당은 내 눈에도 띄었던 바로 이곳이 될 터였다. 

그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목적일 테니…. 


나는 어둠 속에 쪼그리고 앉아있고, 그는 여유로운 척 시선을 여기저기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기에 초점 없는 그의 눈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내 더 이상의 불상사를 막기 위한 내 행동이 시작되었다. 

한 손으로는 바지를 움켜잡고 다른 한 손은 번쩍 들어 파닥거리며 여기에 이미 사용자가 있음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야!! 오지마! 여긴 이미 임자가 있어~' 

아마 표정으로는 욕도 한 것 같다. 

엉덩이를 까고 파닥거리는 내 모습이 너무너무 민망했지만, 그가 더는 내 곁으로 다가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몇 걸음 더 다가온 그는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상체가 뒤로 젖혀지는 듯하더니 급하게 고개를 돌려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지만, 입으로는 이렇게 속삭였다.

‘ 드럽게 눈치 없네 ’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하고 나니 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개운한 마음으로 텐트로 돌아와 여자친구에게 무용담처럼 그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 꺄아~ ” 그녀는 질겁을 했지만, 난 우리 여행의 또 다른 농담거리가 생겨서 즐거웠다. 

그날 밤은 갑작스런 비가 내려 유독 추웠다. 만약 시장에서 이불을 사 오지 않았더라면 우린 차에서 히터를 틀고 자야 했을 것이다. 

두툼한 이불의 도움으로 우린 이불속에서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는데 좀 전에 겪었던 나의 즐거운 무용담은 끊이지 않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키득거림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처럼 소리를 내다가 따뜻한 이불의 마법에 취해 스르륵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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