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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Jul 05. 2024

우당탕탕 캠핑일기_3

병지방캠핑_셋째날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않아 우린 꾀죄죄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내 눈에 그녀는 여전히 예뻤지만 여자친구는 자신의 그 모습이 좀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난 또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대안을 ‘묘안’인 것처럼 또 떠들어댔다.


“ 우리 물놀이 먼저 하고 와서 밥 먹을까? ”


여자친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런 미친 소리에도 알겠다며 따라나섰다. 아마 그녀도 물에 젖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으리라.


 


목적이 따로 있었으니 물놀이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몸만 젖은 채로 우리는 텐트로 돌아왔다.


“ 이제 뭐 먹지? ” 라는 그녀의 말에 난 신나게 계곡물을 퍼 담아와서 라면을 끓였다. 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계곡에서 먹은 음식은 모두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난 후 오늘의 놀거리를 생각했다.


“ 우리 오늘은 어제 봤던 아래쪽 계곡에 놀러 갈까? 거기 물도 깊고 수영하기 좋아 보였어. ”


여자친구는 내 말에 동의했고 그 즉시 난 물안경을 챙긴 후 튜브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물론 바람을 넣는 장비도 구세주 아저씨에게 빌려온 것이다. 이 아저씨는 주인 없는 계곡에 좋은 자리를 독점하는 나쁜 행동을 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아저씨였다.


병지방 계곡의 하류는 생각보다 깊었다. 맨눈으로 보기에도 물속이 검게 보일 정도였고 군데군데 솟아있는 바위들은 자연의 웅장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름대로 수영에 자신이 있는 나였지만, 물에서는 자만이 금물임을 알고 있었기에 가슴 정도 오는 얕은 물에서부터 수영을 시작하며 내 컨디션을 점검했다. 여자친구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조심하라는 말을 건넸지만, 그 말은 나에게 더 성급함을 갖게 했다.


“ 이제 저기 깊은 물로 가봐야겠어. 저기 큰 바위를 지나서 절벽을 찍고 돌아올게 ”


난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속에 있는 약간의 걱정이 드러난 건지 그녀는 나를 말렸다.


“ 그냥 저기는 가지 마. 위험해 보여. 어제 구급차도 왔다 갔다 하던데….”


사실 어제 시장에 다녀오던 중 급하게 달려가는 구급차를 목격했었다. 난 본능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진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내 수영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물놀이로는 내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으니….


난 정말 급할 땐 물에서도 눈을 뜨지만, 이물질이 들어오는 느낌과 따가움에 웬만하면 수경을 착용하고 수영한다. 특히 깊은 물에 들어갈 때는 더욱 수경을 착용한다. 사실 물에 뜨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눈만 떠 있으면 1m 깊이이건, 10m 깊이이건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난 수경을 착용하고 괜스레 숨이 잘 쉬어지는지 크게 몇 호흡을 들이킨 후 천천히 입수했다. 가장 자신 있는 영법은 평영. 언제나 그렇듯 평영으로 내 감각을 끌어올린 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자유형이나 접영을 한다.


‘ 스읍 ’ 첨벙.


난 다른 이들은 쉽게 볼 수 없는 깊은 물 속의 광경을 즐기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평영이 좋은 점은 수영하면서 물속을 즐길 수 있고 계곡 같은 곳에서 바위를 피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계곡답게 군데군데 튀어나온 바위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반대편 절벽에 도달했다. 난 뾰족 튀어나온 바위틈을 손잡이처럼 이용하여 매달린 후 얕은 물에서 튜브에 떠 있는 여자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나를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난 그 모습에 스스로 뿌듯해 했다. 이제 지형지물에도 익숙해졌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듯이 물에 둥둥 떠서 아래를 구경했다.


 


그때였다.


계곡 바닥에 수많은 돌멩이들과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걸 구경하던 중, 어떤 새까만 물체를 발견한 것이.


난 저게 뭘까? 하고 한참을 보고 있었고 돌멩이도 아닌 특이하게 생긴 그 물체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때 그 물체는 갑자기 생명력을 부여받은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위에 직각으로 떠 있는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뱀이었다.


난 너무 놀라 내가 알고 있던 수영을 모조리 까먹어버렸고 빨리 피해야겠다는 마음과 당황한 마음이 합쳐져 그냥 물 위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나의 허우적거림에 뱀도 놀랐는지 나와 부딪히기 직전에 방향을 틀어 좀 전에 내가 환하게 웃던 절벽 쪽으로 사라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숨을 내쉬는데 놀란 마음에 물도 몇 모금 마셔버려서 캑캑거리기까지 했다.

여자친구가 놀라서 괜찮으냐고 물어오길래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물 밖으로 나가 좀 전의 내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이번에는 재밌게 이야기하려는 의도보단 내 수영 실력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뱀의 존재에 놀랐었다는 사실을 그냥 강조했다.


‘ 와아, 계곡에는 뱀이 있구나.’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절벽을 한 번 더 쳐다봤다.


 


내 컨디션이 나빠 보였는지 여자친구는 이제 다시 위로 올라가자고 했다. 아마도 내가 깊은 물에서 당황하던 모습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 그럼 그럴까? ” 난 못이기는 척 대답하고 튜브랑 짐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깊은 물은 안 무섭지만 뱀은 너무 무섭기에 다시 저 계곡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우리 텐트 앞 계곡은 넓게 펼쳐진 수영장 같은 모습에 수심도 딱 허리까지 높이라서 안정감은 최고였다.


‘ 그래, 멋진 모습도 좋지만 안전하게 놀자 ’


난 생각을 바꾸고 다시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수영은 여자친구와 함께 놀 수 없으니 여기가 함께 놀기엔 더 제격이었다.


 


이제 노지의 캠핑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때쯤 또 문제가 생겼다. 하나뿐인 매점 화장실이 막혀서 고장 난 것이다.


‘아니 좌변기도 아닌 그 화장실이 어떻게 고장이 날 수가 있지?’ 난 궁금증이 생겼지만 급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의 답답함을 해결할 방법을 서둘러 찾아야만 했다.


“ 우리 시장 갔다 오는 길에 식당이 한 군데 있지 않았어? 우리 거기에 가서 밥 먹자. 그리고 화장실을 쓰면 되지 않을까? ”


우린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그 식당으로 달려갔다. 식당의 메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화장실이 중요할 뿐.


난 여자친구에게 화장실부터 가라고 얘기한 뒤 메뉴를 꼼꼼히 살폈다. ‘ 아, 이런…. 백숙이라니….’ 전날 찜닭을 푸짐하게 먹었던 터라 도저히 백숙이 당기진 않지만 이미 화장실에 가 있는 그녀를 다시 나오라고 할 순 없었다.


“ 혹시, 다른 메뉴는 없나요? ” 나는 물었고, 사장님은 친절하게 파전 같은 것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난 세상에서 가장 밝은 얼굴로 파전과 막걸리를 주문했고 잠시 후 편안한 얼굴로 나온 여자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여기 샤워기도 있어 ”


화장실에 다녀온 여자친구가 원시림에서 살다가 도시에 처음 나온 사람처럼 샤워기에 깜짝 놀라며 나에게 말했다.


“ 아 그래? 대박!! ”


사실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 샤워기라니…. 노지에서 캠핑하는 고작 이틀 사이에 우린 원시인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 사장님께 말해서 우리 내일 여기서 밥을 한 번 더 먹고 샤워하고 갈까? 서울까지 이 모습으로 갈 순 없잖아 ”


여자친구는 자신의 좋은 아이디어인 양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말했고 나는 곧바로 동의했다.


“ 그럼, 밥을 먹고 샤워비를 따로 드린다고 하자. 근데 여기 백숙인데 괜찮겠어? ”


우린 그렇게 샤워랑 백숙을 맞바꿨다.


 


식당에서 나오기 전 다시 한번 화장실을 들리고 문명을 누렸다. 화장실에 비치된 샤워기랑 샴푸 등을 확인하며 깨끗해질 내일의 내 모습을 상상했더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


 


여느 날과 같이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가고 물놀이하기를 반복하며 바쁘게 계곡을 오고 갔더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계속 그 식당을 갈 수도 없고 여자친구의 볼일을 어찌 해결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 눈 딱 감고 나랑 저 산 위에 한번 올라가 볼래? 삽 들고….”


난 고민 끝에 결국 방귀 같은 말을 꺼냈지만 의외로 그녀는 동의했다. 스스로도 뭔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우린 노란 손잡이가 달린 삽 두 개를 들고 산책하듯이 산길을 올라갔다. 어젯밤 비가 와서인지 생각보다 좋은 공기 냄새와 숲이 우리를 반겼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우리는 산길을 오르며 슬쩍슬쩍 눈에 띄던 하얀 물체의 정체를 발견하고는 기겁을 했다. 처음에는 산에 있는 버섯이라고 생각했는데 군데군데 그 양이 너무 많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사람들이 배변을 해결한 흔적들이었고 어젯밤 내린 비로 인해 휴지가 녹아내려 땅과 일체가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경악했다. 산길 바로 아래 명당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텐트는 어젯밤 비로 똥물에 범벅이 됐으리라….


‘망했다’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지만, 여자친구를 설득해서 오늘 밤을 잘 버틸 수 있는 경험을 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 다른 사람들도 다 여기서 하나 봐. 내가 망볼 테니까 자기도 저기 가서 해 ”


여자친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는지 고개를 떨구고 하기 싫은 동의를 했다. 그래도 그녀는 남은 이성의 끈을 붙잡은 채 남들이 주로 이용한 위치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갔고 난 묵묵히 따라갔다.


“ 근데…. 나 사실…. 지금 큰 거야 ”


그녀는 아기 같은 목소리로 이제껏 참고 있던 말을 부끄러워하며 말했고 난 “ 아, 그래? 그럼 내가 땅을 먼저 팔게 ” 하고 개의치 않는 듯 후다닥 삽을 손에 쥐었다.


땅을 파면서


‘ 이 정도면 되려나? 혹시 넘치면 민망할 수 있으니 좀 더 파자.’ 라는 생각을 여러 번 반복하며 땅을 파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 정도면 됐어. 이제 저기에 가서 망이나 잘 봐줘 ”


난 웃으면서 5걸음 정도 자리를 옮겼고 뒤에서는 주섬주섬 옷을 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아마 고민이었을 거다. 내가 너무 멀리 가면 무섭고, 내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민망했을 테니. 그래서 난 몇 걸음을 더 옮긴 후에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오늘 난 이런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텐트에 돌아오니 샛노란 색의 텐트가 유독 똥색처럼 보였다. 실제로 빗물에 흘러내린 흙이 묻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위치가 너무 정확하게 물길이다. ‘ 휴….’


 


난 텐트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 우리 오늘은 과식하지 말자. 그리고 맥주도 조금만 먹자 ”


내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린 그녀는 웃으며 동의했다.


너무 힘든 첫 캠핑이었지만 우린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내일 그 현대식 건물의 식당에서 깨끗하게 샤워할 것을 상상하며 우린 그렇게 캠핑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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